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빠가 키워라 - KBS 이충헌 기자의 '아빠가 이끄는 아들 성장의 비밀'
이충헌 지음 / 글담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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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를 여자아이와 똑같은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라! 책 제목이 전부이니 특별히 사 볼 필요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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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폐지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9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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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동이나 깨달음보다 나에게 질문을 남겼다. '한국사람가운데 누가 이런 책을 읽는가?'하는 것이다. 먼저 말해두자면, 평점은 이 책의 평점이 아니라, 나의 이해력에 대한 평가 곧 별 하나이다. 먼저 제목이 도무지 염세적인 인생을 준다. 책을 읽고서야 알았지만, 기독교 변증가인 루이스가 주창하는 것이 '인간폐지'라는 제목과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다. 또 어떤 동기에서 책을 썼든지, 그 동기란 내가 공감하는 그런 부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 전문가가 "성경책 외에 한 권을 추천하라면 '인간폐지'를 추천하겠다"고 했다며 이 책을 수작으로 꼽았다는데, 보통의 한국사람으로서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자. 당대 영국의 두 영문교육자의 책에 우려할 만한 점을 발견하고 루이스는 교육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곧 영어를 교육하기 위한 그 책 내용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에 기초하고 있기에, 영어교육 외에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사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미덕은 '관용'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관용의 치명적인 결함은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즉 유일한 진리에 대하여 배타적인 것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관용>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인간의 잠재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초월적인 신이나 절대적인 도덕관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루이스는 지적하기를 인간의 이성은 상대적인 것이지, 그 자체가 절대적이 아니며, 비교의 대상이지,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인간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폐지'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인간의 진보를 위해 결정한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변증한다.


한 마디로 모순이다. '신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면서도 '배반'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겪고 있다. 결국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 추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금과 총과 여자들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결국 '인간폐지'를 위해 달려가고 있음을 논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는, 이 책이 쓰여졌을 당시 독일의 나찌즘이나 일본제국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는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나찌나 일본의 제국적 침략만행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라고 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결론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런 배경으로 읽는다면, <인간폐지>는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해줄 것이다. 둘째는, 보편적인 진리를 동양의 개념인 '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면서도, 그 방법면에서는 동양사상인 '도'를 사용하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용어, 즉 예수, 하나님, 십자가 등의 용어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변증서이다. 논리학 교본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한국 사람가운데 이런 논리학이나 변증서를 누가 읽겠는가? 그것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읽는 사람을 난 진심으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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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회복하라 - 하나님의 백성다운
이수영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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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교회 이수영목사의 설교집이다. 저자의 설교론은 죽목할 만하다. 오늘날 재미있는 설교를 회중들이 원하고 설교자들이 이를 따라가지만, 저자의 소신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설교는 재미있어야 한다기보다는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한다."라고 믿는다. 소위 말하는 개혁주의 목사의 설교론이다. 예화가 없이 본문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다.

 

본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섬세하고 치열한 영적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그 통찰력에 놀라며 또한 본문에 담긴 깊은 뜻에 기뻐하게 된다.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모든 장과 절을 다 설교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여호수아에서 11편의 정제된 설교를, 사사기에 6편의 설교를 실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사사기에 흐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수영목사의 설교는 20여분이다. 길지 않고 간결하며, 사변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개인적이지 않고 한국교회와 사회를 큰 안목에서 바라보는 통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설교집은 처음에는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곧 그의 간결함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미하게 되고 영혼의 해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재미없게 설교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세세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기에 감동이 있다. 또한 설교자의 자세가 한 편의 설교에 기쁨과 열정과 확신을 담고 있기에 더욱 독자들은 행복하다. 그는 이러한 설교가 가능한 것은 영적 입맛이 오염되지 않은 새문안교회의 좋은 회중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좋은 목회자는 좋은 청중을 만들고, 좋은 청중은 좋은 설교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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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ssage of Acts (Paperback, Reprint) - The Spirit, the Church, and the World
Stott, John R. W. / Intervarsity Pr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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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존 스토트의 사도행전주석을 읽으면 그 매력에 빠져든다. 문장은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본문의 문맥, 배경을 드러내주며, 핵심적인 메시지를 정확히 간파하게 해준다. 마치 사극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고, 역사적이 고증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주석책이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1. 존 스토트는 탁월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간결하고 분명하다. 

2. 존 스토트는 복음적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을 가지고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상황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는 그의 복음적 사관때문에 가능하리라.

3. 복음적일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역사적인 고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4. 분석적이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22-26장에서 사도바울이 재판을 받은 것이 5번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하나 하나 기록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분석적인가를 알 수 있다. 다섯번의 재판은 군중들 앞에서, 산헤드린공회앞에서, 벨릭스총독앞에서, 베스도총독앞에서, 아그립바왕 앞에서. 연도, 지명, 인명, 사건의 진행상황 등이 아주 명확하다. 또 하나 예를 들면, 헤롯왕이 여럿이어서 헷갈리는데, 그것도 잘 정리하고 있다. 1. 헤롯대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아기 2세 미만을 살해하고자 명령함 자, 2. 헤롯안티바스는 세례요한을 목벤자. 부도덕한 자. 3. 헤롯 아그립바1세는 사도 야고보를 목벤자. 야고보는 12제자중 최초로 순교한 자. 4. 헤롯 아그립바2세, 사도바울을 심문한 자. 버니게가 누이이며, 벨릭스 총독의 부인 드루실라는 총독의 세번째부인이자, 아그립바왕의 자매인 것으로 드러난다. 벨릭스 총독은 자유한 노예출신으로 유대의 반란을 과잉진압한 협의를 받고 있다.

5. 결론이 아주 명료하다. 여러 주석의 단계를 거쳐서,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분명한 것이 장점이다. 아주 매료될만하다. 너무도 놀라운 책이다. 사도행전의 다른 주석들도 구입하고 싶다. 특히 그의 영어 그대로를 접하고 싶다. 번역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만의 필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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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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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지성, 이지성'하며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유행을 몰고오는 책, 소위 베스트셀러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뒤늦게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지성의 인문독서에 대하여 흠을 잡고 싶은 요량으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아주 당당하고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해 나가는 저자의 자신감과 솔직함에 '대단하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완전한 신뢰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놀라움과 충격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다독-필사-사색의 철저한 독서법때문이다. 한편 질문도 생겼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토록 많은 책을 읽었을까? "독서하다 죽어라!" 꼭 이렇게 책을 읽어야 하나? 논어를 읽기 위해서 사전 책들을 꼭 그렇게 많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맹목적으로(?) 서양철학과 인문고전에 도전할 이유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으로 와닿은 부분은 그의 인문고전 독서를 하게 된 동기,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느꼈던 좌절감, 인문고전을 포기하지 않고 돌파하게 된 계기 등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았다.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한 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좌절감! 그 좌절감이 인문고전 독서의 시작이 아닐까. 수많은 인류의 천재들은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존재인지를 절감하고 독서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세종대왕은 '백독백습', 백번 읽고 백번 쓰는 방법으로 고전을 습득했다. 간디는 벤담의 공리주의 책을 친구가 읽어주었을 때, "하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네."라며 자신의 이해력의 한계를 고백했던 일화는 독자에게 위안을 준다. 그렇다. 인문고전은 어렵다. 하지만 그 천재의 세계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돌머리를 깨부스는 석공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지성의 고백에 공감한다.


그리고 돌머리를 깨부수면서 인문고전을 읽는 노력이 결코 헛된 노력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길이라고 확신있게 말하는 이지성의 말에 많은 위안을 느꼈다. 왜냐하면, 인문고전을 하면 가난하다, 인문고전읽기는 비현실적이고 비실용적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부수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 6장에서 <인문고전을 독파하는 7가지 비결>을 그의 체험을 요약하면서 제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 돈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를 소위 '인문경영'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3장, 4장에서 최초의 경영학자는 철학자(인문고전 전문가)이다. 현대 경영학의 시조들, 현대 투자의 귀재들은 인문고전의 전문가들이다. 결국 돈의 흐름을 주도하고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인문고전의 기초를 다진 사람들이다. 인문고전의 실력을 다지면,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주장을 펼친다. 믿기지 않는다. 눈이 확 트인다! 진정 인문학이 그렇게 실용적이었던가? 진정 인문학을 현실에 접목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이지성의 인문학 이해는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난하고 강직한 선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문학에 대한 나의 이해는 한낱 편견이었으면 차라리 좋겠다.


인문학교육은 또한 참 교육의 첩경이라고 주장한다. 가를 비테의 <인문학교육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카를비테식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봐야겠다. 이지성의 이 책은 여러 책들의 목록을 소개하는 장점이 있다. 독서리듬을 찾고, 독서혁명을 경험하려면 이 책이 좋은 기폭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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