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상상력과 법적균형감각으로 한국인들의 억울함의 실체를 풀어냈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적 현상과 법이 적용되는 재판 사이의 관련성을 세밀하게 다룬 것 같지 않다. 서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와 원고 사이의 줄다리기를 하며 무엇이 더 정의로운가를 따져보는 여러 사례들은 재미있었고 술술 읽혔다. 그러나 흥미롭지 않았다. 좀 더 흥미롭고 생각의 전환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질문을 기대했으나 기대이하였다. 비슷한 류의 책을 미리 접해서 그런지 1/3 가까이 읽은 시점에서 뒷 내용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읽어갈수록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압축되지 않고 여러 생각들이 산발적으로 널려있는 느낌이다. 다양한 사례에서 어떤 판결을 내리는 것이 정의에 더 가까우며 억울함을 덜어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면 판결vs판결, 이쪽 저쪽의 사정을 들어보며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판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싶다면 판사유감을 읽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계속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읽다 말다를 반복하다보니 흥미가 수직하락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역시 소설은 한번에 읽어내려가야 하나보다. 다시 펼쳐 볼 것 같지 않으니 이만 읽고 있는 책에서 삭제하겠다. 시간이 날 때 에코의 다른 책에 도전하여 반드시 완독을!
걸리버여행기, 의미를 따지지 않고 본다면 정말 재미있는 책이이었다. 상상의 왕국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실제로 보고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솟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재미보다 풍자를 통한 날카로운 현실사회비판에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의 상당수 부분에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소인국에서 달걀을 깨는사소한 방식을 둘러싸고 전쟁까지 불사하는 장면을 그리며 독자의 비웃음을 유도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우리는 우리의 현실정치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현실과 책 속의 정치시스템을 유추하여 비교하게 된다. 이 대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러한 유추의 과정에서 우리는 정치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을 상상할 수 있기보다 `정치인들이란` 생각을 하며 정치혐오의 수준이 높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아이들과 함께 읽어서 이 부분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정치에 불만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고 정쟁을 사소한 사건을 둘러싼 유치한 싸움으로 치부하며 정치의 중요성을 끌어내리는 듯한 뉘앙스는 참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