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게임
오음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교사 김설, 영상 번역가 남하나, 소설가인 최낙현, 대학생 전나은, 여행자 오후.

다른 성격을 가진 주인공 다섯 명이 각각 다른 이유로 파키스탄 훈자 마을에 모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누군가는 누군가를 잊기 위해, 인생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모인 그들.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그 인물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문장들을 발췌해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소설을 읽기 전에는 스포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원하지 않으면 넘어가도 좋다. 

*스포주의

김설 여행을 떠나면 버릴 수 없는 습관과 양보할 수 없는 취향만이 남는다고 하던데, 내게 남은 패턴은 그의 내음에 잠들고 깨어나는 일, 그뿐이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돌보는 익숙한 방식. 그러니 오늘도 나는 여행자보다는 혼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16p.)

남하나 훈자로 떠나온 일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절대 우연히라도 나를 아는 사람은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은 곳. 한 명의 여자도, 한 명의 아가씨도 아닌 낯선 이로 스치듯 멀어질 여행자. 이방인의 적절한 거리감을 가지고, 여행자에게 쏟아지는 적당한 호의와 관심을 받는 곳. 그것으로 충분했다.(103p.)

최낙현 – ‘어떤 이야기를 사랑하고 믿느냐가 자신의 세상을 결정한다.’(198p.)

전나은 베개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자꾸 입이 벌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이 너무 뛰어 몸을 웅크리고 말아 가슴께를 눌렀다. 모든 걸 다 계획했는데, 이제 나는 떠나가야 하는데, 자꾸만 우리의 다음을 말하는 그들 때문에 어딘가가 쩌릿했다.(240p.)

오후 나약한 스스로가 역겨웠다. 일행들과 함께 할수록 그리움이 번졌다. 나의 것과 우리의 것이 떠올랐고, 기억이 나를 허약하게 만들었다. 균열이 번져 무너지기 전에 홀로 떠나야 했다. (276p.)

이야기를 읽으면서 각각 주인공마다 조금씩 내 모습이 녹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주인공 한 사람에게만 이입해서 보기 보다는 소설에 나오는 다섯 명 모두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한 인물에 완전히 내가 이입 되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등장인물마다 조금씩 공감이 되어 결국 등장인물 모두 공감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였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감정이 풍부한 것 아닌지?) 사실 프롤로그만 보고 중학교 교사인 김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계속될 줄 알았다. 정말 지루한 패턴의 일상을 엿보는 것 만으로도 소설의 흥미도가 떨어질 것 같았는데 그런 김설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김설의 비밀을 알고 나니 어떤 비밀이 있을지 소설을 보는 내내 그들의 이야기에 끊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염탐꾼이 된 기분!) 김설 이외에 다른 인물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다 이 마을로 흘러 들게 되었는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샘솟는다. 추리 소설도 아닌데? (이건 마치 막장드라마에 묘미를 알아버린 아줌마랄까?)

각 인물들마다 저마다 살아온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각인물의 시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내가 왠지 입단속을 잘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책 제목에 나오는 게임은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하는 게임이다.

, 좋아요. 일단 게임 이름은 외계인 게임이야. 우리 중에 있는 외계인을 찾는 거지.”(59p.)

그런 건 아니고, 종종 우리가 특이한 애나 남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을 외계인 같다고 하잖아. 사차원이라고도 하고. 그치?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리 없을 법한 사건 하나를 던져서, 지금 당장 그 일이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는 거야.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지. 똑 같은 하나의 질문에 자신은 어떤 결정을 할지 고민해 보고, 그 선택을 공개하는 거지.”

, 그럼 그 중에서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외계인이 되는 거구나?”(60p.) 

이 게임을 하면서 인물들에 대한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끼어서 같이 토론하는 기분도?) 의외의 답을 하는 인물도 있고, 그리고 소설 속 나오는 질문들을 나에게 해보면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소설 속 흥미요소라면 흥미요소!

소설은 막바지에 다리에서의 아찔한 상황이 지나고 난 후 끝을 맺는다. (에필로그는 꼭 읽기!)

다섯 명중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너무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 여행지에서 조차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 김설은 20대 치열한 내 모습과 닮은 것 같아서, 한동안 사람이 싫어 우연히라도 누구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남하나랑 비슷해 보여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뒤늦게 미안함이 밀려오는 최낙현을 보고 나는 내 배우자에게 무심한 적 없었나 뒤돌아보게 되는 그래서 내 안에 김설, 남하나, 최낙현, 전나은, 오후가 다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아마 주인공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건 오후의 생각을 통해 말해준 이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리는 늘 잃기 전엔 미처 내가 잃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때로 경계선을 넘어 다시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라고. 혼자서 건널 수 있는 세계는 없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방법은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가슴에 뚫린 블랙홀을 통과해 다음 세계로 함께 나아가는 일 그것만이 외계인인 서로가 동류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3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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