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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해도 열리는 요한계시록 - 극동방송 세미나 교재
김형종 지음 / 솔로몬 / 2010년 8월
평점 :
오랫동안 요한계시록의 큰 그림이 들어오기를 사모해왔다. 그 큰 그림을 여는데 도움이 되는 책 가운데 김형종의 <읽기만 해도 열리는 요한계시록>이다. 책과 함께 성경공부 교재가 있다. 놀랍게도 성경공부 교재, 즉 질문과 답과 간단한 설명만 보아도 요한계시록을 쉽게 읽을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로 기록되었다는 편견이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
요한계시록은 시간 청사진(timetable)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장에 사탄을 무저갱에 가두기 위해서 '열쇠' '쇠사슬'등이 필요한데, 사탄은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이것들은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구원사역으로 사탄을 완전히 결박했다는 뜻이지, 문자적인 뜻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는 것의 예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심판은 1) 계시록 11:15절에 일곱번째 나팔이 불고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으로 재림과 심판이 끝이 났다. 계시록은 점층과 심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을 자세히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 영적인 의미와 사탄, 짐승,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을 상세히 추가로 설명하는 것이다. 2) 계시록 16장에서 일곱번째 대접을 쏟으므로 바벨론은 멸망했다. 그런데도 17장은 바벨론의 멸망 예고,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다루는 것은 16장에 대한 최후 심판을 더 상세하게 독자들에게 17, 18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준언한 심판과 교회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계시록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점층과 상세 설명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두 번째 예는 7인봉 - 7나팔 - 7대접 심판이다. 이것은 각각의 심판이 아니라, 인봉은 심판에 대한 예고이며, 나팔은 심판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7째 나팔을 불 때 이미 주님의 재림과 심판은 이루어진 것이다. 7대접 심판은 심판이 실행된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로 해석하면 문제가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20장 '천년왕국'의 문제이다. 계시록 20장 '천년왕국'은 사이비 종말론과 이단의 온상이었으며, 2,000년 기독교 역사상 교단과 교회의 분열의 온상이었다. 김형종은 '천년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전천년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본문의 천년왕국은 '지상'이 아니라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천년왕국'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지상의 천년왕국'을 염두한 잘못된 개념이라고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계시록 20장이 지상의 천년왕국이 아니라 '천상의 천년왕국'이라는 것이 김형종이 제시하는 20장에 대한 해석의 열쇠이다. 계시록은 시간 순서로 해석하면 문제가 생긴다. 18장 바벨론 멸망, 19장 주님의 재림, 20장 천년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는 시간적인 해석(전천년설의 입장)으로 본다면, 1) 주님이 재림하셨는데 어떻게 마귀가 역사하는가?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그토록 무력한 것인가? 2)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미 18장-19장에 악의 세력이 멸망하고, 새들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다 먹는 심판을 했는데, 어떻게 '곡과 마곡의 전쟁'(겔38장을 인용)이 생길 수 있는가?
계20장에 대한 바른 해석은 시간 순서가 아니라, 순교자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영광스러운 소망을 주는 '중간계시'로 보는 것이 옳다. 최후의 원수인 사망과 음부, 그리고 용(사탄)의 최후의 발악과 멸망을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형종의 해석 중에서 단 하나 아직도 충분히 받아들이고 설득되지 않는 부분은 계시록 7장에 나타난 144,000과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해석이다. 내 해석은 귀로 들을 때는(7:4) 구원받은 사람이 144,000명이라고 선언하고, 눈으로 보니(7:9),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는데, 동일하게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김형종은 144,000명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십사만 사천이며,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이방인 중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숫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44,000명은 유대인,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구원받은 이방인'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
아무튼 간결하고 쉽게 요한계시록의 세계를 열어준 김형종 박사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