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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 -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평점 :
불우한 태생과 환경을 딛고 한시대의 최고의 지성인과 종교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현재까지도 읽혀지는 우신예찬의 저자인 에라스뮈스에 대한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요한 하위징아가 어느정도는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 보며 쓴 전기문인 "에라스뮈스"를 읽었다.
일찍 부모 곁을 떠난 영향인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 애정결핍으로 인한 친구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 등이 안따깝게 느껴졌다.
책 읽는 내내 순수하며 감성적인 느낌은 마치 루소를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의 편지에서는 항상 경제적 쪼달림에 대한 불만과 절망, 전염병에 대한 맹목적 걱정 등이 자주 보이는데 그의 영특하고 예민한 지능과 우울한 성장환경, 열악한 주거환경 등이 더욱 더 그를 우울의 늪으로 빠뜨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완벽하고 우아한 라틴어 구사로 명성이 높았는데 나중에 그리스어까지 터득한다.
이러한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불가타성서에 만족하지 않고 신약성서 라틴어판을 새롭게 세상에 내놓은 것은 히에로니무스를 존경했었던 그가 불가타성경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넘치는 학구열과 종교적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에라스뮈스를 생각 했을 때 역사적으로 연관된 한사람을 꼽으라면 그는 마르틴루터일 것이다.
그가 기존 가톨릭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이었던 지식인이었음에도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서 침묵했던 사실은 독일군에 대항하여 자유를 옹호하려 투쟁한 하위징아 입장에서 보면 공감할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의 비리와 모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고 신교에 대한 찬성이 자연스레 초래되지는 않지 않겠는가?
더욱이 항상 비주류로 살아 왔으며 몇몇 친구들은 있었으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그를 지켜줄 만한 가족과 가문의 힘도 없는 그로서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정의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내던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 그는 구속되고 신체 및 사상의 자유에 지장을 주는 어떠한 일도, 자리도 뿌리쳐왔다 - 그리고 사실 그는 가톨릭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했지만 마르틴루터의 편에 섰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가톨리과 신교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던 에라스뮈스를 보면서 마치 우리나라에서 해방이후 지금까지도 보수 아니면 빨갱이로 몰아 부치는 것 같은 저급하고 유치한 사회적 환경의 희생자일수도 있다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에라스뮈스라는 불세출의 문장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며 덤으로 앤불린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헨리8세, 신성로마제국황제인 카를5세, 마르틴루터, 메디치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10세, 절친한 친구이자 우신예찬을 헌정했던 토마스무어 등의 근세 초기의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내게 억지로 외워야 하는 역사가 아닌 살아 있는 인물들로 다가오는, 뜻하지 않았던 수확도 있었다.
책을 다 보고나서 이전에 읽었던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나와 있는 에라스뮈스 부분을 다시 읽었는데 러셀 역시 이 책을 참조하여 썼다는 주석이 나와 있었다.
이처럼 100여년의 시간을 격하고 나와 버트랜드 러셀이 이 책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독서의 깊은 매력중의 하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