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에드워드 캐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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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가장 변두리에 있던 소녀 리틀, 요동치는 18세기 파리의 순간순간을 밀랍상으로 포착하고 재현하다.


18세기 파리하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혹자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빵 이야기를, 프랑스 혁명을, 단두대를, 나폴레옹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18세기 파리라는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교과서에서 또는 매체에서 그린 모습대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외국인 여성이며, 하녀의 신분을 가진 '리틀'이라는 소녀의 일생을 담은 역사 소설 <리틀>은 파란만장했던 18세기 파리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려낸다.  


역사소설 <리틀>의 작가인 에드워드 캐리는 <전망대 맨션>, <알바와 이르바> 등의 소설을 써서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등지에서 '올해의 베스트'에 등극한 영국의 소설가이다. 또한 비주얼 아티스트이며 극작가이기도 한 그의 예술적인 능력은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그가 직접 그린 섬세한 일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집필한 소설 <리틀>은 파리 도서상, 월터스콧상, 영국왕실문학회 온다테제상, 역사작가협회최우수 역사소설부문, 더블린 문학상 등 유력 문학상의 후보작이 되기도 했다.  


책 <리틀>은 1761년에 시작되어 1850년에 끝난 리틀, 아니 안네 마리 그로숄츠의 일생을 그녀에게 의미 있는 사건들로 나누어 9부에 걸쳐 재현한다. 마리는 파리로 건너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밀랍 두상 전시관 '닥터 쿠르티우스의 캐비넷'에서 스승을 도와 여러 사람의 밀랍 두상을 제작하며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맞이하게 된다. 스위스 태생의 고아인 하녀라는 정체성은 그녀가 혁명의 중심인 파리에 있음에도 역사를 변두리에서 보게 만든다. 혁명의 주체가 아닌 주변인으로서 그녀가 겪은 프랑스 혁명은 잔혹했으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폭풍과도 같이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하녀라는 신분과 억압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애정하는 인물들의 죽음과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며 이전까지의 사회와 뼈아픈 작별을 하게 된다. 이런 묘사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18세기가 그야말로 혼돈으로 가득찬 과도기였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 마리는 하녀임에도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가는 인물이다.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명확히 알며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널리 펼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감정에도 솔직하여 자신이 애정하는 인물에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듯 늘 솔직하고 주관이 뚜렷한 그녀를 이야기 속 세간에서는 괴팍하고 이상한 소녀, 여자로 인식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현대적이며 현실적인 여성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한편 책 속에서 밀랍상으로 대표되는 '기록된 역사'에 대한 평가와 태도의 변화는 기록되고 재현된 역사의 한계를 보여준다. 즉,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밀랍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가치 판단을 하지 않기에 무언가를 재현하기에 가장 완벽한 물질인 것처럼 나온다. 밀랍으로 만든 모형들은  대상을 재현하며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분신이 되어 기억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모형이 되는 대상은 '선정'된다. 그 기준은 내가 사랑하는 인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우러러 볼 사람, 사람들이 무서워하며 경시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늘 한결같을  수 없는 법. 요동치는 18세기 파리에서 인물상의 평가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기록되어야 할 것과 기록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과 그 이유도 변화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본떠서 재현되는 순간, 이들이 왜 기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변화하며 한편의 이야기가 되어 역사를 다채롭게 그려낸다.  


기나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면 유익하고도 재밌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비록 이 책은 역사소설이지만 딱딱한 교과서 속 지식이나 영화 <레미제라블>로만 프랑스 혁명을 기억하는 당신이 몰랐던 프랑스 혁명의 입체적인 모습을 만나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울 것이다. 624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장편 소설임에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이 이야기에 빨려들어갈 것이다. 역사 교과서나 사회 교과서, 인문학 강의 등에서 만났을 법한 실존 인물들과 마리의 행적이 겹칠 때마다 반가움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장에 숨겨져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는 순간 뒷통수를 맞은 듯한 얼얼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p.s)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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