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마카롱 에디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강성복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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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흥미진진한 소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특히 남성들에게는 더욱 관심이 가는 소재일까요이름만 들어도 모험이 떠오르는 소재바로 보물입니다보물에 아주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소재가 있다면그건 해적아닐까요보물과 해적무엇이 떠오르시나요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숨기고 죽은 해적바다 어딘가에 있는 보물섬그리고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나타내는 보물지도?

 

  해적과 보물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입니다이와 관련된 컨텐츠는 정말 다양하죠영화라면 <캐리비안의 해적 Pirates of the Caribbean>시리즈가 머릿속에 떠오를 수도 있고요만화라면 <원피스 One Piece>일까요그렇다면 소설은 어떤가요오늘 소개할 책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의 보물섬 Treasure Island입니다.

 

 

  • 해적흑점보물지도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감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갖는 해적과 보물 이미지를 정착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설정들이 보물섬에서 기인합니다해적의 모습보물지도 표시 등한번 살펴볼까요?

 

  그의 모습은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한 사람이 터벅터벅 여인숙 입구를 향해 걸어왔고 그의 뒤로 선원들이 사용하는 궤짝을 실은 손수레가 따라오고 있었다키가 크고 몸은 단단하고 육중했으며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나이였다꼬질꼬질 때가 탄 푸른 외투와 어깨 위로 땋아 늘어뜨린 머리그 머리에 묻어 있던 타르거칠고 흉터가 많은 손검게 변색되거나 중간에서 잘려 나간 손톱들한쪽 뺨에 길게 나 있는 칙칙한 잿빛 칼자국.

 

  작품 도입부입니다주인공은 어린 짐 호킨스’. 짐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벤보우 제독 여인숙에 어느 날 뱃사람이 찾아옵니다선원들이 사용하는 궤짝뺨에 길게 나 있는 칼자국​거친 외모딱 봐도 해적 같지 않나요?

 

  거칠게 생긴 빌리 본즈라는 이 해적이 여인숙에 거주하는데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죠마을 사람들이 선장이라고 부르는 이 해적은 어린 짐이 보기에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고 있습니다꼬박꼬박 짐에게 푼돈을 쥐어 주며 외다리 뱃사람을 보면 알려달라고 하죠.

 

나는 일등 항해사였어그래내가 저 유명한 플린트 선장의 일등 항해사였다그 장소를 아는 건 나뿐이지플린트가 사반나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나처럼 말이야거기서 그걸 내게 줬어하지만 놈들이 내게 흑점을 보내기 전에는 알리지 마라블랙독이 다시 오거나 외다리 뱃놈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특히 그 외다리 뱃놈을 주의해.”

 

  그의 정체는 악명이 높은 해적 플린트 선장의 일등 항해사였습니다그가 말하는 그 장소는 무엇일까요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겠죠플린트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숨겨진 보물섬입니다바로 그가 보물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언제나 해적의 말로는 순탄치 않죠매일같이 럼주를 마시던 본즈에게 어느 날 옛 동료가 찾아와 흑점을 주고 갑니다여기서 흑점이란 쉽게 말해 죽음 통보입니다한쪽 면이 검은 종이입니다역시 아주 해적스럽네요.

 

  얼마 안 가서 해적들이 쳐들어오고 우여곡절 끝에 짐은 본즈의 궤짝에서 방수포에 싸인 종이 뭉치를 훔쳐 달아나는데 성공합니다모두가 탐내는 종이 뭉치짐이 가진 것은 보물지도였습니다.

 

나중에 추가된 내용도 몇 가지 있었는데무엇보다 빨간 잉크로 세 개의 열십자가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두 개는 섬 북쪽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서쪽에 있었는데이 하나의 표시 옆에는 아까와 같은 빨간색 잉크로 선장의 삐뚤거리는 글씨체와는 달리 작고 반듯한 글씨체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보물더미는 여기에.”

  뒷장에는 같은 글씨체로 다음과 같은 추가 정보가 있었다.

 

키큰 나무망원경 등성이북북동의 북점을 향함.

해골 섬 동남동의 동편.

10피트.

은괴는 북쪽 비밀 창고에동쪽 언덕 경사에서 찾을 수 있음.

검은 낭떠러지를 마주 보고 남쪽 60피트.

무기는 쉽게 찾을 수 있음모래언덕.

북쪽 후미 입구의 북부.. 정동에서 약간 북쪽.

J. F.

 

  낡은 지도에 열십자 표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미지입니다보물의 위치를 표시하는 것에 열십자 표시 말고 무엇이 있겠어요?

 

 

  • 외다리 해적어깨 위 앵무새보물섬

 

  위험에 빠진 짐을 구하고 보물지도를 확인한 지주 트릴로니와 의사 리브지는 바로 배를 구해 보물을 찾으러 떠나기로 합니다물론 짐 역시 캐빈 보이로 함께 하게 됩니다배를 구하고 선원을 구하는 일은 아주 손쉽게 이루어집니다하지만 보물을 찾으러 가는 데에 손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의심해볼 만한 것이죠우연하게 채용된 배의 요리사는 존 실버라는 과거 뱃사람으로 그는 외다리입니다그리고 선원들은 그가 잘 아는 사람들로 채워지죠. ‘외다리 뱃사람을 조심하라는 본즈의 말이 떠오르시나요그리고 실버의 어깨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서 와라호킨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리 와서 나랑 얘기나 하자얘야너만큼 반가운 손님도 없지여기 앉아서 내 얘기를 들어봐라이놈은 플린트 선장이야그 유명한 해적 이름을 따서 내 앵무새를 플린트 선장이라고 부른단다플린트 선장이 우리 항해는 성공할 거라고 하는 구나그렇지 않니선장?”

  그러면 앵무새는 재빨리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여덟 조각 은화여덟 조각 은화여덟 조각 은화!”

 

  외다리 해적어깨 위의 앵무새낯설지 않습니다해적들로 대부분 채워진 배배의 선장 스몰릿은 불길한 낌새를 느끼지만 항해는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그리고 이런 일에는 주인공이 적절한 역할을 하죠아주 우연하고 재미있는 기회로 짐은 실버의 계획을 엿듣게 됩니다짐은 사과가 먹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나는 아예 사과 통 안으로 들어갔다사과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어두컴컴한 통 안에 앉아서 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느새 졸음이 몰려왔다그렇게 잠이 들었거나 거의 잠이 들려는 찰나바로 옆에 어떤 육중한 남자가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그가 어깨를 기대자 통이 흔들렸다얼른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그것은 실버의 목소리였다그리고 채 열 마디도 듣기 전에 일어나려던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나는 말할 수 없는 공포와 호기심을 느끼며 거기 누운 채 벌벌 떨면서 그들의 말을 들었다이미 들은 몇 마디 말에서 이 배에 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이 순전히 내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이제는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요짐 일행은 무사히 보물섬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보물을 차지하는 건 누가 될까요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어떤 전투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 떠나라찾아라바라는 금은보화가 그곳에 있다!

 

  해적과 보물은 불멸의 소재입니다언제까지나 보물지도의 존재는 우리를 흥분시키겠죠외다리 해적어깨 위의 앵무새 역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제목부터 이미 어떤 내용일지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이죠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들그 이미지가 보물섬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생각하니 마치 그 자체가 보물처럼 느껴졌습니다해적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보물을 숨겨놓은 보물섬이 책 보물섬』 그 자체 같았다고 할까요?

 

  1883년에 발간된 보물섬은 100년이 훌쩍 넘은 고전입니다충분히 예상가는 이야기임에도 정말 재미있습니다이는 소재 자체의 재미 때문이기도 하고지체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합니다주인공의 모험과 때때로 닥치는 위험이 빠르게 다음 장을 넘기게 만들죠이전에도 스티븐슨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보물섬 못지않게 아주 유명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입니다역시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하지만 동일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새삼 놀랐네요갑자기 보물과 모험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캐빈 보이 짐 호킨스의 이야기 보물섬을 읽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반가운 보물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자(死者)의 궤짝 위에 열다섯 사람

― ― 또 럼주 한 병

나머지를 처리한 건 술과 악마

― ― 또 럼주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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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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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릭 아서 블레어조지 오웰, 1984

 

  오늘은 저번 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의 1984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언제나처럼 작가 조지 오웰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요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조지 오웰은 본명이 아니라 필명입니다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Eric Arthur Blair'입니다작가들의 필명은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 본명인 줄 알았던 이름이 필명이었다는 사실은 조금 놀랍죠.

 

  오웰이라는 필명을 쓰게 된 것은 그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그의 집안은 일명 젠트리 Gentry' 계급에 속했죠젠트리는 귀족은 아니지만 그에 가깝게 토지를 소유한 계급입니다우리가 흔히 쓰는 '젠틀맨 Gentleman'도 여기서 유래했지요하지만 그의 집안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습니다신분은 상속되었지만 부()는 그렇지 못했죠그래서 에릭은 자신의 집안을 상류 중산층의 하층 lower-upper-middle class'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웰은 가난했지만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우리가 흔히 들어본 이튼 스쿨 Eton School’에 다녔었죠재학 당시에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도 이튼에 있었다고 하네요디스토피아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두 저자의 인연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오웰은 생계를 위해 버마 지역에서 경찰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서 오웰은 유달리 밑바닥 층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부랑자 생활을 하기도 하죠그리고 그의 이중적인 생활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명을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이렇게 오웰의 삶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1984에 나타난 비참한 사회가 이해되기도 합니다.

 

 

  • 빅 브라더텔레스크린사상경찰

 

  자이제 1984의 세계에 대해 살펴볼까요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 Winston Smith’가 사는 국가는 영사 Ingsoc'라 불립니다이는 영국 사회주의 English Socialism'의 준말이지요영사의 특징은 빅 브라더 Big Brother'라는 존재가 통치하는 사회로 텔레스크린 Telescreen‘이라는 장치를 통해 당원들을 감시합니다당원들의 모든 행동말 한마디가 모조리 감시되죠그 어디에서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사상경찰 Thought Police'이 언제 어디서 잡아갈지 모르기 때문이죠겉보기로는 누가 사상경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당원은 서로를 절대 신뢰할 수 없습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했다윈스턴이 입 밖에 내는 말은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그 기계에 잡혔다더구나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안에 놓인 한 그가 하는 짓은 모두 보이고 들리게 되어 있었다물론 언제 감시를 받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사상경찰이 얼마나 자주어떤 조직으로 개인에게 감시의 촉수를 뻗치느냐 하는 문제는 추측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사회는 철학자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이 만든 원형 감옥 판옵티콘 panopticon'을 떠올리게 합니다누구도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고 동시에 감시자는 누구나 감시할 수 있죠체포된 당원은 세계에서 사라집니다. ‘증발된다 vaporised'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이 말의 의미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과거의 기록부터 모두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인 unperson'이 되는 것이지요사라진 사람은 존재한 적도 없는 것으로 되어버립니다.

 

 

  • 신어이중사고

 

승리 맨션은 1930년경에 건축된 낡아빠진 아파트로 지금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천장과 벽에서는 횟가루가 끊임없이 떨어지고수도관은 추워지기만 하면 터지고지붕은 눈이 올 적마다 새고난방 장치 역시 절약한다는 이유로 꽉 닫아버리거나 사용하는 경우라 해도 스팀이 반밖에 돌지 않았다제 손으로 직접 고치는 것 외에 모든 수선은 멀리 떨어져 있는 당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했으며창틀 하나 고치는 데도 2년은 걸려야 가능했다.

 

  정말 끔찍한 사회입니다우리 중 누구라도 저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는 않겠죠그런데 단순히 이러한 물리적 장치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그러면 당은 어떻게 계속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일까요?

 

  당은 감시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모든 당원들이 반역 따위는 꿈꾸지 않고 당에 진정 충성하기를 바라죠그래서 당은 언어를 지배합니다. ‘신어 Newspeak’라고 불리는 언어를 만듭니다기존 영어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신어의 주요 특징은 점차 단어 수를 줄여간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볼까요? ‘좋은 good’, ‘나쁜 bad’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신어에서는 나쁜을 없애고 '안 좋은 ungood‘으로 바꾸어 버리지요. ’썩 좋은 excellent'와 '훌륭한 splendid‘도 필요 없습니다. '더 좋은 plusgood’으로 충분하지요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배로 더 좋은 doubleplusgood'이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신어의 완전한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려는 데 있다는 걸 자넨 모르겠나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놓자는 걸세왜냐하면 그걸 나타낼 낱말이 없으니까 말이야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하게 단 한 마디로 표현될 거고그 의미는 정밀하게 뜻을 나타내고 다른 보조적 의미는 지워져 잊게 될 테니까 말이야.

 

  게다가 이뿐만 아닙니다당원들은 언제나 이중사고 doublethink'를 해야 합니다이중사고는 1984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죠설명을 볼까요.

 

당원에게 적용할 때는 당이 요구하는 대로 흑을 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충성심을 뜻한다그러나 그것은 또한 흑을 백이라고 믿는’ 능력을 말하며나아가서는 흑을 백으로 알고’ 전에 반대로 믿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이것은 끊임없는 과거의 변조를 요구하며 사실상 나머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신어로 이중사고라고 알려진 사고체계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이중사고는 의식적이면서 동시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작중에 당이 초콜릿 배급을 20g 줄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그리고 얼마 안 가서 오히려 초콜릿 배급을 20g 늘렸다고 이야기하죠실제로는 분명 줄어든 것인데 당원들은 후자의 발표를 듣고 이중사고를 통해 초콜릿 배급이 줄었다는 사실을 잊고초콜릿 배급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믿고이러한 사고과정을 거쳤다는 의식조차 잊어버립니다이것이 이중사고입니다그리고 그에 맞춰 모든 과거의 기록은 수정되지요결국 당이 말한 것은 언제나 진실이 되고 과거는 언제나 변하면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고 당의 슬로건은 말한다.

 

 

  • The last man in Europe

 

  ‘유럽 마지막 인간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원래 1984의 제목은 The Last Man in Europe이었습니다하지만 1948년 원고를 완성하고 뒤의 숫자를 바꾸어 1984로 제목을 정해 출판하기로 한 것이지요그렇지만 초기 제목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인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하죠.

 

  “자네는 썩어들어가고 있어.” 그가 말했다. “몸뚱이가 조각조각 부서질 거야자네는 뭔가더러운 때 주머니야이제 몸을 돌려 거울을 다시 봐자네와 대면한 형체가 보이나저게 마지막 인간이야자네가 인간이라면 저게 바로 인간성이라는 거야자아다시 옷을 입으시지.”

 

  윈스턴은 당이 무너지길 바랍니다사상죄를 범한 것이지요그는 당이 내부에서 전복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감시를 받기 때문이죠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되는 상황에서 내부로부터의 전복은 불가능합니다윈스턴이 바라는 인간성을 당원에게 기대하기는 힘듭니다당원 간의 유대관계는 불가능하니까요.

 

옛 문명은 사랑과 정의 위에 세워졌다고 주장했지그러나 우리의 것은 증오 위에 세워진 거야우리 세상에 공포와 분노와 승리감과 굴욕감 외에는 감정이라고 할 게 없어그 밖의 것은 다 때려 부수는 거야모조리 말이야우리는 이미 혁명 전부터 존재해온 사고의 습성을 때려 부수고 있네우리는 이미 부모자식 사이사람들 사이그리고 남녀 사이를 끊어버렸어이젠 어느 누구도 여편네나 자식이나 친구를 믿지 않는 거야.

 

 

  • 빵 한 조각포옹사랑

 

  당 내부로부터의 전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윈스턴은 무산자 proletariat'에게 희망을 갖습니다그들은 감시당하지 않습니다무산자들이 사는 곳에는 텔레스크린도 없습니다그들은 꺼릴 것이 없습니다영사 인구의 85%에 해당하는 무산자만이 당을 전복시킬 수 있다고 윈스턴은 생각합니다문제는 그들이 그럴 의식을 가지지 못하는데 있지요.

 

  그들은 의식을 찾을 때까지는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반란을 일으키기까지는 의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윈스턴은 그것이 인간성이라고 이야기하지요.

 

  노동자들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그들의 내부는 굳어 있지 않았다그들은 윈스턴이 의식적으로 분투하며 다시 배우려고 하는 원시적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무산자들이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아껴둔 빵 한 조각을 던져주는 것죽어가는 사람을 포옹하고 눈물을 쏟고 을 하는 것서로 사랑하는 것윈스턴이 희망을 거는 인간성이란 그런 것들입니다당원들은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하지만무산자들은 할 수 있죠.

 

노동자는 죽지 않는다마당에 있는 저 당당한 여자를 보면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결국에 가서는 그들도 각성할 것이다그리고 그때까지는 천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그들은 새처럼 당이 가질 수도 죽일 수도 없는 생명력을 몸과 몸으로 전해가며 모든 불리한 조건을 견디며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숲에서 우릴 보고 지저귀던 지빠귀 기억나?” 그가 말했다.

  “우릴 보고 지저귄 게 아니에요.” 줄리아가 대꾸했다. “제멋에 겨워 운 거예요그것도 아니지그냥 울었던 거예요.”

  새들도 노동자들도 노래하지만 당은 노래하지 않는다세계 어느 곳에서나런던과 뉴욕에서아프리카와 브라질에서국경을 넘어서는 신비하고 발길이 금지된 나라에서파리와 베를린의 거리에서끝없이 펼쳐진 러시아 벌판의 마을에서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장바닥에서어느 곳을 막론하고 정복당하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한 그 여인과 똑같은 사람들이일하고 아이를 낳느라 괴물같이 되어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독하게 일하면서도 여전히 노래를 부를 것이다저 힘찬 허리에서 언젠가는 의식 있는 종족이 태어날 것이다.

 

 

  • 디스토피아1984와 멋진 신세계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로 시작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그리고 조지 오웰의 1984까지 왔습니다. ‘스토피아 문학 dystopia literature’을 한 줄기로 훑어보고자 해서 시작한 여정이었습니다물론 여기서 다룬 작품 말고도 다른 디스토피아 작품도 많습니다다만 시작은 쉬운 것그리고 가장 유명한 것을 다루고 싶었습니다세 작품 모두 선택에 후회 없는 책이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합니다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은 정말 제각각이지요. ‘유토피아 utopia'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 dystopia'가 될 것인가시대가 흘러도 끝없이 반복될 질문입니다1984와 멋진 신세계가 흥미로운 점은 둘 다 디스토피아를 상정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양식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다는 점이지요공포와 증오로 만들어진 사회와 쾌락과 행복으로 만들어진 사회그리고 각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들은 그 구체성에서 놀람을 금할 수 없습니다처음 1984를 읽을 당시 전쟁은 평화/자유는 굴종/무식은 힘이라는 슬로건에 담긴 진의를 알았을 때의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터무니없어 보이는 말의 무서운 진실에 놀랐죠1984가 불멸의 고전인 이유를 새삼 느꼈죠.

 

  물론 2017년인 지금 1984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그렇지만 1984의 배경이 단순히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지요. 1984년이 지나갔다고 해서 1984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당이 현재를 지배하고과거를 지배하고이윽고 미래를 지배하듯삐뚤어진 권력은 언제든 우리를 1984로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끌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마지막 인간의 사멸을 막기 위해서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윈스턴의 시각을 빌리자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빵 한 조각을 나누고죽어가는 이를 포옹하고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것.’

 

"BIG BROTHER IS WATCHING YOU"조지 오웰의 1984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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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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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위한 시지프 신화: 이방인 그리고 시지프 신화 (1) - 알베르 카뮈



  • 다시 이방인으로

 

  길고 긴 길을 돌아와 이제 본격적으로 이방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먼저 이방인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1시작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부고를 듣습니다장례식을 치르고 다음날 전 직장에서 알던 마리라는 여자를 만납니다같은 층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집니다레몽 친구의 초대로 마리와 뫼르소레몽레몽의 친구 부부는 바닷가에서 놀기로 합니다태양이 내리쬐는 그곳에서 레몽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랍인 무리를 마주칩니다약간의 다툼이 발생합니다이후 혼자 떨어져 해변을 거닐던 뫼르소가 다시 아랍인을 마주칩니다햇볕이 내리쬡니다뫼르소가 아랍인을 향해 총을 발사합니다한 발그리고 잠깐의 휴지다시 네 발. <1>가 끝납니다. <2>에서 뫼르소는 재판을 받습니다. 1년을 걸친 재판 끝에 뫼르소에게 사형 선고가 납니다사제가 뫼르소를 찾아옵니다뫼르소는 화를 냅니다그리고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렇죠이야기는 참 어려울 게 없습니다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뫼르소의 언행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아니 어쩌면 어제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명일 장례식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커피를 마셨다그러자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그러나 나는 엄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좋을지 어떨지 몰라 망설였다생각해 보니조금도 꺼릴 이유는 없었다.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그래서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에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초반부의 몇 구절만 뽑아보았습니다어떤가요뫼르소가 조금 이상해 보이시나요?

 

  뫼르소의 이러한 언행은 작품 전체를 관통합니다엄마가 죽었는데 특별히 슬퍼하는 티를 내지 않습니다상사가 좋은 기회를 주어도 관심 두지 않습니다마리와 함께하지만마리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갑작스레 살인을 저지릅니다심문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거나 감옥 생활을 크게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 뫼르소는 무정한 인간인가?

 

  그러니 이방인을 읽고 나서 오죽하면 뫼르소가 제정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 분들도 많습니다정말 그런 걸까요뫼르소는 무정한 인간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뫼르소는 무정한 인간이 아닙니다그 역시도 감정을 느낍니다다만 그 감정을 겉으로 티 내지 않는 사람일 뿐입니다그리고 과장해서 말하는 법 없이 느낀 그대로 생각하고 말하죠다시 한번 뫼르소의 생각을 살펴보죠.

 

나는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물리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죠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다시 뫼르소는 일상으로 복귀하여 이전과 같이 일을 하겠죠하지만 이 말이 뫼르소의 내적인 변화 역시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살라마노 영감이 개를 잃어버려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뫼르소는 엄마를 떠올립니다뫼르소는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여 설명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만약에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면 나는 매우 거북했을 것 같았다그러나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좀 잃어버려서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분명 뫼르소는 엄마를 사랑했습니다실제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요그건 남들과 다를 게 없는 부분이죠다만 뫼르소가 이 부분에서 놀란 것은 엄마의 죽음이 슬픈 것은 당연한데도 그런 질문을 듣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에게 딱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뫼르소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고기뻐하고화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다만 그 표현이 매우 서툴 뿐이죠뫼르소는 무정한 인간이 아닙니다그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 왜 방아쇠를 당겼는가?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나는 한낮의 균형과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총탄은 깊이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그것은 마치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 읽고 나면 가장 의문이 드는 부분입니다도대체 뫼르소는 왜 총을 쏜 것일까요그리고 왜 첫 발과 둘째 발 사이에 잠깐 멈추었을까요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뫼르소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붉은 바닷가 모래밭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고 이마 위에 타는 듯 뜨거운 햇살이 느껴졌다이번에는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뫼르소는 그럴듯한 근거를 들어 총을 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애당초 뫼르소는 그런 인간이 아니니까요다만 그가 생각나는 것은 붉은 모래밭과 뜨거운 햇살입니다그러나 모래밭과 햇살을 이유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하죠그래서 뫼르소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뫼르소가 무정하고 악한 인간이라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이후 재판에서 이유를 말해보지만 역시 웃음만 살 뿐입니다.

 

나는 빨리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 부조리한 인간 뫼르소

 

  뫼르소는 부조리한 인간입니다그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해석하거나평가하거나설명하지 않습니다그런 행위는 주어진 것을 인간적인 언어로 치환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시지프 신화에서 읽었듯 부조리한 인간은 평준화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습니다부조리한 인간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보는 인간입니다유달리 독특하여 무정하게까지 보이던 뫼르소 언행의 이유입니다.

 

  세상에 산재하는 부조리를 느끼지 못한 이들의 눈에는 뫼르소는 이해 가지 않는 사람이지요대표적으로 뫼르소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가 그렇습니다그는 종교를 믿고 삶의 이유를 가진 인물입니다검사는 어떻게 해서든 뫼르소의 행동에 의미와 동기를 부여합니다그리하여 뫼르소의 살인이 어머니의 죽음에서부터 모두 예고된 그리고 의도를 가진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하지만 뫼르소가 보기에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어머니의 죽음에서 자신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과 이후의 살인은 하등의 인과관계는 없는 것입니다살인은 그저 태양 때문이었습니다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오직 셀레스트만이 뫼르소를 조금 이해했을까요?

 

다시나의 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증언대위에 손을 올려놓았다뭔가 할 말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건 하나의 불운입니다불운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나 압니다불운이라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내가 볼 때 그건 하나의 불운입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운빠져나갈 수 없는 부조리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그러니 뫼르소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낍니다.

 

내가 어쩐지 침입자 같고 남아도는 존재인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도 들었다.

 

 

  • 사형수 뫼르소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내가 몸뚱이를 비벼 대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심각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뫼르소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집니다법정은 뫼르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그러니 오히려 소설과도 같은 검사의 말에 동조하여 사형 선고를 내리죠사형 선고가 내려진 이후 뫼르소에게 죽음은 단단한 벽처럼 실재합니다.

 

  뫼르소는 알고 있습니다삶에 의미 따위는 없고 죽음은 인간인 이상 누구에게나 예고된 결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결국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뫼르소에게 부속 사제가 찾아옵니다사제는 뫼르소에게 신을 믿으라고 종용하죠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부조리한 인간은 그런 비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절망한 것이 아니라고 그에게 설명했다다만 나는 두려울 뿐이었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장차는 죽을 것입니다그때 가서도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오그 무서운 시련을 당신은 어떻게 맞을 것입니까?” 나는내가 지금 맞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시련을 맞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그럼 아무 희망도 없이죽으면 완전히 없어져버린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까?” 하고 말했을 때그 목소리 또한 떨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부조리한 인간희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인간뫼르소는 비약을 거부합니다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그럴듯하게 바꾸는마치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제를 그리고 그가 말하는 것을 뫼르소는 거부합니다.

 

그는 또 하느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며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명하려 했다나는 하느님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뫼르소는 처음으로 격정적으로 폭발하여 외칩니다.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느냐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나에게는 확신이 있어나 자신에 대한모든 것에 대한 확신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나의 인생과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그렇다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아무것도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확신희망이 없다는 확신부조리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모든 것으로부터 뫼르소는 자유를 느낍니다부조리에 일관된 자세로 반항합니다오직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소진하겠다는 열정만을 느낍니다.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나는 전에도 행복했고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모든 것이 완성되도록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 인간은 모두 사형수다

 

  너무 자극적인가요하지만 사실입니다궁극적으로 인간은 모두 사형수입니다태어난 이상 인간에게 죽음은 예고된 결말로 언제나 공고히 서 있습니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로장생을 꿈꾸며 죽음을 피하려 했던 어떤 이들도 있었습니다하지만 그 누구도 같은 결론을 피할 수는 없었죠.

 

  궁극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내일이 오기를 고대합니다반복되는 삶정해진 죽음내일을 바라는 마음인간은 부조리를 느낍니다카뮈는 부조리를 결론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았죠.

 

지금까지는 부조리가 결론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 논고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는 것이 좋겠다.

 

  『시지프 신화에서 이야기하고이방인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해가 가시나요이해가 가지 않으신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저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열심히 준비하였다고 생각하지만저 역시 전문가가 아닌 한 독자로서 부족한 점이 있음은 분명하니까요다만 바라건대 찾아가기 어려운 길에 최소한 틀린 방향을 제공하지 않고 카뮈가 생각했던 그 무언가의 테두리에라도 닿을 수 있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해했다고 하여도 동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생에 대한 카뮈의 시각과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에 무작정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죠동의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좀 더 생각이 필요한 부분에서 우리 나름대로 카뮈의 입장에서 혹은 다른 입장에서 논지를 이어갈 수도 있겠죠그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생에 대한 고민은 생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고 보지 못했던 인식의 어두운 구석에서 낯선 야생화 한 송이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언제나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입니다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보았던 것을 새로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생각의 저변을 넓히고 라는 것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이방인을 읽어보지 못했던 분들과 이방인을 이미 읽어보셨던 분들 모두 뫼르소의 마지막을 지켜보시는 것은 어떨까요부조리자유반항열정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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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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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을 위한 『시지프 신화


  1957년 만 44세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젊은 작가가 있습니다최연소는 아니었지만노벨문학상이 작가의 생애를 고려하여 수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나이는 매우 젊었습니다그만큼 이견의 여지가 없이 훌륭한 작품이었기 때문이겠죠그리고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해준 작품은 1942년 출간된 이방인 L'Étranger입니다그 젊은 작가는 바로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입니다참고로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러디어드 키플링 Rudyard Kipling‘으로 그의 나이 만 42세에 수상하였고 그 유명한 정글북 The Jungle Book』 작가입니다.

 

  카뮈의 이방인은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유명한 고전입니다게다가 두껍지도 않아서 많은 분이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그런데 사실 카뮈의 이방인은 읽기는 쉬워도 이해하기는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더더욱 공감하실 거로 생각합니다내용이 복잡할 것도 없음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도대체 주인공은 왜?’라는 물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죠그래서 더러는 이방인이 왜 유명하고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처음 이방인을 읽고 나서 이게 왜?’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뭐지?’라는 생각은 했었죠이후 요모조모 뜯어 살펴보고 어렴풋하게나마 이방인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명확하게 콕 집어 이거다!’라고 말하기엔 어려웠죠이번에 이방인』 서평을 쓰기로 마음먹고 나서도 이방인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서평을 쓰고 싶었습니다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을 그대로 남겨놓고 그냥 그럴듯하게 얕게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이방인을 조금 더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뮈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리고 이에 대해 카뮈는 아주 친절하게도(?) 이방인에 담긴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하였습니다바로 같은 해 출간한 시지프 신화 Le Mythe de Sisyphe입니다굳이 친절하게도라는 말 뒤에 ‘?’를 붙인 까닭이 궁금하실 수도 있겠습니다이는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시면 아주 잘 이해가 가시리라 생각합니다간단히 말하면 시지프 신화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죠이방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기대감에 펼쳤던 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부족한 제 머리를 얼마나 나무랐는지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여러 번 머리를 쥐어 싸매며 시지프 신화를 읽고 다시 이방인을 읽었을 때의 그 충격이란전에 쉽사리 이해 가지 않던 주인공 뫼르소의 행동과 생각이 이해가 가고감탄하며 이방인을 다시 읽었습니다실로 즐거운 경험이었어요그리고 카뮈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금도 의구심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서평을 쓰기에 앞서서 시지프 신화를 먼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보려 해요이방인을 읽으려 하시는 혹은 이미 읽었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혹여나 그럼에도 이해가 안 가신다면 글쓴이의 능력 부족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부조리주의 Absurdism

 

  카뮈는 부조리주의 Absurdism’의 대표 인물입니다카뮈의 사상을 실존주의 Existentialism'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카뮈는 생전에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었죠그럼 도대체 부조리 Absurdity'가 뭘까요우리는 흔히 부조리라는 단어를 옳고 그른 판단에 관련해 사용하지만카뮈가 말하는 철학에서의 부조리는 의미가 다릅니다카뮈의 논지를 따라가며 부조리가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 부조리의 추론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무엇 때문에 사는 거지?’ 반복되던 삶에 의문이 드는 순간참을 수 없는 권태가 느껴집니다삶의 의미에 대한 의구심이 솟아오르는 때비합리적인 세계와 합리적인 의식이 부딪힐 때 인간은 부조리를 마주합니다.

 

기이한 영혼의 상태즉 공허가 웅변적이 되고일상의 판에 박힌 행동을 이어 주던 끈이 툭 끊어지면서 마음이 그 끈을 다시 이어 줄 매듭을 찾으려 해도 헛일이 되는 그 기이한 상태

(부조리의 첫 징후)

 

그리하여 이 언덕들다사로운 하늘이 나무들의 윤곽이 지금까지 우리가 부여해 왔던 허망한 의미를 단숨에 잃어버리고서 이제부터는 잃어버린 낙원보다도 먼 존재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삶의 무관심함비합리적인 세계를 마주할 때 인간은 부조리를 느낍니다부조리는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거기에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인간 의식이 한계에 다다른 황량한 사막과도 같죠.

 

돌연 환상과 빛을 박탈당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낀다이 낯선 세계로의 유배에는 구원이 없다그에게는 잃어버린 고향의 추억도 약속된 땅의 희망도 다 빼앗기고 없기 때문이다인간과 그의 삶배우와 무대 장치의 절연(絶緣),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부조리의 감정을 느낀 인간은 고민합니다어떻게 해야 할까요삶에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을 마주한 부조리한 인간은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까요아니면 살기를 멈추어야 할까요그래서 카뮈는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을 살 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다그러나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기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진리다삶에 대한 이런 모욕삶을 수렁에 빠뜨리는 이런 부정(否定)은 과연 삶의 무의미에서 유래하는 것일까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 부조리의 벽

 

  카뮈는 계속 나아갑니다부조리를 마주한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계속 살 것인가아니면 그만 살 것인가부조리는 정말 인간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것일까?

 

  계속 산다고 하여도 어떤 희망도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누군가는 ()’ 혹은 종교를 무의미의 대안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이에 대해 카뮈도 생각합니다하지만 카뮈는 그런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하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실제로 나의 척도를 초월한다는 한 가지 사실뿐이다나는 이 사실로부터 부정(否定)의 결론을 끌어내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바탕 위에는 아무것도 세우고 싶지 않다.

 

  부조리한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뿐입니다하지만 ’ 혹은 종교의 도입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일 뿐이죠철학자 야스퍼스의 초월자 존재에 대한 추론에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실패가 가능한 일체의 설명과 해명을 초월하여허무가 아닌 초월적인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돌연히 그리고 인간적 믿음이라는 맹목적인 행위에 의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 존재를 그는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상상할 수 없는 통일이라고 정의한다이리하여 부조리는 신(이 말의 가장 넓은 뜻에서)이 되고이해의 무능력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밝혀주는 존재로 돌변한다논리적인 차원에서 이런 추론을 성립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나는 이것을 비약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카뮈는 위와 같은 야스퍼스의 추론을 비약이라고 말합니다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초월적인 존재()를 도입하는 것은 억지라고 말하는 것이죠그런 추론은 결국 부조리를 마주하기보다는 뛰어넘어버리는 것입니다카뮈는 부조리 자체를 통합하여 마치 부조리가 없는 것 혹은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보다는 일관된 자세로 반항하며 부조리에 대면하기를 요구합니다.

 

투쟁은 회피되었다인간은 부조리를 통합하고 그 합체(合體)에 의하여 대립분열절연(이혼)이라는 부조리의 근본적인 성격을 없애 버린다이러한 비약은 일종의 회피다.

 

  카뮈는 부조리를 통합하거나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답을 찾지 못한다고 답 자체를 없애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분명 생은 이해할 수 없지만 생의 결론이 그것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인간은 계속해서 부조리와 대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카뮈는 자살도 부조리에 대응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먼저자살을 통한 부조리의 해소는 어떠한 정당성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지만 결코 누구도 진정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게다가 자살은 부조리를 끌어안고 없애버리는 것과 같습니다역시 대면 혹은 반항과는 거리가 있죠.

 

자살은 그 속에 동의(同意)의 의미가 전제되므로 반항과는 정반대다자살은 비약과 마찬가지로 한계점에 이르러서의 수용이다.


 

  • 부조리의 자유

 

  이해할 수 없는 생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그것은 회피이고 기만입니다그렇다고 절망하여 그로부터 탈출을 감행해서도 안 됩니다자살 역시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수용이니까요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카뮈는 계속해서 부조리를 마주하고 반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이다부조리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부조리를 주시하는 것이다에우리디케의 경우와는 반대로부조리는 오직 우리가 그것을 주시하던 눈길을 딴 데로 돌릴 때 죽어 버리는 것이다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곧 반항이다.

 

반항은 동경이 아니다반항에는 희망이 없다그 반항은 깔아뭉개려 드는 운명에 대한 확인 그러나 그에 따르기 마련인 체념을 거부하는 확인일 뿐이다.

 

  부조리는 각 항의 대립에서 생겨납니다항의 대립이 사라지면 부조리도 사라지고 말죠하지만 부조리를 없애서는 안 됩니다그러니 부조리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반항하기 위해서는 부조리를 마주해야 합니다의식을 놓치지 말고 주시해야 합니다.

 

  바닥없는 이 확실성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확실히 느낌으로써 그 삶을 확장시키고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근시안이 되지 않고 삶을 관통하는 것그것이야말로 어떤 해방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이 새로운 독립은 모든 행동의 자유가 다 그렇듯이 기한부다그것은 영원을 담보로 한 수표를 끊지 않는다그러나 독립은 자유의 환상들을 대신한다.

 

  부조리를 깨닫고 반항하는 인간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설정하지 않습니다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스스로 환상을 만들고 속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카뮈는 말합니다비로소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이 자유라고 믿어왔던 모든 환상의 제약으로부터 풀려나서 삶을 신이 아닌 인간의 영역으로 공고히 하고 희망 없는 진정한 자유를 성취합니다.

 

  이제 결론입니다부조리를 깨달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의 삶반항자유를 느낀다는 것그것을 최대한 많이 느낀다는 것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며 최대한 많이 사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살아가는 나날 동안 줄곧 끊이지 않고 따라다니며 둔탁하게 울리는 이 소리를 모르지 않는다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오직 하나이 소리는 꼭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 시지프 신화 (원래 발음상 시지포스지만 카뮈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

 

  이제 지금까지 파악한 부조리주의를 가지고 시지프 신화를 바라봅니다. ‘시지프 신화는 그 이름은 모를지언정 내용은 대부분 아실 거예요. ‘시지프라는 인간이 신을 속인 죄로 돌을 산 정상까지 굴려 올려놓아야 하는 형벌을 받습니다하지만 돌은 정상에 도달하면 바로 바닥으로 다시 떨어지고시지프는 다시 내려가서 돌을 굴려야 하죠끝나지 않는 영원한 형벌입니다이에 대해 카뮈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그의 열정뿐 아니라 그의 고뇌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신들에 대한 멸시죽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 존재를 바쳐야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이것이 이 땅에 대한 정열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다.

 

  시지프에게 내려진 형벌그의 행동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힘들게 돌을 굴려봐야 결국에는 떨어지고 다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지요하지만 이 희망 없는 행위를 시지프는 계속합니다어떤 의미도 없는 일에 반항하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소진할 뿐입니다시지프는 부조리한 인간입니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그렇게 비로소 부조리를 의식적으로 마주하면서 시지프는 운명의 주인이 됩니다시지프의 반항시지프의 자유그리고 시지프의 열정.

 

  시지프의 소리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은 침묵한다.

 



* 다음 포스팅 이방인 그리고 시지프 신화 (2) - 알베르 카뮈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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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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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속에서 불행을 찾다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하실까요돈을 많이 버는 삶건강한 삶대답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겠습니다그러나 분명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건강명예든 뭐든 어찌 보면 전부 행복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행복이라행복참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행복하기만 하다면 바랄게 더 있을까요그러나 막상 행복할 때에는 행복한지 자각하기 쉽지 않고불행할 때에는 지나간 행복이 얼마나 소중했음을 깨닫기 마련입니다손에 잡힐 듯 말 듯 쥐었다 생각하면 어느새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지요행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런데 이렇게 바라마지않는 행복이 보장된 사회라면 어떨까요그런 세계에서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고민하지 않고 가시겠어요모두의 행복이 보장되어 모두가 행복한 멋진 신세계’. 오늘 이야기할 책은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입니다.

 

 

  먼저 헉슬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과학사에 조금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일지 모릅니다올더스 헉슬리는 진화론의 수호자 다윈의 불독 Darwin's Bulldog'라 불렸던 토마스 헨리 헉슬리 Thomas Henry Huxley‘의 손자입니다아버지는 레너드 헉슬리 Leonard Huxley' 작가였고형은 '줄리언 헉슬리 Julian Huxley'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이며이복동생 앤드류 헉슬리 Andrew Huxley'는 노벨상 수상자입니다어마어마한 가문이죠올더스 헉슬리의 천재성은 그의 가문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입니다.

 

  헉슬리는 원래 의사를 꿈꿨습니다하지만 학생 시절 갑작스러운 병으로 몇 년간 실명하게 됩니다이후 시력을 차츰 되찾기는 하였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작가로 전향하게 되었죠애당초 헉슬리의 관심분야와 그의 가족 내력을 생각하면 멋진 신세계에 나타나는 과학적 상상력은 당연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또한 그는 일전에 소개한 적 있던 SF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죠.

 

  『멋진 신세계의 영제는 'Brave New World‘입니다이는 그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의 극작품 템페스트 The Tempest에 나오는 대사입니다작중 야만인 The Savage'로 불리는 이 멋진 신세계를 보며 외치는 말이죠도대체 어떤 세계이기에 존은 그토록 멋진 신세계라는 말을 읊조렸던 것일까요?

 

 

  이 멋진 신세계의 주된 특징은 엄마아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이상하죠엄마아빠가 존재하지 않는다니그렇다면 도대체 인구는 어떻게 유지할까요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인공적으로 제조됩니다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 줄지어 놓인 유리병에서 인간이 만들어지죠그러니 이 멋진 신세계에서 엄마아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모두가 컨베이어 벨트 위 유리병에서 태어나니까요혹여나 임신이 될까 여성에게는 불임 수술이 권장되죠.

 

“6개월 치의 봉급에 해당하는 상여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은 논할 필요도 없겠거니와수술은 사회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 다음도려낸 난소를 산 채로 보존하여 활발하게 발육하도록 만드는 몇 가지 기술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수술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사회 구성원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죠게다가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모체 태생과 관련된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낍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국장이 요약해서 말했다. “부모란 아버지와 어머니다.” 사실은 학구적인 어휘였지만출생에 관한 얘기를 더러운 음담패설이라고 여겨 갑자기 크게 당황한 소년들은 입을 다물고 눈길을 돌렸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는 태아에게는 적절한 조작이 가해집니다계급이 먼저 정해지고그에 따라 모든 투입 요소들이 결정되죠목적에 맞게 맞춤형으로 인간은 태어납니다.

 

  “계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그에 따라서 산소를 더 적게 공급합니다.” 포스터가 말했다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기관은 두뇌였다다음으로는 뼈대정상적인 수준의 산소 가운데 75퍼센트만 공급을 받으면 난쟁이들이 태어난다.

 

  이런 것들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요낮은 계급의 사람은 어떻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애초에 그럴만한 지능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이유겠지만 철저히 수면 유도와 훈련을 통해 세뇌시키기 때문입니다각 계급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계급에서 진정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세뇌당하죠어떤 기만도 아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한다는 것.” 국장이 단호하게 힘주어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다불가피한 사회적인 숙명을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훈련모든 습성 훈련이 목표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는 모두의 것이다라는 가치 아래 남녀는 제한 없이 성관계를 갖도록 권장되고소마 Soma'라는 마약이 합법적으로 모두에게 적절히 제공되는 사회이상이 멋진 신세계의 모습입니다어떤가요정말 멋진 신세계인가요?

 

 

  받아들이기 힘드실지 모르겠습니다이런 말도 안 되는 사회가 어떻게 멋진 신세계냐고 어이없어 하실 수도 있겠죠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너무 이상하고 때로는 끔찍하기도 하니까요문제는 이 멋진 신세계 속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가 행복하다는 점이죠그렇습니다모두가 행복해요누구도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그가 누구였든지 간에 살아있을 때는 행복했으리라는 점이죠지금은 누구나 행복하니까요.”

  “그래요지금은 누구나 다 행복하죠.” 레니나가 맞장구를 쳤다매일 밤 150번씩 반복되는 이 말을 그들은 12년 동안 들어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그럴 기회가 애초에 주어지지 않으니까요세계가 고르고 골라서 준 것만을 느끼고 인지하죠그러니 행복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오직 멋진 신세계 외부에서 살았던 야만인 만이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가 처음에는 감탄의 의미로 내뱉었던 멋진 신세계여.’라는 말이 점차 의미를 달리하는 게 보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멋진 신세계이에 분노하는 야만인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할 뿐입니다마지막 통제관과의 대화에서 존의 외침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나는 신을 원하고시를 원하고참된 위험을 원하고자유를 원하고그리고 선을 원합니다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행복하면 된 거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봅니다그런데 정말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멋진 신세계는 분명 모두가 행복한 세계입니다그런데 그러면 된 걸까요진짜 멋진 신세계처럼 행복해도 일단 행복하면 그만인가요?

 

  행복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다양한 종류가 있고서로 층위를 달리하죠행복에도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행복은 다른 행복보다 더 나을 수도 있죠물론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는 개인의 자유겠지만요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래요멋진 신세계에서의 행복을 누리시겠습니까아니면 지금 우리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시겠습니까솔직히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그만큼 우리 세상이 살기가 팍팍하기 때문이지요이런저런 고민과 어려움에 치이기보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멋진 신세계에서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도대체 얼마나 행복이 귀해졌으면 행복의 질을 고려하지 않게 된 걸까요멋진 신세계를 읽고 계속해서 저를 괴롭히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언제나 불행보다 나은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그런데 존의 외침을 듣고 나니 조금 생각이 달라지네요정말 행복은 무조건 불행보다 나은 것일까요어떤 행복은 어떤 불행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존은 행복하기를 거부하고 불행하질 권리를 주장했겠죠.

 

  간혹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합니다답 내리긴 힘들고주변에 묻기에도 조금 난데없는 감이 있죠어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고민만 늘어나는 느낌이네요그래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읽고 행복과 불행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역시나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요.

 

  한번 여러분도 읽어보시고 같이 고민해보는 건 어떠신가요함께라면 어쩌면 답을 찾을지도 모르니까요기억 전달자 The Giver에 이어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 격인 멋진 신세계를 살펴보았습니다다음번에는 멋진 신세계와 항상 같이 언급되는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의 1984를 다시 읽어봐야겠네요이상 행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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