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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외전 포함) (총5권/완결)
권겨을 / 디앤씨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재밌었다. 재밌었는데 딱 본편까지만 재밌었다. 본편까지 신나다가 외전에서 실망한 작품이 이걸로 두 번째다. 하… 이렇게 끝날 작품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일단 이 작품은 본편까지는 로맨스보다 주인공의 모험담이 중심이 되는 여주 판타지에 가깝다. 게임 속 주인공의 몸에 들어간 건데 두 주인공(몸과 영혼)의 처지가 엇비슷하고, 그 부분을 훌륭하게 살려서 인물의 매력을 부각시켜준다. 설정이 설명하기에 상당히 복잡한데다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앞뒤가 잘 맞는 훌륭한 스토리 덕분에 별 거 아닌 사실이장대한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 감상을 어떻게 써야할지….
우선 주인공이 되는 몸의 주인 페넬로페는 에카르트 공작가의 양녀다. 본래 있던 막내딸을 잃어버린 후에 공작이 데려온 양녀인데 그 간격이 짧았던 탓에 동생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오빠들에게 심하게 괴롭힘 당한다. 아버지인 공작은 그걸 방치했고, 결국 입양아인데다 사랑까지 받지 못한 페넬로페는 공작가의 미운 오리가 되어버린다.
극중 시점에서 그런 페넬로페의 몸에 들어간 주인공은 한국인으로 재벌가의 사생아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지만 (페넬로페와 마찬가지로) 위의 두 오빠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다. 그게 싫고 괴로워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는데, 그나마도 오빠의 손을 거친 집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으며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하는 처지였다.
주인공에게 있어 페넬로페는 게임 속의 인물이다. 처음 등장한 노멀 모드에서는 주인공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악역으로 나타나 끝내 죽음에 이르고, 노멀모드 클리어 후 열리는 하드모드에선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하드모드는 정말로 하드모드라서 연애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존이 힘겹다. 뭘 해도 죽기만 하는 페넬로페 때문에 주인공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끝내 매달리다가 어느 순간 페넬로페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겨우겨우 자신만의 삶을 펼칠 기회를 얻었던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도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앞부분의 주요 내용. 게임 시스템과 동일하게 선택지 밖에 없는 극초반부의 설정이 굉장히 재밌었다. 동시에 조건부나마 자유롭게 대사 입력이 가능한 선택지 게임이 있으면 얼마나 만들기 까다로울까 하는 생각이 조금. 요즘은 AI가 많이 발달해서 좀 나으려나?
남주 중 한 사람과 호감도를 쌓아 엔딩을 보면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만 페넬로페는 히든 루트에 진입한다. 이후 스포일러.
이 세계에는 일종의 고대 종족 겸 인류를 멸망시킬 악마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그들에 맞선 것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다. 문제는 고대의 마법사들이 그들을 봉인 시킨 것과 동시에 인류가 마법사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저주가 퍼졌으며, 그들 중 하나가 봉인되지 않았던 것. 단 하나 남은 생존자는 인간들 사이에 기생하듯 살아남아야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이르러 공작가의 막내딸, 이본이 된 것이다. 페넬로페는 고대의 마법사의 후손이어서 본능적으로 이본을 적대했다고 한다. 이본은 동족을 봉인한 거울의 파편이 있었는데, 그 파편을 이용해 인간을 세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주변인을 모두 세뇌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노멀모드의 스토리였던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 것은 마법사였던 뷘터, 하드모드는 되감기는 시간 속에서 분투하며 죽어나갔던 페넬로페의 이야기다. 페넬로페는 너무 많은 죽음을 겪은 나머지 영혼이 찢어져버렸고, 그 일부가 주인공으로 환생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결국 페넬로페는 이본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걸로 클리어 표시가 뜨고 엔딩명으로 제목이 뜨는 것이 압권. 소름 돋았었다.
문제는… 외전인데. 음.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이정도로 큰 일을 겪으면 무언가 변하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고 이야기니까. 외전의 당혹스러운 점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주인공에 있다. 아니, 이렇게 큰 일을 겪었으면 가족하고 의절을 하건 대범하게 용서를 하건 하나는 해야지? 어정쩡하게 이도저도 아니고 집탈출하는 엔딩이 날 줄이야…. 이전에 실망한 외전이 작가의 작가적 역량 때문이었다면 이번엔 작가의 인간적 역량이 문제라는 느낌이다. 본편이 너무 좋았어서 한층 실망스럽기도 하고…. 차라리 평범하게 결혼해서 알콩달콩하는 이야기였으면 귀여웠을 것 같다. 최소한 실망스럽지는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긴 했고… 외전은 안 보길 추천한다. 본편까진 별점 5점 만점에 5점. 외전은 별점 5점 만점에 2.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