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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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돌격대-나가사와 의 관계이다.
와타나베는 지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떠다니는 인물이라면
돌격대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하루끼는 언젠가 인터뷰 속에서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 유키오를 은근히 경멸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며... 아마도 돌격대라는 인물은 유키오에 대한 비아냥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실제로 돌격대는 많은 이들에게 따돌림받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나가사와는 돌격대와 나의 중간적인 인물이다. 출세지향적이라는 점에서는 돌격대와 유사하지만, 세상에 대해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와타나베와 유사하다.
나가사와는 이외에도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나가사와는 복잡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전에 대한 맹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와타나베는 나가사와에 대해 공감과 반감을 모두 가지고 있다.


2. 나-나가사와-하쓰미(혹은 여자들)
나가사와는 고전을 맹신하는 자, 자신의 행동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절대적인 가치를 작가 스스로가 부여해 왔던 근대 소설가들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나가사와라는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냄으로서 고전은 몰락했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나가사와는 나와 하쓰미를 연결하는 인물, 나와 여자들을 연결하는 인물이다. 나와 나가사와는 의미없는 섹스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나가사와에게는 반성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나가사와라는 인물의 등장은 이 소설의 리얼리티 형성에 아주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나오꼬와 미도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섹스를 통해서이다.

3.나-기즈끼-나오꼬와의 관계 
기즈끼는 나와 나오꼬의 관계를 만들어 준 인물이다.

모두들 인간관계에 있어 서투르다.
기즈끼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중한 사람을 잃은(상실) 경험이 있다.
나오꼬는 언니와 기즈끼를 잃었고, 나는 기즈끼와 나오꼬를 잃어버린다.
이 죽음은 모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불가해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하루끼는 반복해서 말한다. 삶과 죽음은 나눠어질 수 있고, 삶 속에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당구장에서 승부를 걸고 난 후, 기즈끼는 자살한다.

4.나-나오꼬-미도리의 관계
이들의 존재는 서로 독립되어 존재한다.
현실(미도리)과 이상(나오꼬)이 분리되어 있는 실세계와 같다.
나는 미도리를 사랑하면서 나오꼬에게도 연민이 섞인 애정을 느낀다. 와타나베가 나오꼬에서 미도리로 감정이 이동되는 과정이 실감나게 묘사되는 장면은 아주 흥미롭다. 어쩌면 와따나베는 나오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문체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결코 소설가이기 때문에, 특별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평이한 문장이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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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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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종전의 그의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시마모토는 나를 만나기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는가? 시마모토와 돈 봉투를 건네준 남자는 어떤 관계인가? 등등 텍스트 속에는 의문스런 점들이 무척 많음에도 하루끼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루끼의 작품들이 인과성에서 벗어난 부분이 많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주 중요해 보이는 부분까지도 생략되어 있다.

그럼에도 내용은 흥미로운데, 첫사랑이었던 중년의 남녀가 다시 만나서 재회하는 장면이 낭만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루끼에게는 드문 일이지만, 증권이라는 도박성 강한 기괴한 존재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하루끼 매니아라면 권하고 싶다. 하지만 하루끼의 다른 작품을 접해 보지 않은 분이라면 다른 책부터 읽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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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류필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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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인간사의 거의 모든 사건들이 몽땅 들어있다. 그는 정말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풀어나간다. 그는 대조의 마술사다.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선과 악, 도시와 시골, 남자와 여자, 속물과 숭고함에 대한 이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하나의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다층적이면서도 미묘한 감성을 그리고 있다. 불괘함과 행복감, 슬픔과 안도감, 이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복잡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오늘날까지도 사회학적인 연구가 될 정도로 심오한 주제를 세상에 제시한 '주제'의 작가라고 한다면, 투르게네프는 (가장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는) 유려한 문체주의자 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치게 독단적인 말은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해 톨스토이는 구성의 마술사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못지 않게 다양한 인물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지만 별다른 혼란을 주지 않는다. 하나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장면에서 일정수 이상의 인물이나 (관념적으로) 인물을 상징할 수 있는 사물을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구성은 아주 치밀하다. 게다가 인물과 인물의 만남이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형이상학적이면서 구도자적인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라, 욕망에 순응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러면서 톨스토이는 궁극적으로 이상을 그리고 싶어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밑바닥의 민중을 그리고 있는데 반해 톨스토이는 일견 귀족주의자인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의 인물은 보다 현실 속의 인물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보다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의 구성 상의 특징 중 하나는 겹치기 기법이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화자에 의해서 다른 느낌으로 전달된다. 하나의 절 안에서 관점이 여러번 바뀌는 받식 때문에 독자의 환상을 깨뜨리는 면들이 있고, 독단적인 말투가 거슬리게 한다는 점 등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는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극도의 불안과 혼돈으로 서사의 틀을 형성한다. 반면 톨스토이는 긴장과 이완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두 명의 대가들이 소설의 발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유심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두 명의 사람을 등장시키면서 하나의 상념에 대한 의견충돌로 서사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것이 소설의 발단이다. 그리고 항상 셋 이상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상이한 견해 때문에 충돌시킨다.

톨스토이가 만들어 내는 공간은 오늘날 리얼리즘 작가보다 더 상상력을 충만시키는 효과를 제공한다. 러시아의 황량하고 싸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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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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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와 꼭 사상이나 취미가 같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는 단편소설가로서의 하루키다.

위대한 작가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사유체계가 변해가는 것을 잘 인식한 작가들이다. 현재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사유보다는 직관하는 쪽이다. 전 세대 인간들보다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은 발전했지만, 상상력은 축소되어 가고 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 인용한다.


"선생님은 소설을 쓰는 분이니 인간의 행동양식 같은 데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설가란 어떤 사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겁니다."
나는 그의 말에 대해 잠깐 동안 생각해 보았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일류 작가라면 그렇겠지." <<개똥벌레>>, <헛간을 태우다> 중에서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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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정일 문학선집 2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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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의 리얼리즘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조셉 헬러 류의 역설을 담고 있는 반리얼리즘 소설과도 구분된다. 작품 속의 인물의 행위들은 개연성은 존재하지만 사실성은 획득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물의 행위 속에 자의식의 분열이나 편집적인 의식을 그리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작가는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 일부러 의식의 도약을 계획한 듯하다.

그는 성을 서사를 진행시키는 하나의 매개체로 이용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된 구조적 모순, 그리고 제도에 대한 비판을 하는 도구로도 사용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장정일의 서사전략 중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성이다. 반드시 성이 그 역할을 해야 할 필연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 장정일의 내적 분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서술구조는 아주 독특한 형식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사건의 진행은 시간과도 무관하며, 공간의 이동도 자유롭다. 영화처럼 순식간에 장면전환이 되면서 지금 화자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행위 중인지, 현재의 일인지 언급을 회피하면서 서술행위는 계속 지연되기도 하고, 이전 서술을 부정하거나 반박한다. 화자 자신이 스스로의 언급에 대해 신빙성을 스스로 포기해 나간다. 

 

 3.그는 어떤 분류의 작가일까?

 물론 그는 사실주의 작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반-사실주의 작가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반-사실주의를 대표할지는 모르지만 대략 도널드 바셀미, 조셉 헬러, 이 두 명의 작가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반-사실주의자들은 서사의 토대를 어떻게 잡아나가는지 개념파악은 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개념을 계속 전복시켜 나간다. 아이와 어른/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전복되어 있고,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반응 역시 인간의 기본 정서와는 상반된다. 이것이 현실 상황의 과장에서 비롯되는 마술적 리얼리즘/ 환상문학 등과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장정일에게는 이런 위치이동 같은 행위들은 없다. 그는 이따금 사건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을 거부한다. 순식간에 서사는 하나의 세계에서 저만치 이동해 있다. (만약 이런 용어가 있다면) 그는 초월적-사실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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