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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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십 년은커녕 오 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은 휙휙 바뀌어갑니다지금 눈에 닿는 것들만 생각해봐도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어렵지 않게 실감할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어떤 것들은 참 변하지 않아요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여전히 지지부진 변하지 않는 것들이요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그런 것들은 우리 곁에 좀처럼 변하지 않은 채 있어 왔으니까요다만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바뀌지 않는 무엇 때문에 김지영 씨는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상처를 받습니다그리고 그녀가 겪는 아픔과 슬픔이 그녀만의 것은 아닙니다대한민국에 살았던살고 있는살아갈 여성들의 것이기도 하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제목 그대로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더구나 여성분들이라면 구구절절 공감할 그런 이야기입니다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님에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이 정말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이겠죠.

 

  82년생 김지영 씨가 겪는 차별은 설마 이렇게까지?’라는 의문이 들지 않습니다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오늘도 누군가 겪었을 차별 이야기입니다남성 독자인 저 역시 김지영 씨의 삶이 특별히 가슴 아픈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그녀를 보면 엄마가누나가주변 여자 친구들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 남아선호사상(男兒選好思想)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원래 그랬으니까.

 

  원래 그랬으니까. 생각해보면 무서운 말입니다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죠남자아이장남은 더 귀하니까 더 많이 받아야 한다원래 그랬으니까요형제만 있는 집이라면 위와 같은 차별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부모님의 입장은 달랐겠죠대를 이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남자아이에 대한 선호가 극명하게 나타나던 시절끝끝내 세 번째 아이도 여아라는 이유로 남몰래 아이를 지워야 했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 이야기는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 출구 없는 미로

 

  ‘원래 그랬으니까에서 시작한 차별은 김지영 씨의 삶을 계속 따라다닙니다언제나 남학생들이 앞 번호여학생들은 뒷 번호였습니다주민등록증에서 남자는 1로 여자는 2로 시작했죠. ‘여자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로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김지영 씨 삶에 녹아 있습니다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고취직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고취직을 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김지영 씨가 잘못해서가 아닙니다그녀는 언제나 열심히 했고실제로 잘하기도 했죠하지만 결국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김지영 씨였고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했던 것도 김지영 씨였습니다.


주어진 일을 해내고 진급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고내 수입으로 내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보람 있었다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책 읽는 내내 듭니다지영 씨가 겪는 일에 막연한 분노가 치솟기도 하죠하지만 누구에게 이 분노를 향해야 할까요김지영 씨를 따라오던 남학생자신을 씹다 버린 껌으로 비유했던 선배여자 지원자들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던진 면접관? 1500원짜리 커피를 들고 공원에서 쉬던 김지영 씨를 맘충이라고 수군대던 회사원?

 

 


  • 그 한마디

 

  분명 분노해야 합니다잘못된 일에옳지 않은 일에 화를 내야 합니다김지영 씨의 친구 유나가 그러했듯 부당함을 호소하고 고쳐야 합니다하지만 분노는 위험하기도 합니다방향과 목적을 잃고 그 자체의 불같은 속성으로 파괴적으로 번질 수 있으니까요김지영 씨가그리고 다른 여성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분노를 아무에게나 돌릴 수는 없습니다의도가 오도되지 않고 적절한 방법으로 분노라는 에너지를 이끌어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같이 분노하고분노를 표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요한마디그 한마디를 건네는 것.

 

맹수에게 새끼를 잃은 동물처럼 울부짖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의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어머니가 미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할머니 의사의 그 한마디 덕분이었다.

 

  먼저 아파하는 이들을 감싸 안는 것그대의 잘못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말을 건네는 것그리고 김지영 씨를 김지영 씨로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

 

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했다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자신도 많이 겪었다고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결국 김지영 씨는 학원을 그만두었고이후로도 한동안 어두워진 후에는 정류장 근처에 가지 못했다얼굴에서 웃음을 지웠고모르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남자들이 다 무서웠고계단에서 동생과 마주치고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그럴 때면 여자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내 잘못이아니다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많다여자가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랫동안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립글로스는 뭐야?”

  “나 지금 바른 거색깔 괜찮지우리 피부톤 비슷해서 잘 받는 색도 비슷하잖아.”

  엄마도 여자라거나집에만 퍼져 있지 말고 좀 꾸미라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한다깔끔하다.

 


 

  •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정말입니다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공감하고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인류가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인간은 완벽하지 않고잘못된 일은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십 년 동안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분명 언젠가 잘못은 고쳐지고 세상은 나아질 거예요아파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감싸 안고그들이 겪는 부당함에 항의하고쓰러져가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82년생 김지영 씨 혼자서 답을 찾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죠그 어느 때보다 남녀의 대립이 심한 요즘분노만으로 김지영 씨의 삶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김지영 씨를 존중해주고 그녀를 아끼고 안아주는 남편 정대현 씨의 존재처럼한쪽 성이 겪는 차별의 문제는 편을 갈라서 다른 성을 비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듬고 나아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끝으로 노래 하나를 붙이고 갑니다. [브로콜리너마저 울지마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지금까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 같지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뿐이지 그렇지 않니


울지 마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모두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뿐이지 그렇지 않니


울지 마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브로콜리너마저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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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2017-11-2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핫한 ‘82년생 김지영‘이네요. 저도 책을 읽으며 크고 작은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30-40대의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마지막 장면에서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런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여전히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냉정하게 반응하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도 느꼈습니다.

낙서 2017-12-03 20:47   좋아요 1 | URL
마지막 냉철한 의사의 판단이 다소 껄끄럽게 느껴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이것이 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누구나 그것이 자신의 현실과 결부되면 손해를 감수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작중 의사가 밉기도 하였지만, 실상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대상은 그러한 차별을 개인에게 ‘이익‘이라는 이유로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의 미흡함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