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문장들 - 불면의 시간, 불안한 상념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한귀은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밤을 걷는 문장들이라는 이 책의 제목과

[불면의 시간, 불안의 상념으로 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하여]라는 부제 그대로

감수성 예민한 여성 특유의 사유와 글 냄새가 묻어나는 아포리즘같고 시같은 글 모음집


"단테의 신곡에서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지옥에도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옥의 성문 앞에서 신음한다."


"어렸을 때의 성장이 더 배움으로써 가능했다면 어른의 성장은 배운 것을 하나씩

의심하면서 시작된다. ... 그 때 바라보게 되는 낯선 자신이 진짜 자기의 모습이다.

낯선 자신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어른이 될 수 없다."


나이를 먹고 어느 순간 이제껏 알아왔거나 관성적으로 해온 것들이 .. 어떤 실수나 실패와

엮이면서 ... 잘못 알았거나 잘못 행해진 것임을 알았을 때 가치관의 혼란과 붕괴가 온다.

그것을 대면하는 일은 고통스런 일이면서 정도가 심하면 정신분열의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데 저자는 그것을 성숙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모양이다.


"죽음이란 다른 사람과의 이별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먼저 나 자신과의 이별이다.

다른 사람과 좋은 이별을 하려면 좋은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 듯, 나 자신과 잘 이별하려면

나를 발견해주고 이해해주어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나와 관계를 잘 맺는다는 의미이다."


굳이 이 글이 아니었어도 내 안의 나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나는 잘못 살았다는

평소의 생각였는데.. 이 글은 날카로운 칼끝으로 한번 더 날 찌르는 느낌이다.


"...점차 양가감정과 양면의 모습에 익숙해질 즈음 완전한 노년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이런 책에서 보게 될 줄 미처 생각도 못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했거나 뺏겼단 말이며 그 방식은 육체적 번아웃이 아니어도

정신적. 정서적으로 분열. 회의를 오가다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무엇에 몰입한다는 것... 그 이면의 모습에 생각의 눈을 떠가면서

나는 삶에 점점 깊은 회의를 하게 되고 나도 이제 늙어가는 건가 의심하게 된다.


"일관성있는 사람이 되라 한다. 불가능하고 적절치 않다.

한 개인 안에는 수많은 자아가 들어있다. 내적 대화라는 것이 그래서 가능하다.

그 자아들이 공존하는 한, 일관성은 불가능하다. 만약 일관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많은 자아를 억압하는 폭력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때로 정신분석학보다 더 많은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보여줄 때가 있다.

문학이 지향하는 궁극은 삶과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인건가..


두께는 얇고 크기는 핸드북같은 여성작가가 쓴 이 책은 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양념으로

펌글이나 인용글과 믹서한 글이려니 했는데 의외로 깊은 사유가 돋보이는 글이 많다.


이 책은 이 책의 제목 그대로 밤을 걷는 문장들였고 밤을 일구는 문장였지 싶다.


오랫만에 접하는 한번에 읽기 아까운 그런 책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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