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증후군 - 한국인이 조금 싫어질 것 같은 이유 108가지
기쿠가와 에리카 지음 / 라이시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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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안 좋은 시기에 나와 한국내 ˝혐일˝ 감정에 불을 지르는 책이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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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나의 힘 - 생각의 힘을 길러 주는 논리 학습의 결정판
최훈 지음 / 우리학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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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고보면 난 최훈 저자의 책을 이것 저것 많이 사서 읽은 것같다. 그렇게 최훈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것은 그의 책 내용이 좋아서였다. 그가 쓴 <위험한 철학책>은 그 중에서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변호사 논증법도 가장 기초적인 논리적 사고를 쉬운 언어와 다양한 예시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논리는 나의 힘>이라는 이 책은 그의 저서 중 가히 최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45 page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의 결정을 지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발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좋은 논증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전제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제가 거짓이나 의심살만한 것이면, 이미 건전성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러한 논증을 논리학적 기준으로 좋은 논증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제의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좋은 논증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친절하게도 "발품"을 팔아야한다고 써두었다. 결론으로 향하는 각 전제들의 참/거짓의 진리값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다른 학문의 지식을 빌려오는 일이기도 해서 본래 논리학 책에서는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논리학책은 형식만을 주로 다루는 것이다. 


내용까지 중요해진 것은 흔히 말하는 Critical Thinking이라는 것이 서구사회에서 대두하면서 나온 일이였다. Informal Logic이라는 것은 이후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아마 최훈의 이 책 역시 그러한 기조 하에서, 논술 광풍이 불어대던 그 시점에 초판본이 나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저술 목적이나 책 내용 수준이 이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식의 우격다짐은 곤란하다. 


우선 '발품'을 팔아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이 '발품'을 팔지 않았다.


290 페이지에 WEF 세계 성 격차 지수(136개국 중 111위)를 운운하며 다소(?) 객관적 절차를 통하지 않고는 여자의 취업이 힘들고 유리천장이 있어서 승진을 못한다고 쓰고 있다.


심지어 이 무리한 주장을 하고 나서 뒤에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논증의 기본이다"라고 쓰고있다. 


자, 그럼 최훈의 주장이 정말 제대로 된 근거를 통해 결론으로 나아간 것임을 살펴보자.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최훈이 WEF를 운운한 부분이다. 최근에 페미니스트들도 이 수치를 들고 나오지 않는다. 바로 논박당하고 바보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있다. 수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이 수치를 가지고 한국 남자들을 대놓고 욕하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JTBC 뉴스룸에서 이게 진짜인가 하고 검증을 했다. 


혹시 이 책이 나온 다음에 이 수치를 남녀평등의 객관적 지표로 쓰기에 엉터리라는 것이 입증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최훈 저자가 발품을 팔았음에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초판 4쇄로 2016년 8월 18일날 나온 것이라 적혀있다. JTBC 뉴스룸 김필규 기자가 팩트체크하면서 방송에 나온 것이 2014년이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발품'을 팔았는지 매우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럼 저 수치를 근거로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왜 바보같은 논리인지를 확인해보자. 


우선 WEF 수치를 보면 우리 나라 여성인권이 중국이나 기타 아프리카 독재 국가들보다 낮게 나온다. 페미니스트들을 고의적으로 이 수치를 들고 나와 우리나라가 여혐국가라는 논리를 펼쳐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WEF 수치에서는 식자율도 남자/여자 차이가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 어느 가정에서 딸이라고 글을 가르치지 않고, 남자 아들이라고 글을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당신은 들어봤는가? 지금이 16세기 조선시대도 아니고 초중고 무상교육 시대에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WEF에서는 아니다. 이 수치에서는 아직도 이 나라는 조선 후기이다. 


이 수치가 문제 삼고 있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도 그러하다. 심지어 남자가 군대를 간 상태인 휴학생을 모두를 대학 진학율로 포함시킨 이 수치는 황당하기까지하다.


우간다가 28위, 탄자니아가 46위, 한국이 111위...


여자들이 할례를 강제로 당하고 명예살인을 당하는 나라보다 한국이 무려 50위권 더 낮은 것이다. 


이 수치를 믿어야 할까? 아프리카 어디 작은 나라에서 내전으로 똑같이 남녀 교육을 받지 못하면 교육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이룬 것으로 나오고, 한국에서 군대간 휴학생들까지 포함시켜 남성 대학진학률을 100% 이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수치를 가지고 우리는 논리적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더구나 이 책은 아주 기초적인 논리학 서적으로서 중고등학생들이 볼만한 책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자료에 더 신중하고 이 책에 실릴 논증에 대해서 2차 검증하는 작업이 저자에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저자 최훈은 이런 부분에서 '발품'을 팔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저자 본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삶의 가치관 같은 것이 은은히 베어있다. 그는 196페이지부터는 동물의 권리나 윤리적 채식을 주장하던 평소의 그<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등>처럼 보신탕논쟁을(아마 내 기억으로는 <변호사논증>이라는 그의 저술에서도 그는 손석희 브릿지바르도 개고기논쟁을 거론하며 자비로운 해석 운운하며 브릿지바르도 편을 들었던 것 같다) 거론하고, 뜬금없이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가 담긴 문장을 적어두었다(281page)...


그동안 저자가 출판했던 책들과 이 책에 실린 예들을 보면 최훈 저자 본인이 흔히 말하는 진보(?)적인 사람이고 보신탕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며, 동물을 사랑(?)하며 윤리적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을 보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그러한 관점을 다른 책도 아니고 "논리" 운운하는 이 책에 써내려간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 책이 이제 막 사고와 삶의 가치관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는 청소년을 메인으로 타겟팅된 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래저래 이 책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책이다.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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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6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5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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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나의 힘 - 생각의 힘을 길러 주는 논리 학습의 결정판
최훈 지음 / 우리학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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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가 결여되어있는 황당한 책. 제시되는 내용도 저자의 정치적 주관성이 들어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특히 290page에 WEF의 성격차지수를 들어 유리천장 운운하는 것은 충격적이기까지하다. WEF 자료가 엉터리임은 오래전에 JTBC 뉴스룸에서도 논파되었다. 아직도 이 수치를 운운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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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
콜린 맥긴 지음, 박채연.이승택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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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Chomsky)의 연구실에 버틀란드 러셀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이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촘스키는 러셀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래서 촘스키의 언어 역시 러셀처럼 명료성과 논리성을 중요시한다. 촘스키가 러셀에게 배운 것은 이 뿐이 아니다. 그는 러셀의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도 배웠다. 반전운동과 핵 확산 반대운동을 일선에서 이끌며 90세가 넘은 나이에 감옥까지 다녀왔던 러셀. 촘스키도 그의 행동을 본받았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정부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한다. 촘스키는 미국의 행동하는 양심이 되었다.


수학전공자 러셀과 언어학전공자인 촘스키가 조우하는 지점이 철학(Philosophy)이다. 러셀은 본래 수학 전공으로 그의 스승 역시 수학자 화이트헤드(A.Whitehead)였다. 마찬가지로 본래 문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했던 조지 에드워드 무어와 함께 교유관계를 쌓은 러셀은 철학에서 형이상학을 걷어내는 작업에 착수한다. 무어와 러셀의 생각에 당시 헤겔류의 철학은 너무 엉뚱하고 사소한 문제를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주절거리는 말장난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을 걷어내는데 가장 주요한 작업은 바로 언어를 정제시키는 것이다. 언어의 정제는 수학의 힘을 빌려 논리학작업으로 환원된다. 아주 이상적이고 무오류의 수리적-논리언어를 만들어내야 이 철학적 혼돈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들의 학파가 분석철학이다. 이때 분석한다는 것은 더 넓은 범주의 맥락을 함의하지만, 주요한 분석의 대상은 바로 '언어(Language)'이다. 왜냐하면 철학적 혼돈은 바로 언어에서 기인한다고 그들은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셀의 제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아예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 한다"라고 선포했다.


촘스키 역시 히브리어 전공으로 학위를 따내었지만 대학원 시절 누구보다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촘스키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 때 나 역시 이 점을 촘스키에게 물었는데 "나는 철학 학위는 받지 않았지만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철학 필드의 여러 훌륭한 인물들과 교류할 기회도 있었다."라고 답을 해주었다. 실제 언어학 필드를 벗어나 철학 필드위에서도 그는 콰인이나 퍼트남 같은 미국의 분석철학 거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다. 


촘스키 역시 철학에 빠지면서 이런 저런 철학자를 알게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대륙철학이 아니라 영미철학으로 크게 기울고 있었다. 이는 그가 몇년전 지젝을 공격한 지점과 맥락이 닿아있다. 영미철학자들이 보기에 대륙철학자들은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매우 있어보이는 개념과 전문술어를 나열하며 지껄이고있다. 결국 촘스키도 분석철학의 길을 걷게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Language and Mind)에서 언어학의 연구방법이란 철학의 연구방법과 매우 흡사하다라고 말한다. 이는 전적으로 분석철학자의 시각에서 본 철학의 연구방법론이다. 


촘스키는 데카르트의 부유하는 이성 개념을 빌려와 종래의 귀납적 언어습득론에 반기를 들었고 통사론(syntax) 위주로 언어학 전체를 판갈이해버렸다. 촘스키안 스쿨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이론에 반기를 들며 쫓겨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언어학의 대가는 촘스키요, 촘스키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촘스키를 집어들어 열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촘스키가 말한 철학의 방법론이라는 것은 결국 분석철학의 방법이고, 이는 결국 언어 분석의 방법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 분석의 방법이라는 녀석이 몹시 궁금했다. 특히 러셀의 기술구 이론에 대해서 궁금해서 이 책을 구입해 읽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에서 거론하는 철학자들 중에서 프레게와 타르시키를 제외하면 거진 다 영미권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또 프레게는 독일어 화자로 독어는 영어와 매우 흡사하다. 관사(ein, der, etc)를 사용하는 것도 비슷하고, 본래 영어의 뿌리가 서게르만어라는 점을 상기하면 더 그렇다. 타르스키는 폴란드 사람이지만 이 사람은 미국에서 영어로 저술활동과 철학활동을 했을 정도로 사실상 영미권 철학자로 봐야한다. 그렇다면 언어철학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다 영미권-서양언어 계통의 인물이 된다. 


내가 굳이 이 점을 여기서 상기시켜두는 이유는, 서양언어(eg 영어, 독일어)와 동양언어(eg 한국어, 일본어)의 차이점은 결국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보유하는 이의 이해와 언어철학이라고 기술된 내용을 받아들임에 있어 꽤 큰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렇기때문에 이 책은 번역이 잘 된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나 서양언어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보기에는 더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이점을 감안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점이 왜 중요하냐면, 우선 러셀의 한정 기술구 이론 파트를 보더라도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차이를 두고 비한정기술구와 한정기술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이 점은 생소하다. 한국어 모국어 화자중에 "그 태양은 빛난다"라고 말하는 정신나간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다들 "태양이 빛난다"라고 한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sun"이라고 하면 안되고 반드시 "the sun"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관사 운용의 차이점이 있다. 한국어의 무관사 명사도 언어학의 pro 개념마냥 관사 역시 숨어있다고 누군가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표층적으로 안 드러난다는 것이고, 한국어나 일본어 화자는 이런 네이티브의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다. 


106 page에서 문장이 잘 이어지지를 않았다. 쭉쭉 수월하게 읽히던 문장들이 여기서 막혔다. "개나 유니콘은 방목장에 존재하는 말과 달리 어떤 사람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였다. "아니다?"에서 이상했다. 맥락상 방목장의 말과 달리 유니콘은 허상이다로 나가야했기 때문이다. 앞 뒤 맥락과 연결이 잘 안되어 원문을 찾아보았다. 원문에는 "a dog or a unicorn does not exist in one's imagination in the same way that a horse exists in a paddock."이라 나와있었다. 원문을 보자 바로 이해가 갔다. "아 ~ 그저 방목장에 말이 실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개와 유니콘이 상상속에서 존재하는게 아니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 있다. 저자가 상당한 고생을 했다는 점이다. 언어철학 자체가 내용도 어렵거니와, 앞에 말한 서양언어와 한국어의 간극도 커서 그 어려움은 더 증폭된다. 그래서 최대한 오해를 피하려고 원문에 제시된 문장도 번역자는 옆에 조그만하게 많이 달아놨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한국어를 쓰려고 고심한 흔적도 보인다. "살면서 감각 자료를 '정우성'으로 지시해본 적 있는가?" (112page) 문장이 그러했다. 


잘된 번역은 독자의 시간과 돈을 아껴준다. 며칠 전 카뮈가 쓴 시지프스 신화에 대한 질 떨어지는 번역을 봐서 화가났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번역서이다. 번역은 절대로 쉽고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번역을 하면 번역자의 한국어 실력, 외국어 실력, 해당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다 폭로된다. 그런점에서 박채연 이승택 번역자 둘은 우리 철학계에 좋은 공헌을 했다. 또 스스로를 입증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문학계와 철학계는(특히 서양어문계, 서양철학 전공인들) 얼마나 그릇되고 지저분한 번역투 문장들로 번역서들을 도배질해왔는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한다. 


아직 이 책을 전부 다 완독하지는 못했다. 내용도 만만치 않다. 또 숙고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도 많다. 그러나 그 숙고란 것이 기실 서두에 말한 한국어-서양어 차이에서 온다는 점을 다시 여기서 상기시켜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결과적으로 언어철학이라는 분야는 서양언어철학 혹은 영어철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나 독일어를 모국어로 태어나지 않은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이런 철학-언어적 말장난은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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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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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번역은 아닐지라도 좋은 번역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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