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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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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를 읽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 환자 보는 사이 틈틈이, 화장실에서,누워서 음악들으면서 읽어버렸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들 -커피, 자전거, 신문, 자동차, 컴퓨터, 콜라, 감자튀김, 햄버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느나라에서 무엇을 통해서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 주변에 오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우린, 우리주변의,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하고 편리하게 하는 수많은 사물들을 마치, 맨땅에서 자라난 식물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한다. 돈이라는 추상성과 교환되는 물건들은, 돈 만큼의 추상성을 가지고 자연,혹은 지구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추상적으로 만들어져 버린 것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세상과 자연과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나완 전혀 상관없는 콜롬비아의 우림과, 강원도의 샛강들과 연결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큼, 맨날 커피 마시고, 요샌 섬이라고 왕진갈 때나 바람 쐴 때, 자전거보다는 차를 찾게 되고, 하루종일 진료실의 컴퓨터를 켜놓는 나로서는,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뜨끔뜨끔했다. 조금씩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큼, 그러니 공기만 마시고 사라는 이야기냔 반론에 대해선, 공기만 마시고 살 순 없지만,조금 덜 쓰고, 조금 덜 버리고 살 순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본다. 이 책의 지은이 엘런 테인 더닝도 책 앞표지의 소개말에 그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커피를 마신다고 써놨으니, 큼, 중요한 건, 사소한 노력,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결벽증 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느끼려는 어린이가 되는 것, 더 많이 바라보는 노인이 되는 것, 더 많이 움직이는 짐승이 되는 것, 조용조용 걷는 고양이가 되는 것, 어디서 죽는지 모르게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작은 새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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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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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52년에 씌여진 파농의 책은 유럽에서의 흑인과 백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정신과 의사인 파농은, 흑인들이 유럽사회 내에서 어떤 식으로 '백인됨'을 추종하면서 자신을 소외시키고 동시에 흑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지를 고찰한다.

그의 문체는 때론 단호하고 차갑지만 순식간에 달아오르면서 격정적인 운문으로 흐르기도 한다. 일장과 이장에서는, 흑인이란 단어를 한국인으로 바꾸어 읽어도 별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파농은 문화적 제국주의가 어떻게 식민지 사람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놓는지, 백인됨, 서양됨의 척도가 어떻게 식민지 내부에서 맹렬하게 작동하면서 서로를 길들이는지를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백인됨의 추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흑인성'에 대한 열광 역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인종의 우열이나 열등을 넘어선 인간됨의 평등을 파농은 생각하고 있다.

이후의 장에서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적 방법틀을 이용하는 파농은, 놀랍게도, 들뢰즈의 앙띠오이디푸스보다 십오년 전에, 한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근원적 구조로서의 가족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또한 융의 원형적 무의식을 비판하면서, 그의 무의식이 전형적인 유럽적 무의식에 불과함을 이야기한다.

이번 여름호 당대비평에서 조한혜정 선생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도 그가 이야기하는 정신적 식민지인으로서의 열등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중국인의 글이 아닌 스펜서를 찾고,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커밍스를 찾는 짓이 한 예다.

파농의 책은, 처음의 한두장만 읽으면, 사실 뒤의 내용과 많이 겹친다. 만오천원이라는 돈을 선뜻 투자하기는 조금, 아까운 면이 있다. 그러나 이미 50년 전, 한 인간이 얼마나 치열하게 진정한 인간됨을 사유했는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한 사유가 어떻게 거대한 이론들을 통과하면서 그 이론들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전망들을 내어놓을 수 있는지를 목도하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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