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기원 - 세계 질서와 부의 운명을 뒤바꾼 방향의 역사
제리 브로턴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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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리 브로턴《지리의 기원》

본문 시작전의 글;

우리는...선택된 허구를 기반으로 살아간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흔히들 우리의 성격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위치한 공간과 시간이 결정한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위치에 따라 모든 현실을 해석한다. 동쪽이나 서쪽으로 두 걸음만 옮겨도 전체 풍경은 달라진다.
- 로렌스 더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1957~1970)

인생길 한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음을 깨달았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단태 <신곡> 지옥편 제1곡 1~3행


이 책은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방위, 즉 동서남북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는 구형이기 때문에 우주 공간에서 바라보면 본래 절대적인 위·아래, 왼쪽·오른쪽의 구분이 없다. 지구의 전체 모습을 담은 최초이자 유일한 사진인, "블루 마블" 만 보아도 방위가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서남북을 마치 원래 정해져 있는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공간을 편의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낸 개념이 단지 방위만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동양와 서양을 표현할 때도, 남반구와 북반구를 보여줄 때에도, 때로는 이것이 열등과 우등의 범주로 묶이기도 하고, 발전의 상태를 가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이런 생각들이 방향을 선정하고 지도로 표시된 이후에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의 읽어봐야 하는 가장 큰 의미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구형의 지구에는 어떤 기준 방위도 필요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집착하는 걸까?"(p.272)

특히 '집착'이라는 단어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왜 인간은 동서남북이라는 방위를 사용하는가의 질문을 넘어,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기준을 왜 마치 세계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질서처럼 받아들이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구에는 본래 중심도 위아래도 없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중심과 방향을 만들고 그안에서, 그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이 만든 기준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에 녹아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p. 162
네 기본 방위와 관련된 모든 개념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지리적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방위에 관한 용어들의 의미는 지리적 환경과 사용되는 언어에 달렸다.

p. 262
우리의 정체성은 어느 정도 기본 방위에 의해 형성된다. 개인의 위치와 정체성은 다른 지역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방위는 물리적으로 또 은유적으로 우리가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규정한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삶이라는 미로를 내려다보면서 지금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을 성찰하도록 한다. 그런데 오늘날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기본 방위에 대한 인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RHK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woojoos_story 우주님의 진행으로 우주클럽_역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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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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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951년 미국 뉴욕에서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설의 화자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작가 자신의 성장 배경이 상당 부분 녹아 있어 자전소설과 허구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다. 이런 이유로 읽다보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몰입감이 좋은 것도 있다.

소설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아버지, 2부는 어머니, 3부는 자신이 배우던 발레수업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는 러시아 이민자 남성과의 관계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이 가장 큰 강점!!!은 화자의 표현속에 나오는 상황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는 것이다.

✏️ 서로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던 두 부모를 다시 회상하며, 화자는 무엇을 물려 받았으며 그 흔적들이 어떻게 자신을 만들고 있는지 되짚어본다. 단순히 바라보면 부모를 통한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판단하기에는 너무 많은 구멍들이 존재한다.

✏️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는 일생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중국어를 말하는 모습도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렇다고 영어를 배우지도 않았다.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독일인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에 대하여, 독일어로 된 노래와 시를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고 말하는 것에도 열심이었다. 이런 다른 성향의 부모에게서 화자는 무엇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을까. 상대에 대하여 많이 안다는 것이, 상대를 잘 이해한다는 것과 동일시 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침묵을 해석하는 것이,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 화자는 부모의 과거를 완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의 삶을 자신이 아는 한에서 상상하고 재구성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은 어느 정도까지가 실제의 모습일까. 우리의 기억과 상상이 조합하여 우리가 만들어낸 부모는 아닐까.

✏️ 자신의 어린시절과 부모님의 삶을 연결시키는 작업은 화자가 성인이 된 후의 일이다. 과거의 사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사건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 있다. 어느 시점의 해석을 진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책표지는 3부를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2부까지 읽으면서 책표지를 왜 이렇게 해놨는지 의아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제목이 갖는 의미까지 생각하게 된다.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의 표현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p. 176)이 나온다. 깃털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무언가의 움직임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존재로서의 인간과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면서 하게 된 발레는 상반된 이미지와 의미를 갖는다. 제목과 표지의 이런 멋진 어울림이라니.

✏️ 4부에서 러시아 이민자인 바딤이라는 남성과의 만남은, 어쩌면 화자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게 들어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1부에서 4부까지 발레의 부분을 제외하면,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언어'라는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뭐 그럴수 있지라고 생각되던 부분도 제3자와의 언어의 문제에서는 결이 달라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화두가 부모에게도 미친다. 언어의 차이는 사람사이의 거리가 된다.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깊은 관계가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그 사이의 간극때문에 보듬어가며 깊어질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독서모임에서 꼭 한번 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책을 복복서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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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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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우주서평단을 통해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초판한정 양장본을 받았다.

'슬픔에게 언어를 준다는 것은 형태 없는 고통이 비로소 '글'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며, 슬픔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한다.

책을 받기 전에는 여성시인들의 시를 담는데 표지를 왜 배드민턴을 치는 두여인의 모습으로 했을까 궁금했는데 옮긴이의 글을 보고서 그 의미를 알았다.

p.5~6
초판 한정 양장본의 덧표지에는 영국 유명 화가 데이비드 인쇼의 <배드민턴 게임>(1972~1973)이 실린다.

이 그림의 원제목은 토머스 하디의 연작 소네트<그녀가 그에게(She, to Him)>의 한 구절에서 빌려왔다.

인쇼의 그림속 두 여성은 황혼 무렵의 정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장면에서 셔틀콕은 공중 어딘가에 있고, 황혼은 이미 기울었다. 인쇼는 "서로 무관한 수많은 순간들을 한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그 한 순간에 더 보편적이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림 속 두 여성처럼, 수많은 '여성 작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이 있던 자리에 그들을 지탱한 언어가 있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여러나라의 여성시인 100명의 간단한 작가소개와 시 한편씩이 실려있다. 그 속에는 그들의 슬픔과 고독, 열정과 회환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데, 시 한편 한편을 읽다보면 다시금 책제목을 생각하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지만 표현하기 어렵거나 싫을 수도 있는 감정들을 일단 말이나 언어로 드러내게 되면, 그 감정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일단 표현된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 감정들이 건너갈 수 있다. 스스로 삼켜야 하는 혼자만의 감정들이 형체를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언어로 바뀔수도 있는 것이다.
고독이나 슬픔조차 잊으려거나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누리고 표현할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여길 수 있으려면 일단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시집에 실린 여성들에게는, 현재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woojoos_story님의 진행으로 단체디엠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티초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우주서평단 #슬픔에게언어를주자 #아티초크출판사 #김명순ㆍ브론테자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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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 제13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
이유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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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에세이《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라는 부제를 안고 있다.

20여년 연락이 닿지 않던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방의 냉장고에 붙여놓은 쪽지에 써있는 글귀이다.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오랜세월 함께 하지 못했다고 해도,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가 느꼈을 감정은 사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얽혔을 텐데, 어찌 단어 몇 개로 나열할 수 있을까.

사전에서 연고(緣故)의 의미를 찾았다.
1. 일의 까닭
2.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
3.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

한자를 보니, 인연의 까닭(이유)이라는 조합도 가능해진다. 누군가와 맺어진 인연의 이유라고 여기니, 연고라는 글자가 새삼스레 각별해진다.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글을 시작하지만, 어머니, 아내, 아이들 사이에서, 지나쳐온 일상에서, 연고가 가지는 의미들을 되짚어간다. 그리고 빈소없이 시작된 그날로부터 쌓여진 글들이 빈소가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서, 희미하게나 그 곳곳의 마음들이 전해지는 글이다.


p. 57~58
외등 하나. 평소라면 모두 잠들 무렵 꺼버렸을 불. 그 불이 켜져 있다는 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에게는 그 외등이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스스로 꺼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p. 71~72
아버지도 그랬을까. 출구가 없는 자리에서, 사람을 살려두는 것마저 벗어 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무연고란 어쩌면 그 순간, 자신을 붙들어두던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몸의 이름인지도 몰랐다.


P. 86
이름이 내것이면서 내것이 아닌 순간이 있다. 아버지에게 끝내 붙은 말은 이름조차 아니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는 이름 대신 처리를 위한 말을 달고 갔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그 사람 곁에 남아 있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이름을 잃으면 연고도 함께 사라지는 것인지도.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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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썸머 에디션)
이디스 워튼 지음, 민지현 옮김 / 머묾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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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워튼 #여름 # 머묾출판사 #썸머에디션 #도서협찬

📚 이디스 워튼 《 여름》

머묾출판사에서 이디스 워튼의《여름》이 썸머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썸머에디션에 어울리게 감각적인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책등부터 앞표지에 이르는 SUMMER 와 EDITH WHARTON의 부분은 살짝 느껴지는 양각으로 처리되어 책을 들고 있을 때에도 느낌이 좋다.

🔖 이디스 워튼(1862~1937)은 미국 상류귀족출신이다. 《환락의 집》,《이선 프롬》,《관습의 나라》,《여름》,《순수의 시대》, 자서전《뒤를 돌아보며》등 생애 동안 장편 소설 15편, 중편소설 7편, 단편소설 85편, 다수의 시와 에세이와 여행기를 남겼다. 1920년에 출간된 《순수의 시대》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 p. 24
이 소설이 쓰인 데는 사연이 있다. 1908년부터 시작된 저널리스트 모턴 풀러턴과의 사랑은 워튼에게 마흔다섯 살에 찾아온 생애 최초의 열정이었다. 관계가 식어가던 무렵 풀러턴에게 보낸 편지에서 워튼은 이렇게 썼다.
"당신은 나를 긴 무기력에서 깨워주었어요...... 관습적 제약에 대한 둔한 순응, 불필요한 자기 지움으로부터. 내가 서툴고 말을 잘 못했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내 한쪽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같은 편지에서 덧붙였다. "당신은 한때 내가 이 사랑의 경험으로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고 했어요." 이 소설은 풀러턴과의 관계가 끝난 지 6,7년 뒤에 쓰여졌다.

🔖 첫문장
로열 변호사의 집에서 앳된 아가씨가 나와 문간에 섰다.그 집은 노스도머의 유일한 거리 맨 끝에 있었다.

노스도머라는 마을에, 변호사 로열이 '산에서 데려온 아이' 채리티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입양이 아닌 후견인 상태로 말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채리티의 무료한 일상에, 도시에서 온 건축가 하니가 등장한다. 그리고 채리티의 삶에, 처음으로 사랑과 욕망이 생기는데, 이미 깊어진 마음뒤에 하니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채리티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는 아직 미국에 여성참정권도 있기 전이다.설사 법적인 제도가 그렇다 치더라도, 채리티와 하니의 사회적 계급차이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자립의 의지가 있다고 해서 채리티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질까? 하니를 따라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게 과연 사랑에 국한된 마음이었을까? 다른 의미는 없었을까? 그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서로 다른 욕망을 꿈꾼 것은 아닐까? 끝도 없는 질문들이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 이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채리티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 소설을 읽고 처음에는 이게 무슨 성장소설인가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일부의 체념과 일부의 현실적 판단이 합쳐진 결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덱스를 붙여놓은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여러가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버렸다 생각했던 엄마에 대해 모성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는 장면, 사랑했지만 이미 떠나가버린 남자의 행동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가 타인의 입장에서 고려하게 되는 행동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사랑의 열병뒤에 남겨진 성숙이었다.
살다보면 이런 것들이 결과론에 의해 참으로 많이 가려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묾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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