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평점 :
읽으면서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전직 기자라고 하십니다. 행복한 책 읽기에 가능했던 것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누구나 경험했을 맛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리움을 맛보여주었고 이제는 나이들어 간을 못 맞추시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가 깊은 공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어떤이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예전부터 먹어온 추억의 맛을 회상하게 해주고 흔히 먹을 수 있는 일상의 맛을 더 음미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자주 접할 수 없는 맛에 대한 환상을 심어줍니다.
냉면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젓가락에 부러지도록 말아서 먹는 음식이라고 어머니가 누누이 강조한 까닭이었다. 냉면이 목에 걸려 눈물이 날 지경이어야 진짜 냉면 맛을 안다고, 나의 요상한 냉면론은 거기서 출발한 셈이다.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홀에서 숨이 막히도록 냉면을 우겨넣고 가게를 나서면 잠깐 아랫도리가 휘청거렸다. 농익은 여름이 냉면집이 있는 아동복 상가의 좁은 골목에 가득 차 있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은 달라지지만 날카로운 평론가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기막힌 신의 한수에 라따뚜이가 엔딩을 장식하는 음식으로 선정된 이유는 그에게 어릴적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의 기억과 추억의 향수에 걷잡을수 없이 순간적으로 함몰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평범한 요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추억과 만나면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한 요리가 아니라 특별한 메뉴가 되는 것입니다.
어렸던 시절,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볼에 버짐을 달고 사는 형편까지는 아니었지만, 늘 단백질은 부족했다. 시장 닭전은 몇 집이 죽 늘어서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더 오래된, 고목의 밑둥치로 만든 도마를 쓰고 있는지, 누가 더 닭장에 닭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 경쟁했다. 최신식 닭 털 뽑는 기계가 털털거리며 깃털을 말끔하게 뽑는 시연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아버지는 약간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보았는데, 아마도 당신 권위의 종식을 예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아버지란 존재는, 닭의 목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틀고 이렇게 외치면서 권위를 세웠던 것이기 때문이다. “여보. 물을 끓여요. 닭은 내가 잡을 테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함께 했던 음식에 관한 기억과 추억이 떠올라 책의 내용과 나의 경험이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글도 글이지만 행간 사이에 가득찬 이야기 더욱 이 책을 빛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저자이고 누가 독자인지 모르게 몰입하면서 허기를 느끼게 되는 것은 지난날의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짐작해봅니다.
‘웨이터는 우묵한 접시에 담긴 크림수프와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린 양배추 샐러드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고기가 나오면 같이 먹기 위해 수프를 야금야금 핥듯이 조금만 먹고 샐러드도 아껴두었다. 십여 분 후 웨이터가 오더니 냉큼 그 수프와 샐러드를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눈앞에서 그 놀랍고 달콤한 수프와 녹진한 샐러드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 코스 요리의 에티켓을 우리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친구도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던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