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52년에 씌여진 파농의 책은 유럽에서의 흑인과 백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정신과 의사인 파농은, 흑인들이 유럽사회 내에서 어떤 식으로 '백인됨'을 추종하면서 자신을 소외시키고 동시에 흑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지를 고찰한다.

그의 문체는 때론 단호하고 차갑지만 순식간에 달아오르면서 격정적인 운문으로 흐르기도 한다. 일장과 이장에서는, 흑인이란 단어를 한국인으로 바꾸어 읽어도 별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파농은 문화적 제국주의가 어떻게 식민지 사람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놓는지, 백인됨, 서양됨의 척도가 어떻게 식민지 내부에서 맹렬하게 작동하면서 서로를 길들이는지를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백인됨의 추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흑인성'에 대한 열광 역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인종의 우열이나 열등을 넘어선 인간됨의 평등을 파농은 생각하고 있다.

이후의 장에서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적 방법틀을 이용하는 파농은, 놀랍게도, 들뢰즈의 앙띠오이디푸스보다 십오년 전에, 한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근원적 구조로서의 가족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또한 융의 원형적 무의식을 비판하면서, 그의 무의식이 전형적인 유럽적 무의식에 불과함을 이야기한다.

이번 여름호 당대비평에서 조한혜정 선생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도 그가 이야기하는 정신적 식민지인으로서의 열등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중국인의 글이 아닌 스펜서를 찾고,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커밍스를 찾는 짓이 한 예다.

파농의 책은, 처음의 한두장만 읽으면, 사실 뒤의 내용과 많이 겹친다. 만오천원이라는 돈을 선뜻 투자하기는 조금, 아까운 면이 있다. 그러나 이미 50년 전, 한 인간이 얼마나 치열하게 진정한 인간됨을 사유했는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한 사유가 어떻게 거대한 이론들을 통과하면서 그 이론들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전망들을 내어놓을 수 있는지를 목도하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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