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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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사상을 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구입했다. 미리보기를 보고 구입했다. 미리보기에서는 크게 번역상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받고 보니 왜 이 책에 번역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이런 번역은 역자의 게으름을 의심하게 한다. 여러 곳에서 너무 심한 직역투의 문장들이 보인다. 한국어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번역 이론서 몇 권만 봐도 이런 난해한 번역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화영 역자의 다른 책을 보기 두려울 정도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번역물의 공포다. 


최근 영미권의 번역이론의 주된 논점은 직역/의역 수준을 탈피해 번역이 번역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는 점에 거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화영 역자의 이 책은 그러한 현대 번역 추세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을 번역이 더 어렵게 만들어 놓아 독자를 괴롭힌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이 책의 문장 하나 하나가 한국어 외투를 입고 있는 프랑스어이다. 서양언어는 NP, 특히 독일어의 경우 이러한 복합명사구의 발달이 특이할 정도로 과한데 이것을 이 책의 번역 수준으로 따라가면 한국어가 다 개판이 난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번역이란 "번역이 번역같이 느껴지지 않는 번역"이다. 이 책은 그냥 프랑스어를 직역한 느낌이 너무 심하게 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작가 소개에 이 역자가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번역이론이나 통번역대학원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전인 1999년도의 일이지만 누가 선정했는지, 뭘 근거로 그러한 선정을 했는지 의아하기만하다. 1999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왜냐하면 90년대에도 니체 작품을 번역한 김태현씨라던가 수준있는 번역가들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은 그것 그것 그것 지시대명사를 그대로 직역해두고 있는데 이는 좋은 번역이 아니다. 한국어는 이렇게 운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것'이 너무 심하게 많다. 너무 과하다. '의'와 '것'을 줄이는 것은 번역의 거의 제1원칙이다. 굳이 안정효의 번역지침을 여기 주절주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제는 상식이 되어있는 번역 지침이다. 


(191page) 


즉, 자연스러움은 한 사람'의' 인생'의' 특이성과 그 사람이 삶을 ~ 


역자의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고루한 한자어의 무리한 남발 역시 좋은 번역이 아니다. 


(204page)


얼굴 없는 '신성'의 '측량'에서 어찌 '명철성'이 ~


주어와 술어를 가깝게 붙여야 독자로 하여금 오독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는 그러한 기초도 찾아볼 수 없다. 


(205 page)


'내가' 진실로 절망적인 사상은 바로 그와 반대되는 기준들에 의해 정의되며 비극적인 작품은 미래의 희망이 송두리째 배제된 상황에서 행복한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 


내가 ~ 말한다면 사이에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나열되었는지를 보라. 차라리 ~~~~ 라고 내가 말한다면 ~ 이라고 나가는게 깔끔하다. 역시 질 낮은 낡은 번역투 문장이다. 



주어 술어가 과도하게 벌어진 것은 그렇다고 치자. 술어가 아예 날아가버린 문장도 보인다. 


(116 page)


그들은 "돈 후안이 지체 높은 가문 출생이므로 벌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의 방탕과 불경함에 끝장을 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 후 그들은 하늘이 벼락을 내려 ~ 


그들은 "돈 후안이 지체 높은 가문 출생이므로 벌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의 방탕과 불경함에 끝장을 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으로 시작하여 그들은에 호응하는 술어가 없는데 갑자기 문장이 종결된다. 그리고 그 후 ~ 하며 다른 문장이 시작된다. 아마도.... 


그들은 "돈 후안이 지체 높은 가문 출생이므로 벌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의 방탕과 불경함에 끝장을 내고자 했던 것이다." (라고 기록했다.) 정도의 내용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문장은 그냥 던져놓고 독자 네들이 알아서 이해하라는 식이다. 


(71 page)


"이 관념의 신세계에서는 반인반마의 범주가 지하철(?)이라는 보다 평범한 범주와 서로 협력한다."


번역서가 좋은게 무엇인가? 아래 원주들은 착실히 번역해두었으면서 왜 난해하거나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정작 역자는 입을 다물고있다. 


과도한 명사구 사용과 남발은 한국어의 표피만을 뒤집어 썼을 뿐 한국어 문장이 아니다. 다음 문장이 특히 그렇다. 


(85 page) 


인간 가슴 속에 깃든, 환원될 수 없고 정열에 찬 모든 것이 함께 그의 삶에 "맞서 거부"를 고무한다. 


"맞서 거부"를 고무한다. 정말 이 번역서에 대해 맞서서 거부하고 싶을 정도다. 


'전연'은 거의 부정어와 쓰이는 어휘이다. 


(86page) 


왜냐하면 이 문제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신의 문제에 결부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자는 "왜냐하면 이 문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의 문제에 결부되기 때문이다." 정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쓴 지 알길이 없다. 


전연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으레 부정어와 호응하여 다음과 같이 쓰인다. "나는 탁구를 전연 못한다."



이 정도까지만 하자. 이 책의 효용 가치는 나는 한가지로 본다. 


전국 각 통번역대학원에서 이 책을 한 학기 정도로 번역 스터디를 구성해 서로 서로 오류를 수정하고 문장을 뜯어 고쳐보면서 문장력도 기르고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 증진시키는 기회로 삼는 것이 첫번째 효용이 될 것이다. 


이 시지프신화 번역은 현대 번역 이론 기준으로 보자면 하지 말아야 할 번역 오류와 실수가 가득 담겨있어 번역 연습하기에 좋다. 


그게 아니면 이 책의 효용을 나로서는 찾기 힘들다. 아마 이미 카뮈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나, 고루하고 낡은 번역투 문장을 읽고 고통받으며 어떤 변태적 지적 쾌락을 유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난 이 리뷰를 쓰고 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질 낮은 번역서는 이렇게 독자의 시간과 돈을 낭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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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tea 2023-12-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의 잘못된 번역에 대한 예시를 들고 거기에 해결책까지 제시한 정성스러운 후기 감사합니다 책선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민음사가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