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SNS를 하던 중으로 기억한다. 학교를 폭파시키는 단편 소설이라는 문구에 저절로 마음이 끌렸다. 대한민국에 학교를 폭파시키고 싶다는 소망이 없었던 학생이 있을까? 그렇게 만난 작품이다.‘세상은 이렇게 끝난다’어찌나 좋았는지 바쁜 와중에 독서를 희망하는 친구에게 추천하고 말았다. 마침 공부에 힘겨워하는 친구여서 더 떠올랐던 것도 같다.그런 연유로 단편집을 먼저 읽은 건 친구였다. 첫번째 단편 하나만 보고 추천한 거였는데 예상 외로 전체적인 반응이 괜찮았다. 덕분에 나도 다른 단편이 궁금해졌다. 읽어보기로 마음 먹고 책을 언제 살지 재고 있는 와중에 다른 친구가 책을 선물하겠다며 몇몇 후보를 주고 개중에서 골라보라고 했다. 노란색 표지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게 증명된 사실이 왔다.이산화 작가를 SNS에서 먼저 접했기에 지나가는 트위터리안 한 사람 정도의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던 내게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가 추가된 순간이었다.총 열두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증명된 사실 단편집은 내가 읽어본 몇 안 되는 한국 SF 중에서 가장 유쾌하고 즐거운 기억이 되었다. 다른 즐거운 기억도 추가되길 바라며 열심히 책을 읽어본다. (대체 읽을 책 목록과 책 장바구니는 언제쯤 줄어드는가요.)<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학교 폭파!이 네 자로 이 단편 감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도 학교를 다니며 쌓아두었던 원한을 폭발시킨 작품인 듯하다. 어느 고등학교의 SKY반 학생 둘이 학교를 폭파시키는 이야기라니 소재 자체로 낭만적이지 않나? 작가가 자기 학창시절을 다 담아서 쓴 모양이라 계속 청소년 소설을 쓰기는 힘들까 싶은 점이 가장 아쉽다.< 증명된 사실 >친구가 이 단편의 제목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더라. 아무리 허무맹랑한 사실이라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명제 앞에서 과학자들은 무력해진다는 감상이 인상에 남았다.작가는 공포스러운 결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제법 신선하긴 하지만 그렇게 충격적인 결말은 아니었다. 이 단편 내용이 이 지구의 진실이라면 삶에 미련 가지지 말고 빨리 떠나는 게 좋겠다 싶긴 했다. 그래야 비슷한 시대를 공유했던 사람하고 가까이 떨어질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죽는 사람도 많은데 완전히 홀로 남을까 싶기도 하다.다만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끔찍하긴 하다.< 지옥 구더기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하여 >전개 과정이나 소재가 참 재밌는 단편이었다. 신비한 생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중점은 그보다는 과학계의 움직임에 맞춰져 있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참 잘 쓰는 것 같다. 과학적 탐구심이라는 무형의 가치 앞에서 협동하는 지성체의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햄스터는 천천히 쳇바퀴를 돌린다 >이거 참 우스울 정도로 소소하지만, 그런 점이 좋았다. 고작 햄스터 한 마리를 위해 시간에 간섭하는 인간이라니. 국정원 블랙유머를 시도한 것 같은데, 그쪽은 사실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다.< 한 줌 먼지 속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의 프리퀄이다. 이쪽도 상당히 좋았는데 역시 작가가 영혼을 담아 쓰는 바람에 다음에 비슷한 작품이 나오긴 힘드려나 싶은 점이 슬프다. 다 읽으면 코스모스가 읽고 싶어진다. (책 장바구니가 무거워요.)< 무서운 도마뱀 >나름 재밌었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앞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 많아서 희미해진 탓이 클 것이다. 그래도 재밌긴 했다.< 연약한 두 오목면 >제목 뭔 소린가 했는데ㅋㅋ <지옥 구더기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하여>랑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이 작가가 그리는 인류가 아닌 지성체는 제법 마음에 든다. 약간 스타트렉 떠오르기도 하고.< 우는 물에서 먹을거리를 잡아 돌아오는 잠수부 >작가님 은서동물학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내용 자체는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는데 재밌었다.< 카르멘 엘렉트라, 그녀가 내게 키스를 >미드위치 뻐꾸기들이 궁금합니다. 왜 번역서 없어요.이 작가의 결말을 좋아한다. 긴장감 조율이 잘 된 전개와 희망적이고 따뜻한 결말이 좋았다.< 희박한 환각 >아, 이거 진짜 좋긴 했는데… 작가님. 로맨스라고 할 거면 아내랑 아이는 뺍시다. 네?이종교배…가 아니고 이종연애물이라면 이정도 격차는 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는데 그놈의 아내랑 아이가요. 결말도 로맨틱하고 좋았는데 아내랑 아이가요!< 2억 년 전에 무리 짓다 >< 공자가 성스러운 새에 대해 말하다 >이어지는 연작인데 SF보다는 추리형식 일상물이란 느낌이다. 나쁘지 않았다. 전개도 인물도 꽤 귀여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