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도 단편집도 잘 읽지 않는 내가 어쩌다 벌써 네 번째 SF 단편집을 읽게 되었나 모르겠다. 이게 다 영업하는 친구 때문이야. 농담이다. 좋은 작품 많이 읽어서 좋다.

각 단편 감상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적인 감상 정리를 한 번 해야할 것 같은데 무엇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켄 리우보다는 훨씬 빠르게 읽히고 읽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만큼 내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작가이기도 했다. 단편집이라서 그런지 이것도 그렇고 종이동물원도 그렇고 작가의 가치관이나 시야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게 참 공감이 안 됐다. 하지만 동시에 적절하고 사려깊은 소재 선정, 노련하게 풀어가는 솜씨 같은 것은 감탄스러웠다.
미국 SF 단편집을 읽는 게 이걸로 세 번째인데 (하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쓴 체체파리의 비법. 감상문이 없어서 조만간 다시 읽고 쓸까 싶다.) 친구가 미국 SF 도장깨기를 하고 있어서 더불어 함께하게 될 것 같다. 동화와 환상문학을 즐겨 읽는 나로서는 달갑기도 하고 달갑지 않기도 하다. SF와 환상문학, 동화의 경계는 선명한 듯 흐릿해서 본래 내가 좋아하던 것을 즐기는 듯 하면서 동시에 멀리 여행을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을 다 읽고 나서야 드는 감상이지만 가장 작가 답지 않은 단편이란 느낌이다. 천일야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고, 그만큼 동화나 환상문학에 가까운 분위기다. 또,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미국적이고 기독교적인 색채가 옅은 작품이기도 하다. 테드 창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인 자유의지가 삶을 견고한 견고한 일직선으로 보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배경 탓인지 순환하는 고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 뒷편의 창작 노트에서 테드 창은 이 작품의 소재로 쓰인 앞과 뒤의 시간의 흐름이 다른 문, 그런 형식의 타임머신에 대한 영감을 얻은 논문에 대해 간단히 기술해 놓았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동화/신화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결국 우리의 삶을 기술하는 또다른 방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숨>
이거 아름웠다. 이토록 정교하고 절망적인 우주라니. 결과만을 놓고 보면 우리의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과정이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모든 인류가 그저 조금씩 느려지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린다는 게 말이다. 이 진실을 깨달은 과학자의 자세도,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탐구 과정도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나도 저런 신체를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해야할 일>
이 단편에 대해서는 마음이 복잡하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고 실험에 감탄하는 심경과 그 사고 실험이 자아낸 결과에 조금도 공감할 수 없어 느끼고 마는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무어라고 딱 떨어지는 감상을 내놓을 수 없게 한다.
대체 미국인에게 자유의지란 무엇이길래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은 인류가 하나하나 자신의 삶을 정지해간다는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얼마나 과장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발상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흐르는대로 역사를 일구어온 한국인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세계 최강을 논할 수 있는 나라의 국민에게 허락된 오만함인걸까.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최근 인공지능 관련한 사건이 있었다. 하필 이 단편을 읽은 건 그 사건이 터진 직후였고,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인공지능이라는 건 인간의 아기가 겪는 과정을 보다 빠르고 인위적으로 거쳐서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이 작품은 그런 과정을 거의 인간과 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느린 속도로 익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며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잠시 세상에 출시되었다가 사라지게 된 그 인공지능은 어쩌면 그저 부모를 잘못 만난 어린아이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대로 문제를 일으키는 인공지능들에겐 사랑이 부족한 것일지도.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솔직히 기계와 교류하는 것만 가능한 아기라는 존재가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에(숨을 읽는 동안) 친구와 함께 7살 이전에 익히는 신체 정보에 관한 학습이 사람에게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했었다. 예절이나 관습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내 신체에 대한 인식, 그리고 주변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방식 같은 게 어쩌면 그 이후의 평생을 좌우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내가 모를 뿐 이런 연구결과 같은 게 진작 있을 것 같다) 그 깨달음이 극대화된 내용이 아닌가 싶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사람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아서, 언제나 왜곡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쉽게 자신의 옳음에 집착하는 존재인지. 왜곡이 일어나는 것을 인지하고 그저 내 기억에 왜곡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만인 것을, 끝끝내 그런 기억이 없노라 우기며 갈등을 빚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그럴 때 취해야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이 단편에서는 두 가지 서로 상충하는 방책을 내놓는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기록해 왜곡된 기억을 정확한 사실로 대체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관계를 쌓아가는 것과 왜곡된 기억이 각자의 진실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삶으로 타인과 충돌하는 것. 나 역시 둘 다 진실이라고 여기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맞부딪히는 두 사람 사이의 권위가 크게 차이날 경우 후자는 틀림없이 누군가를 억압하는 결과가 되리라는 것.
이 단편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좀 늘었다.

<거대한 침묵>
단편집 전체에서 이 작품이 가장 인상이 옅다. 앵무새는 아주 귀엽고 마지막 메세지가 사랑스러웠지만, 내 기분은 ‘뭐, 어쩌라고.’ 죽음이라는 거대한 침묵은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옴팔로스>
인류가 창조설이 완벽하게 적용된 지구에 살고 있다면? 그런 가정 하에 쓰여진 이야기다. 과학을 탐구하는 것이 곧 신의 은총을 증거하는 일이 되는 세계. 가정 자체도 재밌고 초반에 나이테로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 설명해주는 게 재밌었다. 다른 단편에서도 그렇지만 과학적인 사실을 재밌게 인용하는 점이나 내용에 알차게 활용하는 게 대단하고 멋지다. 결론도 재밌었는데, 역시나 조금도 인물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소재부터 그렇지만 지독하게 기독교적이라서 미국인의 교회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굉장히 영리하게 구성한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두 명의 주인공에 두 개 이상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전개가 돼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더라. 이것 역시 주제는 자유의지 같지만 좀 더 내적인 가치에 중점을 둔다. 너무 멀게 느껴지지도 않으면서 재밌었다. 소재도 재밌고 에피소드도 재밌었는데 딱히 뭔가 첨언하고 싶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