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의 발명
수 몽크 키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줄거리 요약: 19세기 미국 노예제 폐지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의 선구자였던 사라 그림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장편 소설

 

이 책은 노예제와 여성의 권리라는 가장 어두운 문제에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사라 그림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팩션이다. 이렇듯 현재까지도 첨예한 문제를 다루며 2014년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추천도서가 되기도 했다.

 

소설은 미국 남부의 백인 판사 집안의 딸 사라 그림케와 그녀의 열한살 생일 선물로 주어진 흑인 노예 핸드풀(헤티)를 오가면서도 전혀 부산스럽지 않은 잘 짜인 구성을 선보인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관계는 우정으로 똘똘 뭉친 백인 소녀와 흑인 소녀가 함께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한다는 동화가 절대 아니다. 노예제 폐지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시혜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사라와 그런 사랑 태도를 이해는 하지만 독립적으로 살고자 저항하는 핸드풀의 모습은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이게 바로 날개가 있었던 자국이란다. 지금은 이렇게 납작한 뼈밖에는 안 남았지만, 언젠가는 날개를 되찾게 될 거야."

-날개의 발명pp. 12

 

책의 제목 '날개의 발명'이 보여주듯 이 책에서 나타나는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라와 핸드풀, 그리고 니나, 샬럿, 덴마크와 같이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자유를 만들어나가려고 발버둥친다. 그들은 머릿속으로만 자유를 그리지 않는다. 용감하게 행동으로 그들의 자유를 빚어낸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작은 저항에서부터 큰 저항까지 다양한 저항을 보인다. 이를 통해 누구도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단 자유를 발명한 것이다.

 

"찻잔 받침에 뭐가 있나 보세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단추였지만, 그녀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어떻게……. 핸드풀 왜 이걸 가지고 있었니?"

사라는 단추를 건드리지 않았다. 보기만 했다.

내가 대답했다. ", 그렇게 됐어요." 그러고는 문으로 갔다.

-날개의 발명pp.205

 

이 이야기는 사라 그림케라는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이지만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 또다른 주인공인 핸드풀(헤티)이다. 역시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어린 나이에 죽었던 핸드풀이 소설 속에서는 또다른 시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핸드풀은 사라 그림케와 대응하는 존재로서 일종의 동반자인 것처럼 그려진다. 이런 핸드풀의 존재에서 연대라는 가치가 강조된다고 읽어냈다. 이 책 속에서 연대라는 가치는 자유의 발명을 위한 중요한 기둥이 되어준다. 각자가 그리는 자유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들은 함께 행동함으로써 더 큰 힘을 가지고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흑인 노예인 핸드풀과 백인 부잣집 딸인 사라의 연대는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서로 다른 집단의 연대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서 내가 흥미롭게 바라본 또다른 지점은 바로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 운동의 연대가 이뤄지는 부분이다.

 

왜 꼭 둘 중 하나여야만 하나요? 언니와 나는 노예제 폐지를 위해 일하기를 멈춘 적이 없어요. 우리는 노예와 여자, 둘 다를 위해서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렇게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노예들을 위해 백배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요?

-날개의 발명pp.500

 

노예제 폐지를 외치며 여성들도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라고 요구하는 사라 그림케에게 이 책의 남성 운동가들은 대의인 노예제 폐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니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두 문제 모두 중요한 문제였고 우열을 나눌 수 없는 문제였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들 모두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일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열을 나누어 무엇부터 해결하고 순서대로 해결할 수 없다.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으니 함께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해야 제대로 된 한걸음을 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단순히 페미니즘 소설이라거나 인종차별에 관한 책이라고만 소개하고 싶지 않다. 비록 이 책에서는 두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나는 범위를 좀 더 넓혀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딱딱하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던 인권 문제를 이 책은 소설이라는 장르 특유의 흡입력을 통해 좀 더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인권 문제에 다가가야 할지까지 제시해주고 있다.

 

편집과 번역 역시 매끄럽다. 고생하신 편집자 분과 번역가 분께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번역가가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를 번역하고 번역상을 탔을 정도의 전문가이니 번역 수준만큼은 믿고 읽어보시길!

 

 

P.S.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