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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폐지 ㅣ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9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감동이나 깨달음보다 나에게 질문을 남겼다. '한국사람가운데 누가 이런 책을 읽는가?'하는 것이다. 먼저 말해두자면, 평점은 이 책의 평점이 아니라, 나의 이해력에 대한 평가 곧 별 하나이다. 먼저 제목이 도무지 염세적인 인생을 준다. 책을 읽고서야 알았지만, 기독교 변증가인 루이스가 주창하는 것이 '인간폐지'라는 제목과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다. 또 어떤 동기에서 책을 썼든지, 그 동기란 내가 공감하는 그런 부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 전문가가 "성경책 외에 한 권을 추천하라면 '인간폐지'를 추천하겠다"고 했다며 이 책을 수작으로 꼽았다는데, 보통의 한국사람으로서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자. 당대 영국의 두 영문교육자의 책에 우려할 만한 점을 발견하고 루이스는 교육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곧 영어를 교육하기 위한 그 책 내용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에 기초하고 있기에, 영어교육 외에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사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미덕은 '관용'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관용의 치명적인 결함은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즉 유일한 진리에 대하여 배타적인 것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관용>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인간의 잠재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초월적인 신이나 절대적인 도덕관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루이스는 지적하기를 인간의 이성은 상대적인 것이지, 그 자체가 절대적이 아니며, 비교의 대상이지,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인간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폐지'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인간의 진보를 위해 결정한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변증한다.
한 마디로 모순이다. '신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면서도 '배반'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겪고 있다. 결국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 추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금과 총과 여자들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결국 '인간폐지'를 위해 달려가고 있음을 논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는, 이 책이 쓰여졌을 당시 독일의 나찌즘이나 일본제국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는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나찌나 일본의 제국적 침략만행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라고 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결론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런 배경으로 읽는다면, <인간폐지>는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해줄 것이다. 둘째는, 보편적인 진리를 동양의 개념인 '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면서도, 그 방법면에서는 동양사상인 '도'를 사용하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용어, 즉 예수, 하나님, 십자가 등의 용어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변증서이다. 논리학 교본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한국 사람가운데 이런 논리학이나 변증서를 누가 읽겠는가? 그것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읽는 사람을 난 진심으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