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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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이 깊게 남은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 출간된 여러 소설에 코로나19 상황이 반영되는 것을 보며 이제 코로나는 스쳐가는 무언가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더더욱 내가 처해있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내가 어떤 상황 가운데 서 있는지 신문 기사보다 소설이 더 잘 알려줄 때가 있다.

  이 소설집은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인 아포칼립스에서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한 김초엽, 듀나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둘 다 정말 재밌게 읽었고 특히 김초엽 작가님의 <최후의 라이오니>.. 주인공과 라이오니의 연결점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았다. 두 번째 챕터는 전염병 세계였는데..이게 정말 직접적으로 코로나19의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정소연 작가님의 <미정의 상자>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중대본의 8월달 브리핑에서 등장했던 말인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산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에서 영감을 받으신 것 같았다. 미정의 애인 유경이 죽고 난 이후, 시간이 일주일씩 뒤로 돌아가는데 결국 미정은 유경과 사귀기 이전으로 돌아가 유경과의 만남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특별히 감정 묘사가 두드러지지 않는 소설인데도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지만,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모순적인 현실이 더 와닿았다. 내가 미정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인 뉴 노멀. 여기서는 배명훈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가 정말 좋았고 충격적이었고 재밌었다. 발음할 때 침이 튀기는 거센소리와 된소리가 모두 사라진, 22세기의 발음법과 문법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 소설 형식 자체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 형식과 상상력만으로도 이 소설이 좋아질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거센소리가 표현하는 어떤 격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도 재밌었다. 마지막이 모호하게 끝나서 과연 대학원생 주인공이 배우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금기가 된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발음하는 사람이 되었을지가 궁금했다.

  마지막 단편인 <벌레 폭풍>도 좋았다. 여기서의 재난은 질병이 아니라 벌레의 습격이다. 이 재난도 정말 무섭다.. 주인공 포포가 자신의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는 과정들을 담았는데 사랑과 두려움을 모두 느끼는 포포에게 왠지 공감이 되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포포에게 보여주는 주변사람들의 소소한 선의(공항에서의 일이라던가)들이 왠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포포와 무이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포포가 느꼈던 두려움들이 다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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