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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인 저자가 쓴 책 이야기.
제목만으로 묘한 끌림이 있었고 내용은 그보다 더한 끌림과 깊이 있는 책.
이 책은 독서를 좋아하고 독서에 대한 남다른 깊이가 있는 저자의 독서 예찬론
이라기엔 먼가 좀 안맞고 독서비평이라고 하기에도 먼가 좀 용어상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붙인 이 책의 부제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이 보다 이 책을 한 줄로 설명하는 데 더 어울리는 말이 없을 듯 하다.
사랑의 찬가보다 더 진한 감흥은 사랑의 비가인 것처럼.
서문부터 독자의 기선을 부드럽지만 확실히 제압하는 한 문장.
"독서를 여러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이다."
"내게 독서는 모든 즐거움의 원천이며, 모든 체험에 영향을 주면서 그걸 좀 더 견딜 만하고
나아가 좀 더 합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급이 다른 독서에 대한 정의다.
"누군가의 애독서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으며 ...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옳음과 틀림조차도 다름이란 말로 경계를 흐트리고
호도하는 세상에서 누가 누구인지를 어찌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힌트를 제공한다.
"내가 도서관에서 하는 선택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뽑아드는 행위는
내가 상상하는 천국의 좌표를 뽑아주고 내 정체성을 확립시킨다."
난 이제껏 이보다 더 임팩있고 놀라운 독서 예찬에 대한 문구를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나는 서가의 어딘가에 좌정하여 나를 내려다보는 어떤 책의 특정 페이지에
내가 오늘 고통스럽게 씨름하는 문제의 해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남여간에는 애정이 있고 동성간에 우정이 있다면
활자중독의 애독자들에게는 이런 정서가 있지 싶다.
"나는 손 안에 있던 책이 서재의 서가에 자리를 잡는 순간 다른 책이 되어버린
것을 여러 번 발견했다."
"상실은 기억뿐 아니라 희망도 내포하는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어떻게든 존재의 외양을 갖추게 된다."
"오랫동안 침묵 속에 유배를 보내놓았던 책들을 상자에서 꺼내는 순간에도
그들은 여전히 내게 친절하다."
"위로는 아주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를 위로할 목적으로 침대맡에 놔둔 물건은 언제나 책이었다."
알베르토 망겔이란 어려운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은 10여년 전에 이미
독서의 역사란 책을 통해 그의 박학다식에 기죽었던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창작이 아닌 짜집기의 일종이며 기억의 재생이고
언어의 재배열에 가까운 책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웬만한 순수창작보다 우월하며
통찰과 깊이가 살아있는 명상록같기도 하고 철학책같기도 하다.
일주일 동안 정독하고 서독을 했음에도 어떤 문단은 여러번 읽을 만큼 난해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책이다.
공감도 많고 머리를 울리는 명징한 문구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책의 서평을
쓰거나 후기를 쓰는 건 마치 시집을 읽고 무언가를 남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며 배우고 얻었다.
언제고 이제껏 모은 책들을 버리리라 생각 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꿔 버리지 말고 서재를 꾸미고 책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누군가가 집에 들어가면 개나 고양이를 통해 위안을 받고 공감을 얻듯이
나도 내가 읽은 책들..먼지 쌓인 채 책장과 어느 틈바구니에 소외된 그들을 깨우고 꺼내
그들의 먼지를 털어주고 그들 모두 아들이 쓰던 방 하나에 모아 분류 정리해야겠다는 ..
생각과 욕심이 이 책을 통해 들었고 갖게 되었다.
감응을 하게 하는 책은 많으나 어떤 생각을 이끌어내는 책은 드물고 행동까지 하게 하는
책은 희귀하다. 언제고 다시 읽을 책중 상단에 자리를 마련할 책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