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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 (애장판)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평점 :
📚 우사미 마코토《어리석은 자의 독》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워받아 읽는 것의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평소에 내가 알지 못하던 작가나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이번 책은 나에게 또 한명의 애정하는 작가를 생기게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일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구성이나 풀어나가는 방식, 문장들까지 그냥 미스터리소설 부분에 한정지어 분류하기에는 좀 많이 아까운 책이다.
소설의 시작은 2015년, 초고급 유료 노인 요양원에 있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1985년, 1965년의 과거가 교차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이러한 글의 방향은 인물에 대한 오해를 가져오기도 하고 판단을 유보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직업소개소 직원의 착오로 생년월일이 같은 두 사람, 가가와 요코와 이시카와 기미의 일자리소개가 뒤바뀌는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만남은 우연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를 곱씹어보면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그냥 주어지는 우연은 없는거 같다.
장르가 미스터리이니 내용을 쓰고 싶지는 않다. 알고보면 읽는 맛도 없을뿐더러, 내가 작가의 글에 현혹되어 끌려다니는 재미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소설은 단지 범인을 찾아가는게 목적이 아니다. 가난, 사회적 억압, 폭력, 가족의 붕괴 등 사회 경제적인 상황들이 인간을 어떻게 몰아갈 수 있는지,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실타래를 풀어헤치듯 보여준다. 끝나지 않는 상황들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매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할래?
✔️ 모든 것은 쓰임의 문제이다. '독'은 원한이나 복수심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살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일지도.
✔️ 물질적인 가난과 심리적인 절망 중 어느쪽에 경중을 두느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신념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소설속의 아수라를 보면서 그 누가 그런 잣대로 감히 평가할 수 있나 싶어졌다. 특정 누구를 가해자나 피해자라 칭할 수도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의 방법과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이러지 않을거라 자신있게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인물들을 상대로 비난도 안쓰러움도 대놓고 할 수 없었다.
📌 요즘 나름의 책태기에 빠져있던 나를 건져준 책이다. 작가의 책들을 한권씩 사들이고 있다. 기존 평들을 보면 결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을 듯한데 그래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글쓰는 솜씨가 어디갈까. 번역가님의 문장도 한몫하는듯!!!(이연승 번역가님)
강추!!!!!
p. 135
작고 보잘것없으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 의미를 진진 채 이 세상에 태어나니까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소는 천변만화의 영약이 되기도 하지요......
가슴속에 독을 품으십시오. 어중간한 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독입니다.
p. 242
빈곤보다, 굶주림보다 무서운 것이 이곳에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이었다.
p. 290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한번 움직이면 순식간에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형태가 급변할 때가 있다. 그런 전조가 이 외딴 폐광마을 안에서 느껴졌다.
p. 320
구겨진 봉투를 열기 두려웠다. 봉투의 두께는 나와 유우가 범한 죄의 무게를 말했다. 지금 나는 절도범이자 살인범이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그것만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p. 341
내 과거를 다시 쓸 수는 없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나의 분신은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시 나는 그런 어렴풋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코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되었다. 하코는 목숨을 잃었고, 나는 또 다시 도망쳤다.
p. 353
생활이 안정되고 조금씩 풍요로워지면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더 커졌다......언젠가부터 파멸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