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전율 - 코펜하겐 1843년 쇠얀 키에르케고어 시리즈 1
쇠얀 키르케고르 지음, 임춘갑 옮김 / 치우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빌립보서 2장 13절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따라서 '공포와 전율'보다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믿음'을 주제로 한다. 믿음의 기사(the knight of faith)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룬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조명하고 있다.

《공포와 전율》은 《반복》과 쌍둥이 작품이다. 1843년 같은 해에 출판되었고, 키르케고르가 레기나와 파혼(1841년 11월)한 이후 '실연'을 모티브로 하여 쓴 책이다. 키르케고르는 파혼이후에 베를린으로 가서 쉘링의 강의를 듣는다. 독일에서 《반복》을 완성했고, 코펜하겐에 돌아와서 《공포와 전율》을 완성했다. 《반복》은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체험의 직접적인 소산이고, 《공포와 전율》은 그것을 청산하고 승화하기 위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불합리와 신앙

신앙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이 있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불합리하다.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순종한다면, 그것은 살인인가 희생인가?

아브라함의 사건과 비극적 영웅을 비교하기

그리스 신화에서 아가멤논은 여신의 노여움을 달래고 항해하는 바다를 잠잠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이것은 비극적이지만 당시에 영웅으로 칭송받는 일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입다 역시 승리의 제물로 신에게 딸을 바치겠다고 공언하였다.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이는 당시 사회에서 영웅으로 정당화를 받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는 일은,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아무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를 영웅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의 문제이다.

신앙은 '윤리의 목적론적 중지'이다.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가, 윤리적 차원보다 더 높은 관계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이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이삭을 통하여 복을 주시겠다,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비록 자신이 이삭을 바친다해도(죽인다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마지막 시험, 그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일이었다.

신앙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사건은, 신앙이 단지 어떤 지식을 축적하거나, 어떤 교리를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신앙은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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