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입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초가을에
시중은 J기도원 기도 굴 주위를 거닐고
있다.
성전의 종소리가
울린다.
오후
1시 예배를 드릴 시간을 알리는
것이다.
성전에 들어가 예배드릴 준비 찬송을 자신만의
경건의 자세를 취하며 누구의 의식도 하지 않으며 찬양을 부르고 있다.
찬양을 열심히 부르며
우연히 옆을 보았는데 누가 나를 옅은 웃음으로 쳐다보며 있는 것이다.
시중은 신경 쓰지 않으며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성전을 나와 조금 걷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여기서 나를 부를
사람이 없는데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요’ 내 앞에 서있는
여자.
아까 예배시간에 나를 쳐다보았던 그
사람이다.
나는 엉겁결에 ‘저요’ 말이 나갔다.
네 저하고 얘기 좀
하실래요?
키가 나보다 크다.
나는 나 같은 장애인에게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얘기를 하자는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뭐 사람이
선하게 보여 또 학생인 것 같아 흔쾌히 ‘네 그래요’ 그렇게
기도원 주변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는 말없이 길가 사이로 널브러져 있는
낙엽을 밟으며 좀 걸었다.
걷다가 벤치가 보였다.
내가 여기 좀 앉을까요? 우리는 낙엽이
뒹구는 바람을 타고 앉았다.
그녀가 말을 했다.
그 목소리는 여자치고는 베이스
톤이다.
인상이 좋으시네요.
여긴 언제
오셨어요?
나는 빙긋 웃으며 어~
이틀
됐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시중도
묻는다.
그녀는 눈가에 엷은 웃음을 뛰며
음~
최
아름이어요.
올해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참 인상이 푸근해
보인다.
내 이름은 강시중이고 상담학과에 다니는
2학년이라고.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럼 내가 오빠가
되는 거네요!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따라 미소를 지으며
‘그러네요’ 재치 있는
동작으로 그럼 제가 오빠라고 불러도 괜찮죠?
시중은 얼떨결에 엉거주춤의 어투로
‘그럼요’ 겸연쩍게
웃는다.
아름인 붙임성이 좋은 사람
같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래 만난 사람들처럼 오빠,
동생이란 호칭을 아무
부담감 없이 부르고 있다.
아름인 내가 몸이 불편한데 어떻게 나와 얘길
할 생각을 했어?
시중은 묻는다.
누구를 만나든
확인하고픈 버릇이 또 자신 안에서 꽈리를 튼다.
자기의 존재가 남과
다르다는 콤플렉스에서 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확인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면 통과되는 절차이다.
꼭 거처야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아름인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냥 인상이 좋아
보이고 대화가 될 것 같아 말을 걸었다 한다.
아름이 얼굴이 갑자기 수심이 있는 낯빛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러더니 처음 보는 시중 앞에서 자기의
아픔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오빠 나는 병이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신앙이
좋아 나 보고 여기 가서 기도도하고 마음도 추스르고 오라해서 여기 왔어요.
무슨 병인데?
마음의 병!
우울증이란
병이요.
2년 됐어요.
그래서 나는 사는
것이 재미가 없고 따분하고 해서 죽을려고 몇 차례 수면제도 먹었는데 그때마다 엄마에게 발각되어 실패하곤 했어요.
요새는 상담도 받으며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 엄마 성화에 이렇게 바람도 쏘일 겸 오게 됐어요.
와서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더 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예배를 보는데 오빠가 눈에 들어왔어요.
쳐다보는 내내 저
사람은 뭐가 저리 좋아 예배 내내 웃음을 머금을까!
혼자 온 것도
같고,
또 몸도 좀 불편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끝나면
이야기나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오빠 인상도 좋아 보이고
해서요.
한 참을 듣고 있던 시중은 너무 힘들었겠다. 아름의 마음에 같이 공감한다.
그래서 기도원에 온
거구나?
네.
오빠!
그 아픈 시간들을 그래도 잘
이겨왔네.
2년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아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하자
갑자기 아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순간 시중은 멈칫하며 한마디 더
한다.
아마 많이 힘들었었나
보다!
시중은 그런 아름을 보며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마음의 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장애인이라도 분명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할 곳이 있을 거야.
시중은 자기의 진로에
대해 걱정이 많다.
상담심리를 대학에
들어와 2년을 공부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자원봉사다,
상담소에서 일한다
하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많이 듣는데 정작 본인은 장애인이라고 써 주는데 가없어 늘 마음이 먹먹하다.
다시 아름에게 약간은 조용히 아름에게 말을
잇는다.
아름!
세상에는 아름과 같이
마음이 아픈 사람도 있고,
나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어.
나도 내 몸에 장애가 있어 얼마나 살면서
불편하고,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할 때가 많은지 알아?
그럴 때면 정말 죽고
싶어!
나도 죽을려고 수면제도 많이 먹어보고
그랬는데,
아름이 같이 그때마다
엄마가 발견해 살려내곤 했어.
그런데 그래도 난
신앙의 힘이 있어서 이겨내곤 했지.
어릴 땐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인 교회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나만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 존재를 물어보며 거기서 기쁨을 찾으려고 애썼어.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그냥 웃음으로 넘기며
나를 다스리며 살고 있지만.
옆에서 듣고 있는 아름은 시중을 유심히
쳐다보며 언제 울었느냐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 키에 비해 너무도 귀여워 보인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아름에게 시중은 알 수
없는 마음이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름 우리 저녁 먹으러
갈까?
그래요 오빠!
배고파요.
아름과 시중은 식당에 가서 시중이
3천 원짜리 식권을 두 장 사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름에게 식권을 주며 내가 좀 불편하니까
아름이가 내 밥까지 타다 줄래?
시중은 대학식당을 가도 의례 친구들이 자기
밥까지 타다주는 버릇이 아름 이에게도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다.
오빠 앉아 있어요.
내가 가지고
올게요.
아름이 반응은 당연하다는 듯
반응한다.
잠시 아름이가 식판에 음식을 타와
앉는다.
오빠 여기 음식
맛있어요?
시중에게
묻는다.
응,
나는 가끔 오는데
먹을 만해.
오빠?
오늘 난 여기 혼자
처음 와서 쫌 마음이 먹먹했는데 오빠를 만나 기분이 좋아 졌어요.
우리 밥 먹고 산책해요.
아름은 친한 친구에게 친숙하게 말하듯
다정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시중에게 말한다.
그래 저녁 예배 전까지 산책하며 이야기
하자!
시중은 내심 기분이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기도원에 자주 오지만
이렇게 뜻밖의 아름다운 만남은 처음인 것이다.
아름의 얼굴을 보는
시중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또 시중과 아름의
나이 차이는 세 살 차이었지만 친구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름과의 만남은 정말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운명적인 만남인 것 같다고 시중은 생각하며 웃음을 짓는다.
그러며 이게 꿈이
아니길 바라며 조용히 손을 허벅지로 가져가 움켜져본다.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며,
학교를 다니며 많은
여자 친구를 사귀어 봤지만 처음 만난 아름에게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진짜 마음에 다가오는,
여자로 끌리는 느낌은
처음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마치 춘향이를 처음
보며 첫눈에 사랑의 화살을 맞아 어쩔 줄 모르는 이몽룡 이의 마음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시중은 금세
자괴감이 든다.
자신의 처지를 곁눈질
해보는 것이다.
그때 아름이가 눈가에 미소를 띠며 말을
한다.
오빠 우리 밖으로
나가요.
그래 나갈까?
가을 저녁 공기와 마른 잎들이 듬성듬성
붙어있는 옷 벗은 나무들이 전형적인 시골 풍경으로 참으로 신선하게 시중과 아름에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또 시골 냄새가
풍기는 초저녁 나뭇잎이 솔바람에 천천히 날리는 풍경은 둘을 축복해 주는 것 같다.
시중은 연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아름다운
공주와 데이트를 하는 꿈의 동화 속을 거닐고 있는 것 같다.
아름의 손이 어느새 시중의 팔에 얻어져
다정히 걷고 있는 것이다.
오빠 우리 만난 지 몇 시간 안됐는데
예전부터 만난 사람들 같이 너무 편하지 않아?
시중에게
물어온다.
맞아!
나도 아름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름이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하마터면 아름을 덥석 안을 뻔 했다.
아름과 시중은 나뭇잎과 솔바람 사이에 더
깊이 젖어드는 마음을 느낀다.
아름이는 걸으며 내 팔을 더 자기 팔 안으로
당기며 걷는다.
우리는 저녁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들은 채 만 채 기도원에 기도하러 온 건지,
데이트를 하러 온
건지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둘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어 어둑어둑해지는 길가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낙엽의 아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고
걷는다.
아름은 내가 장애인인데 아무렇지도
않아?
또
묻는다.
오빠 장애가 어때서!
나같이 정신적 장애가
더 안 좋은 거 아닌가?
아름은 시중을 한 인간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시중은 세상에
태어나 자기를 장애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은 유일하게 엄마뿐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태 살아 왔던 것이다.
오빠는 대학도 다니고 아는 것도 많은 것
같고 얼굴도 미남이잖아! 미소 지으며 너무 보기 좋아라고 말을 한다.
오빠 나는 아파서 대학도 못
갔잖아!
그리고 나하고 이렇게
대화가 통하잖아!
내가 오늘 여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
시중은 순간 마음의 안도감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갖는다.
세상에는 이렇게 나를 인간 그 자체로만 봐
주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뇌리를 스친다.
아름이가 추운지 내 팔을 더 꼭 자기 가슴
옆으로 당긴다.
아름이 오늘 밤에 어디서 잘
거야?
시중은 조심스럽게
아름에게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음 사실 오늘 아무것도 안가지고 손가방만
가지고 왔어 오빠!
그래서 성전에서 자려고.
시중은 그런 아름의 말에 주저 없이 말을
한다.
난 기도 굴에서 기도하다 거기서 잘
거야.
그럼 나도 오빠하고 같이
있을래.
시중은 내심 아름의 거침없는 대답에
놀라면서도 둘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아름의 맑은 눈도 오늘 밤 시중과 같이
있고 싶다는 눈빛이다.
음~
그럼 침낭이 하나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시중은 순간 망설임으로
‘그래 그러면 기도 굴에서 같이 기도하다
아름이가 침낭 속에서 자고 내가 침낭 밖에서 자면 되겠다!’
라며 겸연쩍게
웃어넘긴다.
그런 시중을 보며 흔쾌히 아름인
‘좋아’ 웃으며 시중의
팔을 꼭 쥔다.
둘은 어두컴컴한 한 평 남직한 기도 굴
안으로 후레쉬를 비추며 들어가 앉아 촛불 두 개를 켰다.
시중과 아름은 시중의
인도 하에 묵상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에게
기도를 해준다.
마지막으로 시중은
아름을 위해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를 한다.
‘하나님 우리 아름이가 지금 원치 않는
우울증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아름 이에게 오셔서 그 인자하신 손으로 어루만져 주셔서 이 시간 이후로 우리 아름이가 마음의 우울함으로 고통 받지 않게
해주세요!’
라며 간절히 시중은
기도를 마친다.
아름은 어느새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고였는지
두 손으로 두 눈을 훔친다.
시계를 보니 1시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오빠 졸리다.
그래 잠간만 둘둘 마른 침낭을
폈다.
아름아 여기 들어가 이거 오리털 침낭이라 안
추울 거야.
아름이가 묻는다.
오빠는?
응,
난 그냥 아름이
옆에서 잘게.
오늘 춥지도 않은데
뭐.
한 평 남직한 기도굴이 오늘 따라 유난히 커
보인다.
초가을이라 밤공기는 그리 춥지는
않다.
우리는 촛불과
후레쉬를 끄고 누워 눈을 감았다.
난생처음 여자하고 같은 공간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다.
그것도 딱 붙어서
말이다.
어찌 잠이 오겠는가?
온 신경인 머리부터
발끝까지 곤두서는 느낌이 드는 이 밤이다.
그래도 시중은 참는다.
여기는 기도원이고
자기는 신앙인이란 생각에 말이다.
그러는 새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다.
시중은 잠결에 냉기가 자기의 온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
추위가 새벽 공기를
가늠하게 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시중은 추운지
본능적으로 아름이가 들어있는 침낭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때 아름이가 언제
깨어 있었는지,
아니 잠을 못 이룬
건지 말없이 침낭 속에서 갑자기 팔을 뻗더니 시중의 목을 포옥 감싸 안는다.
순간 시중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하지만 시중은 아름이의 가슴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데 아름이의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엄마의 모유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낀다.
순간 시중은
비몽사몽간에 부드러운 양귀비 향에 취한 것처럼 아늑한 느낌으로 아름이 가슴에 얼굴을 약간 비비며 편안함을 감지하며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시중과 아름은 그렇게 세상에서 보기드믄
순수하고 풋풋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