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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개인
이선옥 지음 / 필로소픽 / 2020년 3월
평점 :
이선옥. 단단한 개인(필로소픽 2020) 서평
“단단한 개인은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이념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9쪽)
제목으로 쓰인 ‘단단한 개인’의 의미를 머리말에선 이렇게 정의한다. 그렇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책 말미에 있는 “천천히 생각하고, 늦더라도 바르게 판단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생각의 결과는 다수의 압력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단단해졌고, 누구의 편도 아닌 자리에 혼자 있을지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사유의 힘이다.”(186쪽)가 제목이 택한 ‘단단한 개인’의 의도일 것이다.
주변의 아우성에 영향받지 않고 ‘늦더라도 바르게 판단하는 그 현명한 습관’을 지니기란 어렵다. 선명한 선악 이분법으로 사안을 대하고, 양자택일을 신속하게 요구하는 뉴미디어 환경에선 저 현명한 습관을 지니긴 너무 어려울 뿐 아니라, 나쁜 방관자로 몰리기도 쉽다.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정직성과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는 그런 이유에서 전략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매체 환경 속에 우리가 산다.
<단단한 개인>을 읽고있자니 지나간 내 경험과 견주어서 책이 읽혔고, 진실공방이 순수성을 잃고 주목경쟁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엔터테인먼트화 된 이 사회에서 ‘단단한 개인’의 길을 선택하는 건, 세속에서 벗어난 수행자의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실제로 나는 내 지난 경험을 되돌아볼 때 그런 태도는 초연한 수행자와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쓴 저자 이선옥 작가는, 현장 르포로 임상경험이 많은 작가로 내 머릿속에 희미하게 기억되고 있었으나, 선명하게 각인된 계기는 이 사회가 페미니즘 편중 사회가 되고 미투 현상 때문에 페미니즘이 한층 힘을 받던 2018년 김용민TV 라는 유튜브에 ‘우먼스플레인’라는 코너를 통해서였다. 나는 방송 대부분을 봤는데, 깊이의 차이는 비록 컸으나 유튜브에서 그녀가 주장하는 바와 평소 내가 직감하는 부분이 상당 부분 일치해서 배움을 많이 얻었다. 유튜브 채널과 같은 이름을 딴 이선옥의 저서 <우먼스플레인>도 샀고, 그녀가 어딘선가 추천한 조너선 하이트의 책들도 구해놨다. 또 연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후 절판된 <잘못된 길>이 올해 다시 재출간되어 그 책도 구해놨다. <잘못된 길>의 부제는 ‘199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고 붙여놨는데,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비판적 성찰을 한정한다는 단서가 붙어있지만, 사실상 2015년 이후 한국에서 전에 없이 광풍을 일으킨 페미니즘 일반론에 갖다붙여도 의미는 통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견제받지 않는 일방통행의 폐단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로 반박하는 여성 논객의 존재는 그 자체로 희귀한 사건이다. 이선옥이 단단한 개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선옥 작가는 지금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만, 그녀의 인지도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유튜브 ‘우먼스플레인’라는 코너였고, 이름이 표방하는 정체성에서 보듯 이 책 <단단한 개인>의 쟁점도 지금 과열되어 기본권을 위협하는 한국 페미니즘 현상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페미니즘이 지금처럼 견제되지 않게 된 배후로 ‘언더도그마’라는 맹신이 있다. 즉 인습적으로 약자로 분류되는 이의 고발에 대해, 전후 관계 확인하지 않고 사실로 확정짓는 사회분위기 말이다. 2018년 미투와 그의 전조였던 2016년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 사태 때, 피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익명 뒤에 숨은 여성들의 주장을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여졌고, 이름이 공개된 남성에 대한 비난에 진보단체/진보언론이 있었다. 이런 주장은 저자가 방송과 책에서 반복해서 지적했단 내용이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약자가 거짓 폭로를 할 리가 없다고 믿기 쉽다. 그렇지만 사실을 부풀려 침소봉대하거나, 사실을 왜곡해서 거짓 폭로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2016년과 2018년의 대규모 폭로 현상은 그런 사적인 이유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남성)에 대한 악의를 갖고 경험을 부풀리거나, ‘폭로’라는 거대한 흐름에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부풀려서 부지불식간 동참하는 일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분노한 여론이나 언론은 두 개인 간에 일어난 복잡한 문맥을 헤아리려 하질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순한 구분법을 따른다. 그것이 권선징악이라는 대중의 요구에도 손쉽게 부합할 것이다.
이선옥은 ‘정체성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 도입부에서, 피해자 서사라는 감정에 휘둘리기 전에 ‘보편적인 관점’을 견지하라고 주문한다. 그녀가 견지하자는 ‘보편적 관점’이란 ‘헌법’을 말한다. 휘발되는 감정적 판단에 쉽게 휘둘리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헌법이라는 보편 기준’을 따르자는 주장은 그것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파괴력이 작다. 이 사회는 보편 기준을 따르기에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중의 감정폭발에 너무 쉽게 휘둘린다.
“진보진영은 페미니즘을 기본권의 지위에 두는 착각을 해왔다.”(39쪽)
검증되지 않은 여성의 인터넷 폭로와 그런 선정적 내용을 검증없이 그대로 기사화하는 매체 환경 때문에,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보편적인 관점’이 아닌, 온라인 여론재판이라는 신속한 방법으로 가해자의 낙인을 받는다. 이런 인민재판의 악순환은 진보 언론의 언더도그마 맹신이 있다.
책의 한 챕터(2부)는 이 사회의 페미니즘 광풍을 다룬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세대에겐 흔들리지 않는 시대정서로 굳은 페미니즘에 관해 생각해봤다. 책 지문에 페미니즘 광풍에 편승한 남성페미니스트(남페미)의 이중성의 실제 사례가 소개되는데, #나는잠재적가해자입니다 라는 해시태그 운동에 가담해서 페미니즘의 피해자 서사에 동조한 진보성향의 남성들과, 그들 남페미중 일부가 과거에 혹은 선언 이후에, 성범죄에 연루되어 남페미의 이중성이 질타받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남페미의 진짜 문제점은 성범죄에 연루된 일부 남페미의 이중성이 아니라, 복잡한 남녀문제를 이분법으로 획일화시키고 여성 피해자서사를 신앙처럼 믿고 설파해온, 노회찬 진중권 홍성수같은 근본주의자들이 진짜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호박대첩으로 넷페미들과 일전을 벌인 유아인이 자신을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항변하거나, 2018년 미투 때 하일지 교수가 학생들의 사과 요구에 사과를 거부하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한데에서 보듯, 여성주의로 번역되는 페미니즘이 정상적인 일반인에게는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복무하는 독보적이고 순수한 이데올로기인양 믿어지는 것 같다. 명칭이 호도하는 진실이 지금의 혼란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가시 돋친 말들을 타인에게 쏟아내고 우쭐대던 좌파, 말에 대해 책임감도 없는 불편러, 그게 나였다.”(186쪽)
<단단한 개인>을 읽는 내내 내가 겪었던 지난 경험들이 반추되었다. 인터넷으로 무차별 린치를 당해 직장까지 잃은 저스틴 사코의 사례가 소개되는 3부의 소제목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선,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체험들이 소개된다. 옳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불특정 다수 네티즌만큼 대책이 없는 이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행패에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는다. 진보매체에 연재를 했고 진보정당과 진보시민단체에 지지표를 던지거나 후원금을 보낸 나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 진보 이데올로기가 포퓰리즘과 인터넷 인민재판의 플랫폼임을 반복해서 경험하자, 오랜 세월 내 존재감의 비빌언덕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이 일이 생기고 나서 ‘어? 그거 다 끝난 거 아냐? 아무 일도 아니었잖아?’ 이런 얘길 많이 들어요. 끝났다니... 당사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116쪽)
익명의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받은 이들의 고백이 소개되는 지문이 나오는데, 경험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고백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그 중 ‘피해자 가족’이 털어놓은 말은 이렇다.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 우리를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된다.”(54쪽)
유튜브채널 <우먼스플레인>에서 대략 “극단주의자들이 우리를 대표하게 하지말자.”라고 했던 이선옥의 말이 내 머리에 각인이 되었었다. <단단한 개인>을 읽다보니 지문에도 같은 문장이 나왔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단주의자들이 대중을 감정적으로 선동하는 주장을 공론으로 부상시키기 유리한 플렛폼이 형성되어 있다. 사회와 결국에는 섞여살아야 하는 개인이 단단해지기에 너무 어려운 매체 환경이다. 그 난감한 환경에서 개인은 단단함을 지켜야 한다. 난관은 지나가게 되어있지 않나.
https://www.youtube.com/watch?v=xKtUF-_xeAQ&t=33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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