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lice ”Hello, Stranger.”

마이크 니콜스의 <클로저>(2004)의 첫 라인이다. 앨리스는 미국인이고 스트리퍼로 일을 하다 질려 런던으로 넘어왔다. 인생이 알 수 없으나 즐거운 몇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있다. 출근길 인파 사이를 걷는 앨리스는 맞은 편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걷는다. 음악은 Damia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가 깔린다. 영화의 첫 오프닝이다. 그 남자는 댄이다. 

앨리스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주시하는 댄에게 웃어 보이고, 댄이 받아 미소 짓는다. 대로의 한 복판에서 마치 두 사람만이 걷는 것처럼 주변을 잊는다.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 순간 앨리스는 횡단보도를 걷다 차에 치인다. 앨리스는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곁으로 달려든 댄을 바라보며, 첫 대사를 말한다. “Hello, Stranger.” 댄은 앨리스를 병원으로 옮기고, 깨어난 앨리스는 댄과 함께 지내게 된다.

여기까지가 클로저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뻔하지만 재밌는 말장난이다. “bump: 부딪다, 충돌하다“, “bump into: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와 만나다”. 이제 막 입국해서 공항을 나서 런던의 대로를 걷던 앨리스는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예상치 못한 어느 남자의 시선에 한  눈이 팔려 차에 치인다. 댄은 자신을 병원으로 옮기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 출근하지 않았다.그의 친절에 만나기 시작한다. 낯선 사람에게 느낀 친절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다. 앨리스는 나탈리 포트만이, 댄은 주드 로가 맡아 연기했다.


Blanche “Whoever you are —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최고의 라인을 꼽으라면 나는 이 라인을 꼽는다. 블랑시가 결코 선택하지 않았어야 할 삶의 태도였다. 힐독에서 읽은 소설 중에서는 <스토너>의 그레이스가 떠오른다. 타인의 친절에 의존하는 것은 결코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책이 최고의 친구다“라고 말한다고 본다. 친절은 값비싸다. 의존하게 만든다. 독립성을 빼앗은 이후에는 무엇이든 내놓게 할 수 있다. 공짜로 주어지는 친절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껏 운이 좋았을 뿐 내가 그 친절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Blanche The opposition is desire. So do you wonder? 

How could you possibly wonder!


블랑시는 의심스러운 화자다. 마지막 결말을 알기 전까지 블랑시를 동정하기 보다는 비난하기 쉽도록 플롯이 짜여있다. 블랑시는 단지 정신나간 사람이나, 이상한 캐릭터가 아닌 비극적 인물이다. 9장의 블랑시의 라인이다. 블랑시의 과거 고백의 피크다. 스텔라가 벨 리브를 떠난 10년 동안 벨 리브에서는 죽음이 끊이지 않았고 Dubois 가는 몰락했다. “반대는 욕망이죠. 이상한가요? 어떻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모든 사람을 잃고 혼자 남은 블랑시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를 도피처로 삼는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수단으로 욕망을 선택했다. 이러한 욕망과 죽음의 관계는 1장에서도 언급된다.


Blanche They told me to take a street-car named Desire, and then transfer to one called Cemeteries and ride six block and get off at — Elysian Fields!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블랑시가 이곳으로 오는 것은 운명과 같다. 스텔라가 스탠리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곳에서 블랑시는 자신이 의존할 있는 친절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결말은 파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종착지는 파멸이다. 어째서일까. 테네시 윌리암스는 죽음이 아닌 파멸을 제시한다. 고전 비극의 주인공과 닮아 있으나 차이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파멸을 직시했고 심지어 선택했다. 블랑시는 다르다. 블랑시는 남자들에 의해 망가져 왔고, 스탠리에 의해 파괴된다. 스탠리는 분명 블랑시가 원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거다. 그럴까? 정신의학적 상식이 널리 퍼진 요즘 같은 시절에는 스탠리와 같은 궤변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스탠리를 옹호하는 주장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된다. 블랑시는 파멸을 선택하지 않았다. 친절에 의존하고자 했을 뿐이다. 스텔라와의 관계를 블랑시는 문제 많고 이기적인 인물이 맞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라고 수는 없다. ”(날카롭게) 그래요! 그래, 잊은게 있어요!” “Yes! Yes, I forgot something!” 블랑시는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을 조금씩 잃어버렸고 스탠리에 의해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린다. 친절에게, 종국엔 폭력에게 자신을 잃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절을 바라지 마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까지 아웃소싱 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클라라와 태양>은 "엄마"에 대해서,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기원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AF 클라라를 도입한 부분은 아빠, 아들, 다른 딸처럼 친족이 아닌 중립적인 관찰자를 두려고 그랬다고요.

이야기에서 파고드는 관계의 중점이 항상 "엄마-딸"을 벗어나지 않고요. 다각도로 보게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클라라의 시선과 엄마의 시선은 서로 대체할 수 없지만 양립하면서 조시를 향해요. 

클라라도 엄마처럼 조시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니까요. 

이 이야기에서 아빠는 "엄마-딸"의 관계에서 철저히 외부자로 머물러요(이런 점은 릭과 그 엄마에서도 반복되고요). 아빠는 엄마와 달리 반체제적 정치집단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먼 인물이 되고요. 

AF를 도입한 이유는 과학 기술이 "대체 가능한 것"과 "대체 불가능한 것"이 한 몸에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지점을 파고들고자 한거 같아요. 

클라라는 조시에게 여러 서비스, 돌봄의 일부 기능 제공할 수 있고 항상 조시를 위하지만, 조시는 정말 아플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엄마를 찾죠.

엄마는 샐처럼 조시가 '향상'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면 클라라에게 '조시 역'을 맡겨 위안을 삼으려고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하고요.

'관계'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지점을 파고 들어요. 

엄마는 딸에 대한 사랑과 과학적, 제도적 욕망에 따라 '향상'을 선택하고, 클라라는 조시기 '향상'의 부작용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길 바래서 기도하죠. 

이 교차점에서 모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조시가 위독한 때, 릭 앞에서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토로하는 엄마의 말들이 기억나요. 

가장 강렬한 지점이었어요. 여기서는 클라라로부터 엄마의 내면으로 더 포커스가 이동해요. 엄마로서의 욕망과 죄책감이 교차하고, '향상'하지 않은 아이 릭에 대한 멸시와 향상을 선택한 자신의 실패한 것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요. 

그러나 조시는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향상' 누리고 살게 되었죠. 클라라의 기도 덕분에 태양이 도와준 걸까요? '향상' 위험했지만 딸이 견딜 있을거라고 믿었던 엄마의 선택이 옳았던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춘의 터널의 끝에 닿을 수 없었던 미도리의 초록빛을 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