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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5년 5월
평점 :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다던 <탄금>의 작가 장다혜 작가님의 신작이라는 얘기에 궁금했고, 조선 미스터리 메디컬 서스펜스라는 책 소개가 너무 흥미로워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시체를 묻으면서 살아온 매골자 백섬은 누이 막단의 기일에 훈룡사에서 목을 맨 도령을 발견한 후 뜻밖에 조선의 수어의 최승렬 대감 댁 노비로 팔려가게 되네요. 외딴 별채 구곡재에서 백섬은 노비임에도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바깥출입을 삼가한 채 지내게 되죠. 그러다 구곡재를 찾아온 최대감 댁 차남 장헌과 금박장 희제와 비밀스러운 벗이 되었지만 백섬이 구곡재에서 살게 된 호의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우정은 끝이 나네요.
평생 시체를 묻으면서 살아온 백섬이 각종 꽃을 따 압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보다 순수하고 영롱한 모습울 보게 되고 그런 모습에 희제가 백섬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데리고 오고 싶어하네요. 희제를 좋아하던 장헌은 희제를 향한 비틀린 연모로 인해 흑화하게 되서 백섬을 더 괴롭히게 되죠. 게다가 최씨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된 장헌이 자신이 가진 의술을 이용하여 더 악랄한 인간으로 변모하는데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 게 더 무섭게 느껴지더라구요.
400페이지가 넘는 꽉찬 이야기였음에도 너무도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다만 이들의 우정과 사랑이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정치적 음모와 의술을 행하는 자의 비윤리성,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무거운 이야기가 계속되었죠. 오히려 그런 상황이니 압화를 만드는 순수한 백섬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하더라구요. 그랬기에 누군가의 무엇이 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나가겠다던 희제의 마음을 더 흔들어놨을지도 모르죠.
작품의 결말이 참 아팠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러진 이후에도 정치적 음모는 여전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심도 여전했기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서 더 그랬네요. 그렇지만 희제의 복수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어요. 비록 희제는 그림자를 맡아 그리워하고 추억하면서 살아가겠지만 그 또한 삶이겠지요. 오래 기억남을 이야기인 것 같아요.
죽음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그림자를 맡기는 거라고요. 그걸 탁영이라 한다고요. 제 그림자는 무덤가의 뗏장이 아니라, 만개한 꽃그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련한 분홍빛도, 분분한 향내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하는 수 없이 그림자를 떠맡은 이도, 봄이 되면 한 번은 웃을 것입니다.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은 책으로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