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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비치
레이철 요더 지음, 고유경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4월
평점 :
레이첼 요더 《나이트 비치》
마리엘 헬러 감독, 에이미 아담스 주연으로 올 가을에 개봉 예정인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훌루Hulu 오리지널)
평생 창작을 업으로 삼았던 저자 레이철 요더가 아이를 낳은 후 이삼 년간 전혀 글을 쓰지 못했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집필하기 시작한 이 소설은 수많은 여성 창작자의 공감대를 불어일으키며 화제를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또는 그런 소재를 다룬 작품은 어쩌면 읽기전에 보기전에 이미 편견을 가지고 대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을 가지게 된다. 왜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이 책은, 자신만의 꿈이 있었던, 그러나 결혼과 육아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또는 잃어버린 "엄마,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같이 독박육아에 시달리고, 경제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손하나까딱하지 않고,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엄마에게 있는거 같고, 해야될 일은 너무나 많지만 그건 또 당연하면서도 티하나 나지 않고, 오히려 조금만 소홀해져도 책임은 홀로 다 맡아야 하는, 그런 엄마라는 위치말이다.
그런 속에서의 나름의 분노가 나이트비치라는, 한밤중에 개로 변하는(계속은 아니지만), 황당하지만 이해가 될듯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 변화와 겸험에 대한 놀라움이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면서 여자의 생각과 행동은 변화를 갖게 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계속 생각났다.
불륜이라는 오해를 받을지라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여자의 마음도,
오래전 아이에게 분유20ml를 먹이겠다고 한시간마다 깼던 그 시절의 "나"와도 만나던 시간.
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지 이해해 줄, 함께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애초부터 그런 공간과 시간은 거론조차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위로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글로나마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 작가가 부러웠던 시간이었다.
p. 255~256
얼마나 많은 세대의 여자들이 자기네의 위대함을 뒤로한 채 시간을 허비하며 결국 그게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방치한 걸까? 남자들이 자기네 시간을 다룰 줄도 모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시간을 다 소모해 버렸을까? 게다가 그런 행위들을 거룩하거나 이타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얼마나 비열한 속임수인가. 모든 꿈을 포기한 여성들을 찬양하는 건 또 얼마나 사악한 짓인가.
p. 206~297
젠, 학교에서 어떤 공부 했어요?
그런 질문 참 오랜만이군요.
엄마라는 잔인한 시간은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고 강한 힘이 있고 뻔뻔함도 있지만, 그 핵심에는 매우 사적이고 슬픈 것이 있다. 엄마가 마음속 어딘가 차갑고 어두운 곳에 깊숙이 집어넣은 꿈들, 그 안으로 들어가 그 꿈들을 확인하고, 불을 켜고, 시트를 확 벗겨내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더는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꿀 일이 없으니까. 입으로 동물을 죽이고 싶어 미친 듯이 배회하는 년이 자기 안에 있으니까.
p.322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