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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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설을 범죄자의 인격 해부로 읽겠습니다. 〈퍼레이드〉를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를 내세운 심리 서사물로 간주하는 입장입니다. 비슷한 결을 가진 작품으로 영화 〈버닝〉(원작: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 〈택시 드라이버〉, 〈셔터 아일랜드〉를 들 수 있는데, 다만 이 글의 해석이 구조적으로 가장 가까운 건 〈셔터 아일랜드〉예요. 다중인격이라는 틀 자체가 그쪽에 더 가깝습니다. 〈버닝〉과는 "애매성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방향은 달라요.

제 가설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 — 미라이, 요스케, 고토미, 사토루 — 은 나오키라는 인물의 해리된 자아들이며, 소설의 표면 서사는 나오키의 분열된 내면이 만들어낸 구성이다.

이 해석은 소설의 미스터리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합니다. 이건 해답풀이가 아니라 결말이 남긴 질문들을 따라가는 사후적 재구성이에요. 다만 그 재구성 과정에서 표면 서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장면들이, 이 가설 아래에서는 오히려 일관성을 가집니다.

시작하면서 한 가지만 짚어두겠습니다. 요스케 챕터에서 "프로이트의 심층"이라는 표현이 등장해요. 작가가 직접 이 소설에 심층 심리학의 독법을 적어 넣은 것인지, 아니면 요스케라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언급이 텍스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소설을 심층적으로 읽으려는 시도에 일종의 허가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건의 재구성

나오키와 룸메이트들의 출현 순서, 그리고 소설 안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은폐된 기억들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소설의 표면 서사를 따라가면 다음과 같은 순서가 됩니다.

① 미라이 — 강간의 외화(外化)

나오키와 미사키 사이에 강간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나오키의 자아는 분열하여 미라이라는 인격이 출현합니다. 미라이는 강간 테이프의 존재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데, 이 테이프는 나오키 자신의 범행 기록입니다. 그런데 서술 안에서 미라이는 피해자처럼, 혹은 목격자처럼 등장해요. 이게 핵심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자기 바깥의 사건으로 처리하는 것 — 이건 해리의 전형적인 방어 구조입니다.

나오키와 미라이가 공유하는 속성이 있어요. 둘 다 폭음형 알코올 중독자예요. 표면 서사에서 미라이는 나오키와 미사키의 결별을 가볍게 언급합니다. 이건 나오키가 자신의 범행 이후 미사키와의 이별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② 요스케 — 책임 회피의 외화

미사키는 나오키를 피해 401호를 떠납니다. 나오키는 미사키의 집을 반복적으로 찾아갑니다. 이것이 요스케의 행위가 은폐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저는 읽습니다.

요스케는 우메사키 선배의 여자친구 기와코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말합니다. 기와코가 먼저였다는 서술, 아침에 남동생에게 발각된 후의 기이한 울음 — 이건 책임을 타인에게 귀속시키면서 자신은 피해자 혹은 어린아이로 퇴행하는 방어입니다. 나오키와 요스케의 공통점은 단순히 "책임 회피"만이 아니에요. 더이상 자신의 파트너가 아닌 여성을 향한 집착을 공유합니다. 기와코는 선배의 여자친구이고, 미사키는 이미 이별한 연인입니다.

요스케가 다른 인격들과 달리 남성이라는 점은 이 구도의 예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스케는 자기 행동의 주체로 완전히 기능하는 인격이 아니에요. 기와코의 유혹을 받고 떠밀리듯 행동한 뒤 아이처럼 무너지는 요스케는, 나오키의 행위성을 외부로 넘기는 방식에서 미라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집니다.

③ 고토미 — 망상적 재결합의 외화

나오키는 미사키와 언젠가 재결합할 거라는 믿음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고토미는 마루야마라는 남성 연예인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인물로 소개됩니다. 미라이, 고토미가 모두 여성 인격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나오키는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여성의 위치에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고토미와 마루야마의 관계는 나오키와 미사키의 관계에 대한 나오키 측의 망상적 구성이에요.

고토미의 낙태 문제에 나오키가 깊이 관여하는 표면 서사는, 고토미 인격이 현실적 책임을 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나오키(마스터 인격)가 대신 감당해야 하는 거예요. 미라이와 요스케를 거치면서 미사키와의 재결합 가능성은 소멸했지만, 나오키는 포기를 거부합니다. 이 포기 거부가 고토미 인격의 핵심 속성입니다.

④ 사토루 — 원초아의 외화

좌절이 극에 달하면서 나오키는 젊은 여성들에 대한 연쇄 폭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자기 내면에서 분리합니다. 사토루는 미라이가 술자리에서 데려온 남창으로 소개되는데, 사토루와 연결된 요소들 — 필로폰, 남창, 주거침입 — 은 나오키의 원초적 충동들이 한 인격에 집약된 형태입니다. 살인의 가능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긍정하는 것도 사토루예요. 인물들 중 유일하게 나오키의 폭행사건에 직접 목적자로서 참여합니다. 범행의 죄책감에 빠진 나오키를 구조하는 도피하도록 돕는 인물 또한 사토루입니다. 생존 본능과 자기보존의 역할 또한 초자아가 아닌 원초아가 맡고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아는 범행의 과정의 스트레스로 인해 마치 테이프가 멈추듯 중단되었고요. 여기서 핑크 팬더로 가득찬 테이프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미사키의 401호 재방문에 대한 해석

나오키는 신혼부부를 위한 맨션에 거주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나오키가 미사키와 파혼 혹은 이혼에 준하는 관계 실패를 겪었음을 추론할 수 있어요.

소설 280~281쪽에 걸쳐 나오키는 미사키가 현재 남자친구와 함께 401호를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현실로서 성립하지 않아요. 현재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의 집을 새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하고, 비어 있는 방을 자기 집인 양 들어와 상당한 시간을 보내다 말없이 나가는 건 —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장면은 나오키의 망상입니다.

소설 안에서 라쇼몽이 언급되는 맥락은 이 해석과 연결됩니다. 라쇼몽이 다루는 건 "동일한 사건에 대한 복수의 서술"이에요. 같은 사건을 미라이가 보고, 요스케가 보고, 고토미가 보고, 사토루가 보는 구조 — 이건 서로 다른 증언자들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 안에서 분열된 시점들이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르게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 망상 장면 직후 나오키는 조깅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고, 또 한 번의 범행을 저지릅니다. 시퀀스가 의미심장합니다. 질투와 증오의 망상이 범행으로 직결되어 있어요.


정신 해리를 암시하는 작가의 서술들

아래 인용들은 다중인격 해석을 지지하는 텍스트 내부의 근거입니다.

"여기 사는 건 나와 나오키 두 사람 뿐이잖아. 그런데 가끔 난 여기에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뭐라고 잘 표현할 순 없지만, 그건 분명 나와 나오키 둘이서 만들어낸 괴물 같은 존재일 거야."

— 미사키의 말. 이별 이전에 이미 나오키 안의 분열을 감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나 자신도 그다음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여자의 입을 막은 채 여자의 등을 녹슨 담장에 무자비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289~290쪽)

— 범행 중 기억의 공백. 해리 상태에서의 행위를 서술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미라이와 고토와 요스케와 사토루도 각기 다른 장소에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곧 눈앞에 보이는 맨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뜻이 된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 공상은 나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282쪽)

— 이게 이 소설을 다중인격으로 읽을 때 가장 결정적인 인용이에요. 나오키 자신이, 자신만이 이 공간에 실재한다는 공상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당혹감인 이유는, 그것이 어느 순간 "공상"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집에 있는 애들한테 뭐라고 할 거야?" "아무 말도 안 할 건데." 사토루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췄다. (295쪽)

— 이 교환이 이상한 이유는 사토루의 반응이 나오키의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같은 정신 안의 인격들이라면 — 나오키가 사토루의 대답에 멈추는 건, 나오키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에요.

만약 이 세계에 또 하나의 도쿄가 있다면, 그래서 그곳에 그 여자가 쓰러져 있다면 나는 분명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하러 갈 것이다. (302쪽)

— "이 세계"와 "또 하나의 도쿄"의 분리.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세계와 그것을 부정하는 세계를 동시에 상상하는 나오키의 내면입니다.


결말 — 분열의 현현

결말에서 모두가 모여 미라이의 강간 테이프를 텔레비전으로 재생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시퀀스예요. 그리고 그 흉한 장면 위에 핑크 팬더의 행진이 덮입니다.

"흉한 강간 장면 위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되풀이해 녹화한 몇 마리의 핑크 팬더. …웃는 얼굴로 허리를 흔들며 춤추는 핑크 팬더들의 행진." (302쪽)

이 이미지는 나오키 내면의 구조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강간 테이프 위에 핑크 팬더를 녹화해 덮은 것처럼, 나오키는 자신의 범죄 위에 미라이, 요스케, 고토미, 사토루를 덮어 씌웠습니다. 퍼레이드는 아름답고 경쾌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이 소설은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 다만 보여줍니다.

결말이 "나오키의 내면 분열" 읽히는가, "401호의 부조리한 현실" 읽히는가. 저는 분기점 자체가 작가의 의도라고 봐요. 그러나 글에서 제시한 독법은 전자입니다. 퍼레이드는 결코 밖에 있지 않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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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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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베트남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긴 글을 쓴다. 그러나 정해진 곳에서 차례를 맞춰 죽는 죽음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썩은 몸과 똥 냄새가 차오른 다음에서야 청소하듯 장례를 치르도록 만드는 것은 죄이다. 위생적이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실은 분명 몇몇 사람들과 달리 대부분의 이들은 그토록 소란스럽게 죽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모는 로자가 병원이 아닌 그녀의 유대인 둥지에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이 굶어죽기 직전까지 로자를 떠나지 못 했다. 생은 버림받음이 아닌 만남이다.


모모는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나 또한 어느새 하밀처럼 세월 앞에 늙어버렸다. 가끔씩 이 질문을 잊곤 했다. 그래서 난 다른 질문들과 다른 대답들을 찾아다녔었다. 천국이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보는 것이 그 하나였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달성하며 살아보는 것이 또 다른 하나였다. 나는 다른 질문의 답을 찾아 다니던 중 모모의 질문을 어디선가 포기했었다. 가끔씩 잊는다니, 그건 노인에게만 허락된 평화다. 하물며 모모는 하밀에게도 다시 한번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모모의 질문에 대답한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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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들 -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겨울 지음 / 유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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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상품, 좋은 형태가 아니다. 영리한 기획이다. 힙합의 샘플링은 결국 저작권 문제를 일으켰다. 도서의 문장을 덜 보호되고 있으나, 그렇다해도 이정도 샘플링은 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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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9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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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별자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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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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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세살의 나는 아직도 닉과 개츠비의 편이고, 그가 밀주업자인지, 과연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는지, 독일 황제의 조카인지를 따지는 것은 내게 의미가 없다. ”어처구니 없는 학살“이 개츠비의 운명의 몫으로 합당한가? 닉은 애도와 숭배를 선택한다. 개츠비를 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의 구성을 지녔으나 아쉽게도 사랑의 이야기라 보긴 어렵다. <적과 흑>과 닮은 소설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과 그 시대의 끝남을 애도하는 찬란한 추도사다. 개츠비와 같은 자식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보다도 지신의 시대를 더 닮았다. 닉은 자신은 개츠비와 다른 인생을 살았다. 그는 아버지를 더 닮았다. 그러나 닉은 개츠비를 위해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남긴다. 다음 시대에도 거듭 살해 당할 개츠비를 위해. 그러나 어느 시대에선는 자신의 일생만큼을 살아고 죽을, 자신의 탁월함만큼 자신의 희망만큼 위대해질 개츠비를 위해.


닉은 말한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삶에서 이미 이룩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단지 권태요, 우울함이나 실망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룩한 것이 없지만 이룩하고 하는 자에게는 역사는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 끝이 결국 이것 밖에 안 된다고 실망하는 것은 수 있는 것은 이미 가진 사람의 시각일 뿐이다. 심지어 단지 지나간 과거 속에서도 자신에게 편안한 삶만을 살아가고 싶어하다면 그는 분명 차고를 헐고 머굿간을 짓는 톰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개츠비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욕망하기 때문에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 모두를 겪게 되더라도 살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닉의 아버지의 충고 속에는 이미 이 가르침이 담겨있었다. 닉은 말한다. ”과거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닉은 틀렸다. 개츠비는 누구와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과거가 반복될 수 없다고요? 아뇨, 그럴 수 있고 말고요!“


닉은 말한다. 오직 개츠비만이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다시 발견할 수 없는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을 지녔다고. 동부를 떠나온 닉은 “더러운 먼지들”을 뒤로하고 고향에 정착한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를 다시금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진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 일은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왜 기회를 찾아 다시 서부에서 동부로 떠나가야 했었는지 깨닫는다. 개츠비는 오명을 쓰고 죽었고 그의 장례에는 친부와 단 한 명의 친구 밖에 자리하지 않았다. 그렇다해도 개츠비와 삶을 살아보겠는가?


나의 의견은 이렇다. 그렇기에 나는 개츠비가 결국 밀주업자나 갱스터일 뿐이지 않느냐, 그가 데이지를 사랑한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느냐는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만약 데이지가 머틀을 뺑소니쳐서 살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데이지와 개츠비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에 못 미치지만 말이다. 결혼에 대한 개츠비의 도전은 용납될 수 없는가? 정말로 데이지가 ”너무 행복해서 몸이 마비될 지경“이라면은 법과 도덕을 명분삼아 가로막는다고 해도 찬성할 수 있겠다. 돈을 쓰는 것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것 외에는 톰과 데이지 모두 끔찍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개츠비를 가로 막은 것이 사랑도 정당한 결혼제도도 아닌 범죄라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또 다른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누리는 윌슨-머틀 커플의 삶이, 머틀-톰의 간음의 죄의 대가가 의해 개츠비에게 뒤집어씌워진다. 이 소설에 결혼생활에서의 구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데이지와 개츠비에게 서로가 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다른 문제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인다.


재의 골짜기로부터 노란 쿠페를 찾아나선 윌슨은 개츠비를 총격해 살해했다. 윌슨은 T.J. 에클버그 의사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느님은 못 보는 것이 없으시지.” 그러나 윌슨은 아주 오래전에나 교회에 나갔고, 그는 결혼할 때를 빼곤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는 다른 신을 찾았고 그 신은 올바른 계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윌슨은 톰을 믿었고 결국 살인하고 자살한다. 복수를 전혀 이루지 못했다. 톰은 윌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윌슨은 왜 살아가는지 모를 사람이라고. 재의 골짜기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가서 눈이 멀어버렸다고. 센트럴파크 호텔의 스위트룸에서의 사건이 있던 그날, 윌슨의 아내 머틀이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 그날은 ”날씨가 푹푹 쪘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가장 더운 날임이 틀림없었다.“ 일행은 모두 땀에 젖고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알콜과 더위에 절어버렸다. 그날 데이지는 정정하지만 톰에게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적 없다“ 말하고, 개츠비에게는 ”아, 당신은 너무 바라는 것이 많”다 말한다. 곧 데이지는 노란 쿠페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뺑소니를 저지른다. 구조하지도 자수하지도 않는다.톰에게 의지한다.


“이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하다고 닉이 개츠비에게 말했다. 의미가 미묘하다. 썩어빠진 놈들을 합쳐봤자 썩어빠질 뿐인데, 어찌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닉은 이것이 자신이 항상 개츠비의 행동을 반대헀다는 것을 변명하면서도 개츠비를 칭찬할 수 있었던 말이라고 생각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이 닉과 개츠비 사이의 마지막 인사가 된다. 이 때문에 닉은 더 깊은 자책감에 시달렸으리라. 개츠비의 죽음의 장면이 따라나온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이다. 앞서 개츠비는 이렇게 닉에게 말했다. “그럼 풀장에 뛰어드는 건 어때요? 여름 내내 한 번도 쓰질 않았거든요.”, “take plunge in.” 개츠비는 여름 내내 사용하지 않던 풀장에서 죽는다. 곧 가을이 올 것이기 때문에 이제 풀장의 물을 빼야한다. 개츠비는 오전 내내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개츠비는 일어나고 풀장에 에어 매트리스를 물에 들어간다. 이 직후의 장면에 대한 작가의 서술이 없다. 독자가 상상을 통해 채우도록 빈 공간을 남겨뒀다. 나는 개츠기가 구원받으리라 상상한다.


나는 땀 뿐만이 아니라 집착과 정념, 잔뜩 묻은 더러운 먼지들까지 씻겨나가는 상상을 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제들은 물로서 세례를 준다. 물은 생명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소생한 순간 가라앉는다. 에어 매트리스와 그의 몸을 관통한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다시는 죽었다. 정화된 영혼으로 인생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총탄이 그를 짓눌렀다. 흔히 총탄에는 눈이 없다라고 말한다. 총탄에만 없을까? 다수의사람에게도 멀쩡한 눈이 없다. 차라리 눈을 감고 살아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초록빛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면, 판단하지 않고 유보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 죽음이 개츠비의 몫으로 합다하다고 믿을 수 없다. 닉이 아무리 수소문하여도 장례에는 닉과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닉은 개츠비에게 타이틀을 붙여준다. The Great Gatsby. 나는 이 제목이 도치되어 있다고 느낀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할 때는 공식적인 느낌이 부족하다. Gatsby the great, Frederick the Great처럼 적어야 옳다. 작가는 자신의 다른 소설, Tender is the night에서처럼 도치법을 사용했다고 본다. The Great Gatbsy, 이 편이 도시의 어둠 속의 제왕이었을 개츠비에게 더 어울린다. 다른 대왕도 개츠비와 같을 수 없었으므로 적절하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파티를 열고 홀로 죽었다. 그러나 인생의 짧은 환희와 절정을 맛보고 죽었다. 일찍이 어떤 인물이 개츠비와 같이 살았던가?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성대한 파티는 없었다. 이로 인해 미국문학에서 개츠비는 신화 속 인물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개츠비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국의 위대한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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