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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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샬러츠 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 폭력시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수많은 인종차별 소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드림랜드이다. 일상 속에서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팝송을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꿈꾸는 미국은 말 그대로 꿈속에나 있을 법한 나라다. 다양한 기회가 있는 땅, ‘헬조선이라고 칭해지는 한국 사회와는 다르게 좀 더 세련된 사회, 살기 좋고 평화로운 행복의 땅일 것만 같은 미국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오래된 미국의 신화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한다.

 

신정순 작가의 드림랜드는 꿈이 이루어지는 땅으로 생각하는 미국으로 이주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기만 해도 달달한 칵테일 같은 분홍빛과 주홍빛의 책 표지는 마치 드림랜드라는 단어가 주는 희망을 추상적으로 시각화 한 느낌이다. 그러나 달짝지근하고 경쾌할 것만 같은 표지와는 다르게 드림랜드는 결코 우리가 꿈꿔온 달짝지근한 드림랜드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빛나는 네온사인 같은 드림랜드라는 단어가 보여주지 않고 숨겨둔 어둡고 씁쓸한 현실. 그것이 신정순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드림랜드이다.

 

 

미국에 오면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말도 안통하고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내가 한국에서처럼 자신감 있고 쾌활하게 살아갈 수 있냐고.

-드림랜드-

 

 

드림랜드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30대 이상의 중장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 자리 잡는 1세대인 것이다. 한국말과 한국 문화 속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공간인 미국은 낯설고 어렵다.

 

한국에서 아무리 내가 뛰어난 인재였다고 해도 미국에서 그것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바로 언어의 장벽 때문이다. 설사 내가 영어를 잘한다 해도 네이티브 앞에 가면 얼어붙기가 부지기수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 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내가 아무리 좋은,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그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문화를 체화시키지 못했다는 점도 그들이 미국 사람들의 일상에 익숙해지기 어렵게 만든다.

 

언어의 굴레와 문화의 차이로 관계 맺기의 시작인 대화를 제대로 맺을 수 없어, 혹은 그렇다고 생각해서 위축되고 소외되고 마는 씁쓸한 드림랜드 속 이주민은 그들이 동양에서 온 이민자라는 정체성에 맞물려 한정적인 사회적인 계층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며시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세탁소에 가려 할 때마다 거절하기에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은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런 곳일 줄은 몰랐다. 손님이 기다리는 곳과 그가 일하는 공간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 쇠창살이 가로놓여 있었다. 쇠창살 안에 들어 있는 그는 감옥에 갇힌 죄수 혹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한 마리 짐승 같아 보였다. 이게 뭐지, 알 수 없는 광경 앞에서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떨어뜨릴 뻔 했다.

-드림랜드-

 

 

흔히 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높디 높은 빌딩 속 사무실 어딘가에 앉아 노트북 앞에서 자판을 두들기며 클라이언트와 통화하는 직장인의 모습은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네 편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자 다 다르지만 그들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핑크빛 꿈을 품고 간 사람이건, 힘들 것을 각오하고 간 사람이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에게 미국 사회는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탈탈 털어 꿈과 희망을 쫓아 미국까지 온 그들이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미국 사회의 틈은 남들이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아 남은 파이에 불과하다.

 

치안이 좋지 못해 강도가 종종 든다는 자리에라도 가게를 내서 당장 먹고 살 돈을 모아야하는 1세대 한인의 고충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언어 문제와 문화 차이를 비롯해서 경제적인 요소 등 다양한 요소가 엉켜 이민자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안정한 이민자의 삶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요소를 강화하며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만 만든다.

이렇게 솔직하게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작가 자신이 1982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이중 문화와 이중 언어의 고충을 겪으면서도 치열하게 살고있는 이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경희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엘리트였던 그녀가 도미한 이후 직접 겪고 주변에서 보이고 또 들려왔던 이민자들의 삶이 이 소설에는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페이지를 넘기며 깨닫게 된다.

 

 

드림타워 건물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꼭대기 전광판에도 전기가 들어와 네온 글자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미국의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그 꿈입니다. 빗물과 어우러지면서 전광판의 글자는 붉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드림랜드-

 

드림랜드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작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마냥 불행하다고만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 드림랜드는 미국이 도피처나 꿈을 이루는 곳은 아닐 수 있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미국도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 다섯 편의 소설에 녹아나 있었다. 각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는 다르지만 드림랜드에서 그들은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산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이민자들과 서로 기대며,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더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치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에 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아직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당신에게, 미국에 살고 있는 그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그들의 삶이 영화나 미드와 꼭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권해주고 싶다. 영화와 미드보다 더 현실적인 드라마로 이 소설은 짧지만 묵직하게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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