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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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사람, 도무지 여유가 나질 않는 사람, 몇 박스나 되는 시와 필사 노트를 가지고 있지만 시인이 되지 못한 사람. 읽는 내내 조금 불안아고 절박해졌다. 저 모습이 나의 미래 모습과 바르지 않을까 무서웠고 주인공과 닿아있는 내 마음을 느낄 때마다 먹먹해졌다. 그는 시인이 되었을까, 등단을 했을까, 독립 출판으로 시집을 엮었을까. 열린 결말 앞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닫힌 해피엔딩을 원했다. 닫힌 해피 엔딩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시인이 되길, 글을 계속 쓰기를 바랐다. 

  소설 곳곳에서 문학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 글을 쓰는 사라으로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엿보일 때마다 나의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글을 쓰고 싶거나 쓰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괴로우면서도 좋은 소설이다. 모두가 자신의 정류장에 서 있을 테니까.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데려다 줄 버스를 기다리며 각자의 밤을 보내고 있을테니까. 생각해야 할 것은 여기가 종착지가 아닌 정류장일 뿐이라는 것. 정류장을 언제든 벗어나 다음 정류장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보내는 밤의 모습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이 밤에 흰 노트 앞에서 절망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 묘한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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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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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손으로 독서기록을 쓴 21년 11월 19일과 이 글을 업로드하는 22년 1월 19일, 단 두달 사이에 많은 많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건물 붕괴 사고와 노동자의 추락 사고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는 내내 이 소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선길'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채 일하고 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공사판이다. 그들은 한 도로를 공사하고 있다. 공사 현장은 위험한 것 투성이이고, 안전 수칙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소장이 빠른 공사를 위해 많은 것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인부들은 쉬지 못한 채 일해야 하고 그 역시 소장과 시공 업체들의 압박 때문이다. 주인공격인 선길은 아픈 아이들 두고 회사에서 잘린 가장이다. 처음에 선길은 자신이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현장 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다른 인부들은 그런 선길을 조금씩 따돌린다. 선길은 소장이 지어낸, 있지도 않은 맷돼지 야간 경비 업무를 맡는 등 소외되고 고립되어 간다. 그러던 중 선길의 아들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다. 선길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변화한다.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을 한다. 선길에 대한 반장들과 소장의 평가도 날로 좋아져 선길은 다음 공사에서 다른 팀원들을 이끄는 반장이 될 상황까지 간다

  정초가 다가오면서 소장은 공사에 속도를 내려 하고, 인부들을 압박해가며 휴일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킨다. 지친 인부들은 현장에 몰래몰래 술을 가져와 마시고 점점 술판의 규모는 커진다. 다른 인부들이 모두 술을 마시고 목씨와 현경, 선길만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선길은 안전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현장에서 머리를 부딪혀 즉사한다. 소장은 선길이 술판을 벌이던 주동자이며 성실하지 못한 직원이었다고 그를 불명예스럽게 깎아내린다. 어느새 인부들까지 포섭한 소장은 마지막으로 현경을 설득하려 하지만 선길의 아내를 직접 마주한, 선길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현경의 마음은 자꾸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기울어간다. 현경은 결국 선길이 장비에 설치해둔 카메라의 메모리를 선길의 아내에게 보내고 선길이 데려온 개를 잡아 먹으려는 소장과 인부들에게로 장비를 몰고 돌진한다. 솔직히 마지막은 정말 판타지에 가깝다고 본다. 권선징악적 마무리니까. 하지만 완전히 비현실적이진 않다. 소장은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를 인부들에게 먹이며 생색을 냈고 선길이 죽자마자 그가 데려온 개를 잡았고... 어쨌든 짬을 뒤집어쓰는 결말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현경은 그 개를 잘 치료해줬겠지, 목씨는 앞으로도 현장 일을 하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결국 선길의 아내에게 생각이 닿는다. 선길의 아내는 어떻게 했을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소장의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맴돌았다. 맞는 말인데, 전혀 틀린 말이라서 자꾸 생각이 난다. 죽은 사람은 죽었다.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산 사람이 살자고 죽은 사람을 매도하고 비난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살기 위해 규명하는거고 살기 위해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더 많은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많은 인부들의 죽음 중 하나가 아니라 선길의 죽음이라는, 특정적 사건으로만 불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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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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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이 깊게 남은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 출간된 여러 소설에 코로나19 상황이 반영되는 것을 보며 이제 코로나는 스쳐가는 무언가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더더욱 내가 처해있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내가 어떤 상황 가운데 서 있는지 신문 기사보다 소설이 더 잘 알려줄 때가 있다.

  이 소설집은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인 아포칼립스에서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한 김초엽, 듀나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둘 다 정말 재밌게 읽었고 특히 김초엽 작가님의 <최후의 라이오니>.. 주인공과 라이오니의 연결점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았다. 두 번째 챕터는 전염병 세계였는데..이게 정말 직접적으로 코로나19의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정소연 작가님의 <미정의 상자>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중대본의 8월달 브리핑에서 등장했던 말인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산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에서 영감을 받으신 것 같았다. 미정의 애인 유경이 죽고 난 이후, 시간이 일주일씩 뒤로 돌아가는데 결국 미정은 유경과 사귀기 이전으로 돌아가 유경과의 만남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특별히 감정 묘사가 두드러지지 않는 소설인데도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지만,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모순적인 현실이 더 와닿았다. 내가 미정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인 뉴 노멀. 여기서는 배명훈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가 정말 좋았고 충격적이었고 재밌었다. 발음할 때 침이 튀기는 거센소리와 된소리가 모두 사라진, 22세기의 발음법과 문법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 소설 형식 자체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 형식과 상상력만으로도 이 소설이 좋아질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거센소리가 표현하는 어떤 격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도 재밌었다. 마지막이 모호하게 끝나서 과연 대학원생 주인공이 배우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금기가 된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발음하는 사람이 되었을지가 궁금했다.

  마지막 단편인 <벌레 폭풍>도 좋았다. 여기서의 재난은 질병이 아니라 벌레의 습격이다. 이 재난도 정말 무섭다.. 주인공 포포가 자신의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는 과정들을 담았는데 사랑과 두려움을 모두 느끼는 포포에게 왠지 공감이 되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포포에게 보여주는 주변사람들의 소소한 선의(공항에서의 일이라던가)들이 왠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포포와 무이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포포가 느꼈던 두려움들이 다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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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를 주세요 큐큐퀴어단편선 4
황정은 외 지음 / 큐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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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큐의 책은 늘 믿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다음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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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밖에 없네 큐큐퀴어단편선 3
김지연 외 지음 / 큐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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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을 수 있는 큐큐의 퀴어 단편집! 이번에도 역시나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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