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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 뜨개질하는 남자의 오롯이 나답게 살기
이성진 지음 / 샘터사 / 2021년 11월
평점 :
‘뜨개질하는 남자의 오롯이 나답게 살기’라는 멘트와 뜨개털실 위에 앉아있는 주인공의 표정!
얼마전 대학 3학년인 아들이 학교시험 과제라고 요리와 뜨개실을 준비했다.
늘 먹는 먹거리에 대한 요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뜨개실을 이용한 과제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이든 나의 기우였음은 반나절도 안되어 알게됐다. 누구나 하는 일인양 자연스럽게 물어물어, 유투브보며, 과제를 수행했다.
또 다른 남자 이성진작가의 뜨개질은 과연 무용했을까 하며 첫장을 들여다보았다.
오래전부터 ‘~답다’는 말에 달콤쌉싸름한 무언가를 느꼈던 것 같다. ‘~답다’는 접미사를 갖다 붙이는 걸 가만히 받아들이는 않는 사람. 어느새 나는 자신의 품사를 세상의 요구에 맞춰 쉬이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P.11)
아 이런 사람이구나. 뜨개질하며 오롯이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작가구나.
작은 책 속에 들어있는 작가를 향해, 작가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으러 출발했다.
첫 번째 들은 말.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고자 함은 실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걷겠다는 당신을 잘해주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며 오늘을 양보할 줄 아는 당신을 나는 기꺼이 응원한다. -(p.19)
고등학생 때 여학생치고 뜨개질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소위 가정 가사 시간에 뜨개질을 해서 나온 벙어리장갑, 목도리, 컵받침 등을 한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 후 까맣게 잊고 살다가 결혼후 첫 아이를 가졌다. 모성애의 발동이 왜 뜨개질에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아파트 상가내 뜨개질 집에 모인 여자들의 모습에 끌렸다. 겨울에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황금색 빵모자 하나를 만들며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 들은 말.
-도시와 뜨개질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뜨개질은 일차원의 선을 이차원의 면으로 짜내는 작업이다. 도시를 배우는 일 역시 하나의 면을 탐구하는 작업이며, 사람사이의 연결을 다룬다. 점과 점의 단순한 이어짐이 아닌 선의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는 도시.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 시간의 실로 뜨는 삶의 편물은 끝없이 확장하는 나선은하다.- (P.39)
작가가 좋아하는 표현, 저녁보다는 ‘땅거미’ 새벽보다는 ‘어스름’을 가장 진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어느새 한 해의 종말을 알리는 시간들은 뒤로 돌아갈 수 없이 앞만 보고 걸어야하는 군홧발처럼 다가온다. 땅거미에서 어스름까지 덮고 있는 도시 속 시간을 참고 있는 사람들과 나를 연결시키는 작은 행위들을 고맙게만 여겨야 할때다. ‘당신이 있어 올해도 참 좋았다고. 당신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매일 성사처럼 고백한다.
세 번째 들은 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에 예고가 없듯 애장품이 마음에서 떠나는 일도 한순간임을 한다. 관계맺음의 순간부터 헤어짐은 각자의 코스를 따라 이쪽으로 마라톤을 시작한다. 더러는 금방 도착할테고, 얼마는 둘러 오느라 퍽 늦을지도 모른다. 계피와 호두 냄새가 한껏 밴 오븐 역시 세월의 태엽을 돌리다보면 그렁저렁한 애물단지가 되어 있으렷다. -(P.62)
아침부터 사회뉴스는 매정하기만 하다. 어린아이를 상해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양부모 친부모의 얘기부터 과외 명문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한번 만진 물건과의 관계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건만 하물며 사람과의 관계에 어찌 이런 일들이 있는지. 겨울이 오기 전 가볍게 살자고 딸과 손가락을 걸었다. 첫 단계로 입지 못하는 옷을 꺼내어 옷장을 가볍게. 결혼 후 20년 이상 쌓아놓기만 하다보니 사랑의 ‘애물단지’가 아니라 정말로 ‘애물단지’가 된 수많은 물건들. 뗄레야 뗄 수 없는, 오로지 하나 남은 것만 제외했다. ‘딸의 배넷저고리‘
그렁저렁한 애물단지로 몸을 숨기기 전에 필요한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옷들에게 안녕...
뜨개질 하는 남자, 이성진 작가에게서 들은 말들은 줄줄이 이어졌지만 독자들의 선택을 바라는 마음으로 독후를 마치고 싶다. 이번에는 작가의 말처럼 ’가끔 식은 비어있음을 즐기는‘ 독후를 선택하면서 나도 또 다른 독자도 오롯이 ’답게‘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길 바랄뿐이다.
언뜻보기에는 단순명료,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굽이굽이 흘러들어 무용 아닌 유용한 에세이를 전해준 작가에게 공감 100퍼를 선물하고 싶다.
-그 어떤 것에도 존재의 설명을 기대지 않고 자유로이 살겠다는 건 한낱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부의 언어를 전부 떼어내고도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면, 설령 무용할지라도 그게 바로 나의 알맹이가 아닐까. 알맹이를 불리고 키우는 일은 시루에 콩나물을 키우는 일보다는 어렵겠지만 수확의 기쁨은 비길데가 없겠다. -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