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합본]120일의 계약결혼 (전3권/완결)
재겸 / 로망띠끄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제 점수는요. 별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반이에요.

이 작가님이 참 잘 잘 쓰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은 유려하고 인물이 매력적이며 유기적이고 흥미로운 사건 전개가 시선을 잡아끈다. 그래. 그런 작가님의 소설이 이렇게 점수가 낮은 게 슬프단 말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작가님의 소설 몇 개를 간잽이 해보았다. 연재처에서 주는 무료 대여권으로 짬짬히 들춰봤단 소리다. 두 개의 작품을 가볍게 읽다 중단했고, 하나에 크게 실망했다. 어떤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그 작품에서 느낀 단점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별 반 개는 이것 때문에 깎았다. 나머지 하나는 흥미로웠던 전개에 비해 결말이 많이 미흡해서 깎았다.

타고난 환경에 비해 삶이 평탄치 못했던 처녀 엘루이즈는 30대의 노처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실종되었으며, 하나 남은 가족이었던 언니는 사랑의 도피를 꾀했다가 장애를 가진 자식을 안고 돌아와 목숨을 잃었다. 그 모든 불행을 거쳐 엘루이즈는 분에 맞지 않는 거대한 저택과 제대로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조카를 떠안고 비틀비틀 삶을 일궈가고 있었다. 그래도 운이 따라 이정도 불행에서 그쳤다고 위안하면서.
돈은 썩어나게 많지만 진정한 사랑은 찾지 못한 마커스 행어는 엘루이즈보다 세 살이 어렸다. 마커스는 계속해서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그 어떤 매혹적인 여인을 만나도 마음이 통하는 순간 불씨는 꺼져버렸다. 고생이라고는 허전한 가슴 말고는 없던 부유한 청년은 그날도 사랑을 쫓아 달리다가 우연히 마주한다. 행색은 초라하지만,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 같은 한 여인을.
조카 줄리엣을 위해 떠밀리듯 휴양 도시 클리프를 찾은 엘루이즈는 우연한 기회에 마커스와 마주치고, 여행 가방을 잃어버린다. 마커스는 구애하던 여인에게 차인 후, 반쯤은 충동적으로 엘루이즈를 돕게 된다. 마침 마커스가 구애하던 벨로나 공작부인은 ‘유부남’만을 꼬시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미망인이었고, 옴쭉달싹 못하고 마커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된 엘루이즈는 이용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상대였다.
그래서 시작된, 120일의 계약 결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약속이 그렇듯이 결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조를 깨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길어야 2개월짜리 유효기간을 가진 사랑을 반복하던 마커스를 신뢰하지 못한 엘루이즈는 끝내….

어떻게 생각하면 전형적이지만 충분히 자기만의 매력을 지닌 이야기라서 자세한 스토리는 생략한다. 간략하게 쓰면, 그럴 줄 알았어, 밖에는 남지 않을 것 같다.
설정도 흥미롭고, 내용도 흥미롭다. 엘루이즈는 귀족이지만 작위도 팔아먹어야할만큼 가난하고 마커스는 중인이지만 작위를 사도 돈이 남아돌만큼 부자라서 신분격차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장르가 로맨스판타지인데 판타지 요소가 눈꼽만큼도 없는 점은 마음에 안 들지만, 딱히 들어갈 부분도 없는 내용이다.
크게 아쉬운 건 베드씬이 나오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내용 전개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점이랑 마무리가 정말 허술하다는 점. 내용과 설정이 거의 연계가 안 되는 게 아쉽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페이지가 수월하게 잘 넘어가고 아쉬운 것 없이 재밌게 잘 읽히는 점은 좋음.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인물 구성이 좋아서 장면마다 주고받는 대화나 행동이 매력적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주인공 커플의 합이 훌륭해 매순간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가님 다른 작품에서 크게 느꼈고, 이 작품에서도 설핏 비치는데, 작가님이 신분제나 종교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신 게 보인다. 설정은 공부를 하신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섬세한데, 정작 그 세계 속에 사는 인물들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시대상을 머릿속에 박아넣고 외운 것뿐, 그런 모양새가 어째서 왜 만들어졌고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 보인다. 위에 가볍게 적은 설정과 인물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과도 이어지는 부분인데, 솔직히… 이렇게 쓸거면 시대극 안 쓰셨으면 좋겠다. 현대극 쓰시면 제가 사랑할 자신이 있는데요.
다른 로판에서도 종종 느끼는 바지만, 유난히 이 작가님께 크게 느껴지는 건 작가님이 워낙에 글을 잘 쓰셔서다. 인물을 이렇게 잘 짜는데 시대상이 조금도 녹아있지 않은 건 왜예요….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건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건 아마도 이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진짜 속상해.

윗문단으로 감상을 대충 끝내려다가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겠다 싶어서 가볍게 정리하자면, 인물이 매력적이고 인물간 주고받는 대화나 행동에 박자감각이 좋아서 장면이 매력적이며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좋은 작가님인데, 설정이나 시대상과 각 인물들이 긴밀히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감동을 깎아먹는 감이 있음. 베드씬이 스토리와 동떨어진 느낌이 강하고 마무리가 허술하지만 위에 언급한 장점으로 인해 가볍게 읽기엔 충분히 재밌으며, 가볍게 읽기에 내가 언급한 단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재밌게 읽을만한 소설입니다.
앞에도 있긴 하지만 별점 5점 만점에 3.5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