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능동태다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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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이 책이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본다면 '우리말은 능동태라는 내용이야'라고 한 줄 요약 할 수 있겠다.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제목이다. 책이 얇고 사이즈도 작은 편인데 내용이 꽤 진지하다. 이 책은 소멸해 가는 우리말의 운명을 보다 못해 단숨에 써 내려간 통곡의 글이다. 챕터가 얼마 없지만 진짜 격공하며 읽어서 개인적인 의견을 좀 더 살로 붙여 서평을 같이 써본다.


말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니, 인간이 인간임을 드러내는 궁극의 모습일지 모른다. 말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말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는 달리 말이 곧 인간이다.

9p


1. 사전의 풍요로움에 대하여


검색하는 사전 vs 읽는 사전 

백과사전 통독은 어렸을 때 자주 했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사주신 어린이 그림 백과사전 10권 시리즈가 너무 재밌어서 하드 커버가 다 떨어지고 책에 헤질 때까지 보았었다. 'ㄱ'부터 'ㅎ'까지 초성순으로 나열된 단어와 그림을 마냥 신기해서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모르는 것을 하나 둘 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생겼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쌓이고나니 글로만 된 백과사전도 친구네 집이나 친척집에 놀러갔을 때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엄마의 자랑인 "우리 큰 딸은 맨날 책을 읽어ㅎㅎ"가 생겼다. 고사성어 모음집, 명심보감, 한국고전문학 전집 등을 통째로 읽었던 것 같다. 고사성어의 유래와 한자를 설명해주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덕분에 어휘나 지식 등의 폭이 정말 넓어졌다. 국어사전 통독은 해본적이 없지만, 강조하는지는 맥락이 같다보니 공감이 많이 되긴 하였다.   


필자는 우리말 사전을 책상마다, 교육 현장마다 놓기를 권한다. 기본적으로 동의하는데, 약간 개인적인 의견을 추가하고 싶다. 교육 현장에 당연히 가정도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꾸준히 진득히 두꺼운 책을 읽게 되는 건 역시 가정이 아닐까? 물론 구매를 못하거나 (혹은 안하는) 가정도 있을 수 있으므로 학교에 비치해 두는 것 또한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초기 진입장벽은 낮을 수록 좋다. 연령대에 맞는 쉬운 국어사전부터 만화로 된 시리즈도 같이 비치한다면 더 좋을 듯하다. 요즘 나오는 만화 천자문이나, 만화로 된 한국사, WHY 시리즈가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닐까? 우선 흥미유발이 되고 가벼운 지식이 쌓이면 그 다음 단계별로 올라가는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문명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주는 것은 '빨리'가 아니라 '많이'다. 창의성 역시 베이스가 되는 지식이 있어야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데서 갑자기 창의적인 발상이 나오지는 않는다. 사용하는 단어도 다양하고 풍부할 수록 좋다.


검색하는 사전 vs 손에 잡히는 사전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너무'를 검색해보았다. 예문뿐만 아니라 유사어도 같이 나온다. 이것 역시 제한적이고, 통독해서 아는 것과는 다르지만, 유사어까지 나오는 걸 보고 의외로 괜찮다 싶어서 다른 국어사전도 찾아보았다. 

사전 여러가지 써보면서 느낀건데, 네이버가 정말 한국인의 검색에는 최적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종종 검색하는 모의고사 등급 컷 이런거 검색해보면 원데이터가 그대로 나오는 구글과 달리 보기좋게 가공된 정보들이 나온다. 물론 전문적인 검색시,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하는 것을 이길 순 없어서 필자는 두 개를 섞어 쓴다. (그리고 뉴스는 다음에서 본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이니 적어도 망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식계좌를 열고 네이버 주식을 몇 주 구매했다. (나는야 개미 중 개미) 


2. 주어찾기

영어와 우리말 문장의 구조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말엔 주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영어교육 때문인 것 같다. 영어와 우리말이 다르다는 생각을 못하고, 당연히 주어가 있어야 한다고 배워서 국어에도 그대로 적용시켜 버린 것 같다. 우리말에서는 정말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사람이 주인, 즉 주어다. 그래서 특별히 주어를 표기할 필요가 없다. 주어가 원래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원래 있어야 하는 건데 생략됐다고 생각하는 건 다를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없던 주어들 때문에 글은 길어지고 뜻의 전달 또한 혼란을 겪고 있다.


안나 카레리나의 번역을 보고서는 진짜 손바닥을 '탁'쳤다. 원문과 문장 구조가 같은 게 중요한가, 뜻이 같은 게 중요한가. 


이 부분을 읽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설이 생각났다. 번역가가 같이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번역본을 굳이 영어로 찾아서 읽진 않았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강 채식주의자 영어'라고 검색해보니 지식인 맨 윗줄에 "대한민국의 번역가들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번역가처럼 번역을 잘 못하는 이유"를 묻는 글이 보인다. 채택된 답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각난 김에 정보를 조금 더 검색해보았는데, 월간중앙에 실린 김재혁 시인(고려대 독문과 교수)이 쓴 글이 좋은 답이 될 듯하여 일부를 써본다.


한강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는 원문이 함의하고 있는 큰 줄기를 잘 살려냈다.

돋보이게 할 것은 돋보이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악센트를 두지 않는 쪽을 택한 번역이다.

심하지는 않지만 ‘개작’에 가깝다. 수용하는 쪽의 효과에 역점을 둔 번역이 성공을 거둔 사례다.

---(중략) 오역은 한두 개 낱말의 그릇된 번역보다 전체 문맥과 분위기를 도외시하고 세세한 것에 얽매일 때 생긴다.


3. 수동태의 삶이 편하다

수동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많은 언어적/사회적/문화적 문제를 품고 있다. 말과 언어가 그만큼 우리의 생각을 좌우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사용하는 도구만 바뀌어도(연필 vs 키보드) 사고방식이 달라지는데, 당연한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래는 마음에 들었던 구절 중 일부.


"수동태 문장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다. 나는 객체에 불과하므로 나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내 의견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는 행위와 더불어 수동태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행위가 두루 포함된다. 자신의 분명한 의견임을 증명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심리이다."


"만연체로 말하면 상대방은 나를 단언하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자 부드러운 사람으로 여기고, 나는 스스로 길게 이야기할 줄 아는 지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낭비에는 반드시 불합리가 따른다."


4. 다수는 늘 옳은가?

'너무'가 긍정의 의미로도 쓰이는 것에 대해 뭔가 찝찝하게 느끼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ㅠ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페이지 다 동의한다. 그렇지만 다 옮겨 적을 수는 없기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의 문구만 남긴다. 


허용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을 수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니오"가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때, 마지막까지 양화를 지키려는 바름의 실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61p


5. 왜 미국학교에서는 라틴어를 가르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를 안가르치는가?

최근 영어 공부를 해볼까 싶어 계획을 짜는 중이다. 내가 하고 싶은 영역은 영어 말하기가 아니라 영어로 자료를 리서치 하는 것이라 단어 암기부터 해야한다. 그런데 영어는 정말 공부 안한지가 한참돼서 외웠던 단어도 기억이 안나더라...OTL 게다가 암기라는 걸 오랜시간 안하다보니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단어를 외울 수 있을까를 열심히 검색해봤다. (사실 이 시간에 더 외우는 게 낫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 중 공부의 신 강성태의 영어 어원으로 하는 단어강의가 매우 끌려서 지금 수강할까 말까 고민중이다. 맛보기 강의만 하나 봤는데, 어원을 먼저 풀이해주고, 관련된 단어를 설명해준다. 근데 정말 금방 외워지고, 뜻도 훨씬 잘 와닿는다. 무엇보다 한 단어가 여러가지 뜻을 갖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감이 생긴다. 게다가 66일 연속으로 출석하면 수강료를 전액 환급해준다 하길래, 언제부터 시작할까 고민중이다. 아무튼, 왜 미국학교에서는 라틴어를 가르치는지 다시 한 번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줄 때도 항상 용어의 뜻을 같이 설명해준다. 이전 나의 고등학교 시절, 1학년 때 수학 선생님께서는 모든 용어를 다 직접 한자로 써주셨다. 진짜 미노년 개간지=_=! 라며 엄청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향이라면 영향이지만, 나도 새로운 용어를 가르칠 때는 한자를 직접 써주진 못하더라도 의미와 뜻 정도는 같이 설명해준다. 최근 수업한 항등식, 미정계수법도 간단한 한자를 알려주고, 설명해줬더니 확실히 학생들이 용어의 의미를 덜 까먹는다. 한자를 알면 어휘 사용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읽고 쓰기가 안된다면 적으도 음과 뜻 정도는 여럿 접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엄마가 읽던 신문은 한글이 아닌 한자로 표기됐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본인은 학교 공부는 못했어도 신문에 나오는 한자 정도는 읽을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한자를 다 읽지는 못해도 한글로 표기하고 ()한자를 같이 표기하는 것 정도는 어떨까? 지면이 모자라려나..?


나는 대학 졸업 요건 때문에 한자2급 자격증을 땄다. 한자진흥회였는데, 대상 한자는 2300자.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자격증이 단기간에 필요했던 거라, 시험에 무조건 나오는 700자만 일주일동안 달달 외워서 겨우 패스했다. 그렇게 외운 한자가 기억이 나겠는가. 그래도 적어도 한자의 음과 뜻과 유래로 공부했던 거나, 고사성어는 매우 많은 도움이 된다. 한자까지 기억나는 건 중고등학교 때 무식하게 50번씩 받아쓰기 하면서 외웠던 한자들이나 하루에 꾸준히 7자씩 매일 봐가며 암기했던 한자들이다. 역시 힘들게 공부하면 잊기 어렵다. 혹은 꾸준히 하면 장기기억에 잘 남는다. 일본의 경우 6살부터 중/고등학교 내내 한자를 익힌다고 들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만 수년간 한자를 가르친다. 사실 우리나라도 한자교육은 정말 꾸준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글애국주의 VS 한자사대주의

아무튼 이 챕터는 한글전용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데, 읽는 내내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된다. 요새 표현으로 '사이다'를 막 들이킨달까. 


마치면서

바른 국어 사용이 조금 더 핫한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기계적으로 암기할 뿐만 아니라, 암기하는 방법이나 팁 같은 것도 같이 돈다면 관심도가 좀 더 늘지 않을까-? '-로서', -로써'를 구분하는 방법이나, '돼'와, '되'를 구분하는 방법- 등을 카드 뉴스로 보았다. 괜히 좋더라. 그런가하면 이전에 대한항공 조현민 상무 관련 기사를 봤을 때, '명의회손'이라는 단어를 보고 진짜 어이가 없었는데, 맘카페에서 이게 제대로 된 단어인 줄 알고 쓰는 회원을 보고 식겁했던 기억도 난다. 어지간하면 맞춤법이나 이런거 지적 안하는데 제발 '명의회손'->'명예훼손'으로 고쳐달라고.. 저 단어가 너무 거슬려서 내용에 집중이 안된다는 댓글들을 보며, 아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안도했다.=_=;


전체 쪽수가 100페이지가 안되므로 마음 먹고 읽으면 하루면 충분한 책이다. 그렇지만, 책의 두께와 상관없이 내가 지금까지 쓴 서평 중 가장 길다. (책의 내용 인용은 최대한 안하려고 노력했는데, 사실 모든 내용을 다 옮겨 쓰고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 주옥같다.) 그만큼 내용이 알차고, 많은 영감을 준 책이다. 


책으로 봐도 좋지만 브런치 같은 매체를 통해서 연재되어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한 챕터씩 읽기에도 좋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말에는 정신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언어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쓰는만큼 영향을 받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국어 교사에게는 정말 강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또 교사 친구들에게 추천해 줄 책이 한 권씩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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