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작품은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과 청년시절에 읽어야 제 맛이다. 그러나 그런 여건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고자 하는 개의 심정으로, 문학서적을 손에 잡고는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나에게도 아직 감수성이 실아 있음을 느꼈다. 어쩜, <노인과 바다> 이 책은 지금 더 내게 풍성한 의미를 준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으로(1952년), 이 작품으로 퓨리쳐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등장인물은 노인 산티아고, 소년 마놀린, 그리고 바다와 물고기들과 새들 정도이다. 어쩜,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와 단순한 등장인물로 큰 상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에는 무슨 특별한 것이 있단 말인가. 그저 짧다는 이유로, 유명하다는 이유로, 부담없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고 말았다. 문학의 목적은 카타르시스이다. 내 마음에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자각이 일어나고, 내 실존이 보였고,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노인은 한 물 간 어부가 되었다. 왕년엔 대단했다. 그러나 지금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다. 이것은 한 때 유명했으나 이제는 글을 쓰는 영감이 떨어져서 퇴물이 되어가는 헤밍웨이 자신의 상황이었으리라. 노인은 '큰 물고기'를 잡고야 말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바다에 나간다. 소년 마놀린는 이 노인을 '최고의 어부'라고 존경하고 따른다. 노인은 겸양하며 훌륭한 어부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년은 분명히 말한다. "최고의 어부는 할아버지예요." "오직 당신 밖에 없어요." (There is only you.) 와~ 이런 말을 해주는 그 누군가가 우리는 필요하다.

 

노인은 홀로 바다에 나갔다. 어떤 이는 바다를 경쟁자, 적대자(스페인어: el mar)로 보지만, 노인은 바다를 애인(스페인어: la mar)으로 본다. 바다에서 나온 모든 것은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바다는 인생을, 우리의 직업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이 책은 더욱 흥미로워졌다. 홀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노인은 홀로 대화하고, 군함새와 대화하고, 바다와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바다 색깔, 노인의 내면의 심정 등이 재미있다.

 

마침내 큰 물고기를 잡았다! 노인은 3일간이나 이 큰 물고기와 싸움을 한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상황, 순간 순간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면서 3일간 사투를 벌인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다. 큰 물고기와 대화를 한다. "너를 존중한다. 너를 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너를 잡아야 한다." 이 큰 물고기는 작가에게는 글쓰기 소재나 파토스일 것이고, 사업가에게는 대박을 말할 것이고, 개인의 한 인생에서 위대한 업적을 말할 것이다. 그런 '큰 물고기'를 만나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설령 큰 물고기가 걸렸다고 해도, 그 큰 물고기와 씨름해서 낚아 올리는 것은 대단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때로는 노인이 되기도하고, 때로는 큰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이입은 과정은 현재의 고단한 삶의 긴장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한다.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노인은 마음을 지키고, 생선회를 먹으면서 몸의 건강을 유지하고, 낚시 줄을 붙잡느라고 쥐가 나고 피가 나는 몸을 잘 추스리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마침내, 큰 물고기를 잡았다. 큰 물고기는 고깃배보다 더 크다. 18피트(약 6미터). 그렇다. 인간이 이루는 업적은 참으로 대단하다. 자기 보다 큰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것과 같다. 인간은 위대하다. 노인은 상상도 못한 대어에 희열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이제 쿠바의 하바나 항구로 돌아가야 한다. 인생의 정점이 있으면 내려놀 때가 있다. 큰 물고기를 배에 묶고 가는데 상어들이 피냄새를 맡고 계속 공격해온다. 공격해오는 상어들과 싸움을 또 벌인다. 이제는 잡은 큰 물고기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다. 항구에 돌아왔을 때는 큰 물고기의 머리와 꼬리 그리고 뼈밖에 남지 않았다. 허무하게 큰 물고기를 보존해서 오지 못했다. 그저 이 노인의 영웅적인 이야기만 막연하게 회자될 뿐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재미있던 부분은 바다를 대하는 노인의 태도(인생과 자기 일을 대하는 개인의 자세), 그리고 노인의 독백들, 큰 물고기와 노인의 팽팽한 긴장관계 등이다. 정말 현실은 큰 물고기를 잡은 노인처럼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큰 물고기에 끌려가는 것인지, 큰 물고기를 잡고 가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또 큰 물고기를 포기할 수도 없고, 큰 물고기를 잘 지켜서 항구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항구까지 도달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에게 큰 물고기는 무엇일까? 이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결단력, 판단력, 기다림의 인내, 체력, 정신력, 노련한 기술, 지치지 않는 불굴의 용기 등이 필요하리라. 나에게 있어서 그 큰 물고기는 생명, 소명,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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