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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빨간 지붕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나무옆의자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무옆의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마리 유키코 저자(김은모 옮김)의 <언덕 위의 빨간 지붕>
이 소설은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서 ‘이야미스’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야미스란 읽고 나면 불쾌감과 찝찝함이 남는 미스터리를 의미하는데, 이 소설은 그 장르의 대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어 본 이야미스 소설 중 가장 쎈 작품이었다.. 무서워..
이야기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의사 부부가 끔찍하게 살해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범인은 다름 아닌 그들의 딸 아오타 사야코와 그녀의 연인 오부치 히데유키다. 법정에서는 사야코에게 무기징역, 오부치에게는 사형이 선고된다. 18년이 흐른 뒤, 이 충격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연재되면서,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증언과 엇갈리는 주장,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밝혀지면서,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진다.
1~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부모 살해라는 잔혹 범행이 서사로 구성되는 과정을 작가에 대한 출판사의 횡포와 이권 다툼, 정황이 의심되는 여러 인물의 증언들을 중심으로 서술한 1부,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이 기폭제가 되어 사건 주변 인물들이 파국과 환멸로 한 걸음 한 걸음 떠밀려가는 2부, ‘진상’이라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여전히 헛갈리는 3부로 나눠 이야기를 펼친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욕망과 집착에 충실하여, 더 복잡해지고 뒤틀리게 되는 심리 묘사를 세심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 가족 내의 보이지 않는 계급 구조 등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이러한 점은 기분이 나쁜 불쾌함을 안기면서도, 동시에 그 찝찝한 이야기의 매력 속에 빠져들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어,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독자의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수수께끼’가 부족해. 그야 그렇겠지? 소설의 모티브인 ‘분쿄구 부모 강도 살인 사건’은 대중들이 보기에 이미 해결된 사건이니까. 아무리 잔인한 사건이라도 ‘해결’되면 대중의 흥미는 식는 법이야.” p70
특히 전개 내내 복선과 반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각 인물의 시점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뒤집힌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작가님의 의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계속 질문을 품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며 작가님의 의도에 완전히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들고, 의문이 명쾌하게 해소되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씁쓸한 깨달음과 불쾌감이 남는다. 즉 이 소설은 인간 심리의 그늘과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야미스의 진수라고 할 수 있으며, 묵직한 여운도 남긴다. 다만 작품의 분위기 자체가 어둡고, 중간중간 묘사 자체에도 불쾌감, 거부감이 들 수 있어, 이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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