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의 잔 - 소설 본회퍼
메리 글래즈너 지음, 권영진 옮김 / 홍성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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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읽기가 꺼려지는가?

627쪽의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인쇄활자가 읽기 편하고 글자수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지명과 인명은 왜 이리 낯선지, 하지만 독일어와 불어의 기초는 아니까 한번 도전해봐야겠다고 스스로 격려했다.  소설 본회퍼를 읽기가 더 꺼려지는 이유는? 예언자요, 수난자요, 신학자요, 개혁자인 본 회퍼를 만나는 것이 나와는 동떨어진 주제요, 또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란 인상이 든다. 나치 죽음의 수용소, 연합군이 수용소를 점령하기 불과 11일 전에 당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그의 고난과 사형! 민족이냐 신앙이냐를 선택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선택의 문제 등 이 치열한 문제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6년 본 회퍼를 만난 이후에 난 그를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멀리했다. <윤리학> <옥중서신> <나를 따르라: 제자도> <신자의 공동생활> 그의 책이 다 있지만, 밋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진노의 잔> 이 무시무시한 책이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본 회퍼의 생애와 삶을 통하여 타오르는 진리의 불이 내 영혼에 붙은 것이다.


왜 필연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했는가?

본 회퍼는 그의 신학과 신앙을 삶으로 그대로 살아낸 유일무이한 사람, 독보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는 성서를 대할 때 진지했다. 단순히 학문적인 유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간디의 무저항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간디는 예수의 산상수훈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것을 그대로 살아내려고 했다. 본 회퍼는 당대의 독일의 신학자들과는 달랐다. 성서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고, 그것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았다. 감옥에서 그는 말씀기도를 했다. 시편기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과 부활, 승천과 재림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다. "나를 따르라!" 본 회퍼의 제자도는 값싼 은혜를 지적하고, 은혜의 놀라운 가치를 독자에게 회복시켜준다.


놀라워라!

감옥생활에서 그는 끝까지 저술활동과 독서를 했다. 물론 자유롭지 않았지만, 비밀리에 옥중서신을 반출했다. 약혼녀 마리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제자이자 친구 베트케목사에게 보낸 옥중서신 등이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들고 있었다는 플루타르크 전기집, 괴테의 책들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 10년간 연구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상세하고 상상력있게 쓴 <진노의 잔>을 읽으면서, 본 회퍼의 저술들이 새롭게 와 닿았다. 1996년에 구입한 본 회퍼가 쓴 "Love Letter 모음집" 도 이제는 읽을 수 있겠다.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아니, 본 회퍼는 젊은 나이에 어떻게 독일정계와 교계, 유럽의 교계, 미국에까지도 알려졌을까? 그의 예언자적 통찰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남들이 모두 히틀러가 독일의 자존심을 살려준다고 그를 응원하고 심지어 교회와 신학자와 하이데거 등도 다 히틀러를 찬양하는데 어떻게 본 회퍼는 히틀러가 독일민족에게 큰 오점을 남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그를 반대했을까? 놀랍다. 히틀러가 총독이 되었을 때, 본 회퍼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할 때 방송이 중단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본 회퍼는 저항운동을 위해서 영국의 벨주교, 스위스 바젤의 칼 바르트, 스웨덴 등지를 다녔다. 독일로부터 유대인 구출작전을 펼쳤다. 게슈타포에 반대하는 독일 정보국의 최고 책임자의 보호와 지원아래 저항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게슈타포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고백교회를 섬겼으며, 신학교를 세워 가르쳤다. 계속적인 폐쇄와 방해공작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용기있게 진리의 길을 걸어갔다.


치열함: 윤리적 성찰

그는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그의 용기는 대단하다. 히틀러는 마치 미친 운전사로 많은 사람을 치어죽이고 있다. 단지 다친 사람들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미친 운전사를 제거해야만 한다. '미친 운전사를 제거하는 것, 즉 살인이 정당한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독일은 히틀러의 마술에 빠져들었고, 고위공직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과 많은 국민들이 히틀러의 편을 들때에 어떻게 끝까지 "아니다!"라고 부드럽고 단호할 뿐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을까? 예수님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성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장사치들의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상을 뒤엎고 비둘기와 짐승 파는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던가! 본 회퍼는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징집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조국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게슈타포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저항운동과 교회 목사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의 부모를 비롯, 그의 형제 자매는 많은 고난을 받았고, 절반이상의 식구들이 처형을 당했다. 


이토록 끔찍한데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사야 53장의 그의 설교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외침처럼,

"고난에 들어간 후에 영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 "나의 이 마지막이 나에게는 삶의  시작이라고 전해주시오."

1945년 4월 9일의 차가운 날씨속에서 플로센뷔르크 수용소, 세 개의 처형대 위의 밧줄 올가미에 정보국 카나리스제독, 오스터장군, 본 회퍼목사가 나란히 사형을 당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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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아빠가 키워라 - KBS 이충헌 기자의 '아빠가 이끄는 아들 성장의 비밀'
이충헌 지음 / 글담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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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를 여자아이와 똑같은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라! 책 제목이 전부이니 특별히 사 볼 필요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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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폐지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9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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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동이나 깨달음보다 나에게 질문을 남겼다. '한국사람가운데 누가 이런 책을 읽는가?'하는 것이다. 먼저 말해두자면, 평점은 이 책의 평점이 아니라, 나의 이해력에 대한 평가 곧 별 하나이다. 먼저 제목이 도무지 염세적인 인생을 준다. 책을 읽고서야 알았지만, 기독교 변증가인 루이스가 주창하는 것이 '인간폐지'라는 제목과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다. 또 어떤 동기에서 책을 썼든지, 그 동기란 내가 공감하는 그런 부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 전문가가 "성경책 외에 한 권을 추천하라면 '인간폐지'를 추천하겠다"고 했다며 이 책을 수작으로 꼽았다는데, 보통의 한국사람으로서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자. 당대 영국의 두 영문교육자의 책에 우려할 만한 점을 발견하고 루이스는 교육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곧 영어를 교육하기 위한 그 책 내용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에 기초하고 있기에, 영어교육 외에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사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미덕은 '관용'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관용의 치명적인 결함은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즉 유일한 진리에 대하여 배타적인 것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관용>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인간의 잠재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초월적인 신이나 절대적인 도덕관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루이스는 지적하기를 인간의 이성은 상대적인 것이지, 그 자체가 절대적이 아니며, 비교의 대상이지,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인간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폐지'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인간의 진보를 위해 결정한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변증한다.


한 마디로 모순이다. '신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면서도 '배반'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겪고 있다. 결국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 추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금과 총과 여자들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결국 '인간폐지'를 위해 달려가고 있음을 논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는, 이 책이 쓰여졌을 당시 독일의 나찌즘이나 일본제국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는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나찌나 일본의 제국적 침략만행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라고 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결론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런 배경으로 읽는다면, <인간폐지>는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해줄 것이다. 둘째는, 보편적인 진리를 동양의 개념인 '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면서도, 그 방법면에서는 동양사상인 '도'를 사용하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용어, 즉 예수, 하나님, 십자가 등의 용어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변증서이다. 논리학 교본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한국 사람가운데 이런 논리학이나 변증서를 누가 읽겠는가? 그것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읽는 사람을 난 진심으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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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회복하라 - 하나님의 백성다운
이수영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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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교회 이수영목사의 설교집이다. 저자의 설교론은 죽목할 만하다. 오늘날 재미있는 설교를 회중들이 원하고 설교자들이 이를 따라가지만, 저자의 소신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설교는 재미있어야 한다기보다는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한다."라고 믿는다. 소위 말하는 개혁주의 목사의 설교론이다. 예화가 없이 본문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다.

 

본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섬세하고 치열한 영적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그 통찰력에 놀라며 또한 본문에 담긴 깊은 뜻에 기뻐하게 된다.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모든 장과 절을 다 설교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여호수아에서 11편의 정제된 설교를, 사사기에 6편의 설교를 실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사사기에 흐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수영목사의 설교는 20여분이다. 길지 않고 간결하며, 사변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개인적이지 않고 한국교회와 사회를 큰 안목에서 바라보는 통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설교집은 처음에는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곧 그의 간결함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미하게 되고 영혼의 해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재미없게 설교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세세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기에 감동이 있다. 또한 설교자의 자세가 한 편의 설교에 기쁨과 열정과 확신을 담고 있기에 더욱 독자들은 행복하다. 그는 이러한 설교가 가능한 것은 영적 입맛이 오염되지 않은 새문안교회의 좋은 회중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좋은 목회자는 좋은 청중을 만들고, 좋은 청중은 좋은 설교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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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ssage of Acts (Paperback, Reprint) - The Spirit, the Church, and the World
Stott, John R. W. / Intervarsity Pr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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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존 스토트의 사도행전주석을 읽으면 그 매력에 빠져든다. 문장은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본문의 문맥, 배경을 드러내주며, 핵심적인 메시지를 정확히 간파하게 해준다. 마치 사극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고, 역사적이 고증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주석책이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1. 존 스토트는 탁월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간결하고 분명하다. 

2. 존 스토트는 복음적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을 가지고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상황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는 그의 복음적 사관때문에 가능하리라.

3. 복음적일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역사적인 고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4. 분석적이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22-26장에서 사도바울이 재판을 받은 것이 5번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하나 하나 기록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분석적인가를 알 수 있다. 다섯번의 재판은 군중들 앞에서, 산헤드린공회앞에서, 벨릭스총독앞에서, 베스도총독앞에서, 아그립바왕 앞에서. 연도, 지명, 인명, 사건의 진행상황 등이 아주 명확하다. 또 하나 예를 들면, 헤롯왕이 여럿이어서 헷갈리는데, 그것도 잘 정리하고 있다. 1. 헤롯대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아기 2세 미만을 살해하고자 명령함 자, 2. 헤롯안티바스는 세례요한을 목벤자. 부도덕한 자. 3. 헤롯 아그립바1세는 사도 야고보를 목벤자. 야고보는 12제자중 최초로 순교한 자. 4. 헤롯 아그립바2세, 사도바울을 심문한 자. 버니게가 누이이며, 벨릭스 총독의 부인 드루실라는 총독의 세번째부인이자, 아그립바왕의 자매인 것으로 드러난다. 벨릭스 총독은 자유한 노예출신으로 유대의 반란을 과잉진압한 협의를 받고 있다.

5. 결론이 아주 명료하다. 여러 주석의 단계를 거쳐서,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분명한 것이 장점이다. 아주 매료될만하다. 너무도 놀라운 책이다. 사도행전의 다른 주석들도 구입하고 싶다. 특히 그의 영어 그대로를 접하고 싶다. 번역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만의 필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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