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정민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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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리뷰어스 클럽에 의해 하빌리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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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 소노코 저자(이정민 옮김)의 <밤하늘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 상처를 안고도 다정하게 나아가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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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고기는 말이야, 나랑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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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 소노코 작가님의 <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는 단순히 상처를 극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넘어,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가만히 되짚어보게 만드는 따스한 연작소설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 시리즈로 수많은 이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넸던 작가님의 시작점답게, 다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면서도 결국 하나의 커다란 치유의 바다로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 시리즈 때문에 마치다 소노코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으로 또 작가님의 소설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들려주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쉽게 아물지 않는 그늘을 품고 있습니다. 첫사랑의 기억 앞에 발걸음이 멈춘 사람, 세상의 편견 속에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아이, 소중한 이를 잃고 낯선 마을을 서성이거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방황하는 이들, 반복되는 상실과 아픔 속에서도 기어이 삶을 다시 선택하는 사람까지...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이웃들이기에,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두려움은 더욱 현실적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물고기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삶을 비추는 작가의 섬세하고도 다정한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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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좁은 수조에 적응해야 하는 '아프리칸 램프아이', 새끼를 입속에 품어 끝까지 지켜내는 '초콜릿구라미', 환경에 맞춰 성별을 바꾸며 살아가는 '리본장어', 조금 다르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스위미'. 이 작은 생명들의 모습은 인물들의 삶과 절묘하게 겹쳐지며,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모든 존재의 숭고함을 마음 깊이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을 안은 채, 조금씩 앞으로...



"우리는 이 넓은 세상을 헤엄쳐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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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고기는 이름이 뭐야? 예쁘다."

하루코가 수조를 어루만졌다.

"초콜릿구라미라는 열대어야."

"오, 맛있을 것 같은 이름이네."

"밀크초콜릿 같은 색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걸. 이 물고기는 말이야, 나랑 닮았어."

하루코의 가는 손가락이 수조의 유리를 더듬었다. 얼결에 봤더니 손등에 엷은 멍이 퍼져 있었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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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코 씨를 다시 만난 건 아내의 장례식이 끝난 밤이었지. 여기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말이야."

"......눈이 펑펑 오는 그런 날 왜 바다에?"

내 질문에 그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내를 바다로 만들기 위해"라고 말했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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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 한 문장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머뭅니다. 세상은 언제나 안전하고 안락한 수조만을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거친 물살에 휩쓸리고, 숨이 막힐 듯 막막한 현실과 마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인상에 강하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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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속삭여 줍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품은 채로 조금씩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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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미혼모와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 시설 출신의 상처, 치매, 외도, 가정폭력 등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비극을 자극적으로 그려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어두운 순간, 누군가가 건넨 작은 온기와 다정한 손길이 어떻게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지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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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준 어른의 사랑은 또 다른 누군가를 보듬는 힘이 되고,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또 다른 아픈 이의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이 소설이 말하는 치유는 거창한 기적이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진심이 또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가닿는 다정한 이어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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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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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이야기는 독립된 듯 보이지만, 서로의 삶을 조용히 이어 붙이며 마침내 하나의 푸른 바다를 완성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엔 깨닫게 됩니다. '아,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 헤엄치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수조와 강을 지나며 살아가지만, 그 길목에서 마주친 다정한 손길 덕분에 다시 숨을 고르고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는 아픈 상처를 억지로 지워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처를 안고서도 기꺼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따스한 응원가입니다. 삶은 여전히 거칠고 세상은 그리 쉽게 다정해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멈추지 않고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한 언젠가 더 넓고 눈부신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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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세차게 흔들리며 하루를 버텨낸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은 다정하게 말을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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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툴고 흔들릴지라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게 헤엄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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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스한 한마디가 긴 여운이 되어, 지친 마음속에 조용하고 잔잔한 물결을 남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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