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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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읽은 자판기 괴담집 ‘출근을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의 표제작 ‘출근을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를 쓴 한켠 작가님의 책이다.
고른 이유? 전작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말고 또 있겠습니까.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는 괴담임에도 담담한 필체와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충이 잘 드러나는 일명 ‘요즘 애들’ 같은 화자, 조곤조곤한 어조가 맞물려서 괴담보다는 블랙유머에 가까운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이었는데,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데 주저가 들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으니 심심할 때 읽어보길 추천한다.

탐정 전일도 사건집에서도 전작에서 발견한 특징을 볼 수 있었다. 화자인 전일도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붙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 같은 인물이고, 현실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소소한 듯 커다란 고충들이 이야기의 골자를 이루며, 이 모든 것을 이방인에 가까운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각 챕터는 하나의 사건(탐정이 해결하는 사건)으로 이루어져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진다. 대망의 최종장에서는 앞서 전개된 이야기의 파편이 모여 집결되는 식이다. 총 열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한 챕터는 선조의 이야기니 전일도 사건집은 챕터 9가 마지막인 셈이다.
준수하게 재밌었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이야기는 단편식으로 앞선 이야기의 일부를 이어받아 새로운 사건을 이어가게 되어 있는데, 마지막 9챕터는 모든 에피소드의 인물이 등장한다. 총집합까지 시켰으니 웅장한 맛이 있어야하는데 당혹스럽기만 하다. 완성도는 앞선 1~8챕터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아서 터뜨릴 생각이었으면 앞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첫 챕터부터 차곡차곡 복선을 쌓아야하는데 전혀 깔린 것이 없었고, 또 지나치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머지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주구장창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마지막 장에서 그간 잘 쌓은 작품의 이미지가 한번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아깝기 짝이 없다.
전체적으로는 ‘출근을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의 싸늘하고 건조한 분위기와 달리 포근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화자 전일도는 현실이 버겁긴 하지만 희망을 꿈꾸는 젊은 청년이고, 사건을 통해 만나는 이들도 하나같이 비슷하다. 제일 독특한 건 가족들인데, 탐정이라는 직업이 비현실적인 것만큼이나 모두 특이하다. 애초에 불륜 탐정을 가업으로 이어온 가문이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숙한 면을 느낄 수 있도록 사건과 면모를 섬세하게 배치한 점이 참 좋았다.
각 에피소드를 이루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현대를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 청년(혹은 청소년)을 그리고 있다. 전일도의 의뢰인으로 나오는 그들은 소득이 없거나 적고(탐정 전일도 역시 마찬가지긴 하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의뢰인을 지켜보는 전일도 탐정 역시 엇비슷한 처지에 쉬이 공감대를 이루며 친구가 된다.
최대한 다양한 나이대를 담아내려고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요즘 청년의 시선에 맞춰져있다는 점도 아쉽다면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청년인 내 입장에서는 대변인을 얻은 것 같은 책이었다. 은근히 무겁다는 의견이 많이 보이는데 그다지 무겁다는 느낌은 없다. 추리물이라기보단 일상물에 가깝다는 장르 차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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