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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컨시어지
쓰무라 기쿠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6년 2월
평점 :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거짓말 컨시어지』는 11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거창한 사건 대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친구, 동료, 가족, 타인과의 거리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균열과 위로가 조용히 마음을 건드린다.
<세번째 고약한 짓> – 동의를 구걸했던 순간들
이와사키와 친구 마나미의 관계는 낯설지 않다.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애써 맞장구치며 들어준 경험, 괜히 공감하는 척했다가 돌아와 허탈해진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말은 흘려듣는 사람에게 왜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했을까. 이 작품은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생일날> – 나를 위한 하루
52번째 생일을 맞은 사에코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하루를 보낸다. 거창한 이벤트도, 화려한 선물도 없다. 그저 나의 기분을 살피는 시간. 생일이라는 날이 타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오래 남는다.
<레스피로> – 같은 자리에서 버티는 힘
지쳐 있던 사쓰키와 아케미의 이야기를 읽으며 직장에서 만났던 좋은 동료들이 떠올랐다. 마음을 터놓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일을 하며 생긴 동질감은 분명 위로가 되었다. 함께 버티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거짓말 컨시어지> – 거짓말의 무게
미노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거짓말’을 대신 고민해주는 인물이다. 관계를 지키기 위한 작은 거짓말과, 마음을 무너뜨리는 나쁜 거짓말 사이에서 우리는 늘 줄타기를 한다. 이 작품은 거짓말이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와 깊이를 결정짓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속 거짓말 컨시어지> – 타인에게 털어놓는 마음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오히려 모르는 타인에게 털어놓는 순간이 있다. 낯선 거리감이 오히려 솔직함을 허락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그 아이러니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지나가는 장소에 앉아서> – 기다려주는 위로
구라타의 회사와 집에서의 일상을 통해, 도움을 주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 것만이 위로는 아니다. 때로는 곁에서 기다려주는 일 역시 충분한 마음이 된다.
<우리 회사의 심령사진> – 남겨진 자리
죽은 뒤에도 회사 사진 속에 남아 있는 고마이 씨의 존재는 비현실적이지만 유쾌하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흔적이 남는다. 함께 일했던 시간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식사의 맥락> – 간절한 한 끼
특정 음식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다. 꼭 그 메뉴여야만 하는 고집스러운 마음. 사소해 보이지만, 그 욕구에는 하루의 감정과 맥락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더욱 공감하게 된다.
<추가 나눔의 전말> – 물건의 가치
외할아버지가 남긴 초록색 펜 168자루를 처분하는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짐이 되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된다. 물건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술집에 이천 번이나 가고 난 뒤에> – 직장인의 시간
회식 장소를 찾는 이야기 속에서 퇴직한 마루오카 씨의 모습은 씁쓸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직장생활의 많은 시간이 술자리로 채워졌다는 사실이 웃기면서도 서글프다.
<방과 후 시간의 그녀> – 용기 내는 아이
4학년 사나에의 학교 적응기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상처받으면서도 다시 용기를 내는 아이의 모습이 따뜻하다. 작지만 분명한 성장의 순간이다.
『거짓말 컨시어지』는 거창한 사건 없이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주는 단편집이다. 친구 관계, 직장 동료, 가족, 낯선 타인과의 거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지치고, 또 위로받는지 돌아보게 한다.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지도, 그렇다고 쉽게 기대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