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10 : 김원봉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10
권태문 지음, 김광운 감수 / 파랑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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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김원봉> #도서협찬 1980년대에 들어와 알려졌다는 김원봉!

25.3.1(토)

♡1898년 경상남도 출생이며 호는 약산인 김원봉.
작년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며 제일 어려운 부분이
일제강점기때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 부분이다.

세계정세가 제국주의시대에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으로 이념 전쟁이 본격화된 시기에 고군분투하며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혼란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념이 달라도 모두의 소원은 독립이었을텐데...

♡약산 김원봉은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가입니다.
한국사시험을 공부한 분이라면 들어 봤을 이름입니다.

1916년 10월 19세의 나이로 혼자 중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1919년 11월 의열단이 탄생합니다.
일제에게 의열단의 활약은 벌벌 떨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임시정부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두 진영으로 갈라져
지위가 약해지는 위기시기.

의열단의 폭력 투쟁을 찬성하는 신채호를 만나 그에게 의뢰한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은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황푸 군관학교 생도를 걸쳐 장제스의 국민당과 손을
잡기도 하고 조선의용대를 결성하여 마지막엔 임시정부에 참여하기까지 그의 일생은 독립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손에 수갑을 차다니...."
김원봉은 무혐의로 풀려 나온 뒤 3일 낮과 밤을 울었다고 합니다.

♡1948년 4월19일 평양에서 남북 대표가 모여 회의를 열 때
남쪽에서 김구, 김규식과 함께 김원봉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원봉은 회의가 끝나고 북쪽에 남아 주요 정부 요원으로 있다가 1958년 이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김원봉이 북한에 남았다고 하여 그를 독립운동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이념전쟁으로 인해 두 부류로 나뉘어졌지만
모두의 뜻은 독립에 있기 때문입니다.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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