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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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도서관은 자연이라는 말을 남긴 헤세의, 나무와 자기의 삶을 연결하여 쓴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를 엮은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이기도 하고, 에세이는 처음 읽어보기도 해서 많은 기대를 했다. 지금 내게 현실적인 것들이 나를 많이 괴롭게 해서 헤세의 문장들이 어쩐지 감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공감도 했고, 감탄도 했으며, 위로도 받았다. 나무의 속성과 헤세의 문장력이 잘 합일되는 순간에 맞닥뜨릴 때, 정말로 같은 나무를 보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 잠깐 현실을 잊을 수도 있었다.

나는 특히 사람들의 욕심으로 있던 자리에 나무가 없어질 때에 속상해하던 헤세에게 동감했다. 내게도 좋아하던 공간이 하루아침에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해서 내 애정이 깃든 그곳이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 흐릿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특별한 애정을 쏟던 대상이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라 없어진 자리가 눈에 띌 때, 덜어낸 물리적 자리만큼 어쩐지 마음도 휑해진다. 비워진 자리를 보며 내가 그 대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얼마나 그리워할 것인지 가늠이 될 때가 떠올랐다. 자세한 묘사와 포근한 애정으로 각각의 나무를 그려낸 헤세의 시선이 참 부러웠던 에세이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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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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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출간된 작가정신의 소설향 시리즈를 모두 읽으면서 느낀 점은, 어떤 기준에서 보아도 다양한 형과 색을 가진 책들을 시리즈로 엮었다는 것이다. 대개 출판사의 시리즈를 따라 읽다 보면, 통일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와 달리 소설향 시리즈는 소설 한 편 한 편이 모두 다른 주제와 다른 문체, 다른 기법을 추구하고 있다.

오한기의 『인간만세』는 그 다름에 힘을 싣는 소설이다. 읽는내내 자주 들었던 생각은, 대체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거지?였다. 이게 대학교 소설 창작 시간에 배운 <후장사실주의>인가보다. ‘인용의 인용’. 정지돈 작가님께서 특강을 오셔서 개념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들었었고 잠깐 빠져가지고 찾아서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무언가를 쓰거나 말할 요량으로 읽지 않는다면 흥미롭고, 무언가를 쓰거나 말하려고 읽으면 당혹스럽다. 줄거리 요약이 어렵달까.

그래도 이전에 읽었던 소설들보다는 『인간만세』는 비교적 줄거리 요약이 쉬운 편이다. 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는 ‘나’, ‘나’가 진행하는 고전 강독회의 유일한 회원이자 문학의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화학 전공 교수 kc, 집요하게 ‘나’의 상주 작가 자리를 노리는 진진, ‘나’의 마이크를 가지고 도망친 초등학생 민활성, 그 민활성에 모티프를 받아 ‘나’가 만든 가상의 인물 EE, 도난당한 마이크를 찾아내라고 윽박지르는 도서관 관장, ‘나’의 소설엔 리얼리즘이 없다고 피드백하는 공무원 후배까지.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쳐있고, 이 미쳐있음은 일상과 멀어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인물들은 ‘나’와는 밀접하게, 자기들끼리는 느슨하게 얽혀 있다. 인물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소설이 끝나버렸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책을 읽는 날이 쌓일수록 특히 서사의 기법이 실험적이지 않은 책에 손이 갔었다. 나도 모르게 문학의 정상성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이 책을 읽고 나서 느꼈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환기를 시켜준 작품이라 반가웠다. 무언가에 심각하게 천착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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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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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선우’의 유일한 낙은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아’에 접속하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원지’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게임 속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것들에서도 큰 변화가 인다. 게임 속의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서 몰입도가 높았고, 진로 고민이라든지 학교 폭력, 존엄사 등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차근히 하나씩 풀어나가는 주제의식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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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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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토마는 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아버지의 기일 때문에 어머니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예민한 성격 탓에 연주회를 걱정하다 어머니의 서재에서 마리화나에 손을 대게 되고, 아버지 레몽의 유령을 보게 된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고백하며, 그 여자가 죽고난 후 영혼 결혼식을 치를 수 있도록 유골을 합쳐 달라는, 생뚱맞은 부탁을 한다. 외면하려고 했지만 아들 토마는 결국 이 부탁을 승낙하고, 파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긴 여정을 시작한다.

 엉뚱하고 허무맹랑한 서사가 되기 쉽지만, 마르크 레비 특유의 유머와 소설을 끌고 나가는 세련된 추진력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특히, 소설의 초반부에 어머니 잔과 아들 토마의 대화에서 읽을 수 있는 시니컬한 유머러스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부분 때문에 소설에 매료되어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라는 소재만으로 ‘불륜’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부모님이 자식을 지우고 나면 무엇에 가슴이 뛰고 행복을 느끼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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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 상품이 된 공기, 공포가 된 공기, 미세먼지 프레임으로 읽는 각자도생 한국사회
장재연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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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사람들이 두 번째로 많이 검색한 단어가 ‘미세먼지’다.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의 공포가 급속도로 늘면서 대기오염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우리의 일상을 덮치며, 정부에서도 시급한 숙제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정말로 갑자기 미세먼지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각해진 걸까? 이에 관한 오해를 풀고 진실을 드러내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쓰여진 책이 바로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이다.

 

 ‘미세먼지 = 중국발’이라는 프레임이 지배적이고,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실제로 미세먼지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전문가 집단, 정부 모두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바깥으로 원인을 돌리면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 원인마저 정확하지 않다. 미세먼지에 관한 다른 나라의 통계와 현황, 거기서 배울 수 있는 점과 우리만의 해결 방안을 세우는 것이 더 우선시되어야한다는 저자의 말이 완벽히 동의한다. 용어에 대한 재정의와 미세먼지 관련 그래프들이나 과학 용어들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책의 흐름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다.

 

✔️ 책 내부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너어무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무게감은 있고, 표지에 ‘미세먼지 나쁨’을 뜻하는 빨간 배경의 아이콘 뒤에 사실 ‘좋음’ 표시가 숨어져 있는 초록 배경의 아이콘이 숨겨져 있다. 이 초록 배경의 색상과 느낌 그대로 내부 디자인을 했는데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표지 모두 살린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특히 차례 부분 깔끔한데 무거운 느낌이라 책이랑 잘 맞음)
✔️ ‘5년 전’이랄지, ‘11월 초’랄지, ‘작년’과 같은 단어들이 자주 사용되는 점이 아쉽다. 책을 출간할 당시에 읽는 독자들이라면 상관없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참고 자료로 쓰거나 독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출간일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시의성이 있는 책이었고, 출간 당시의 판매량이 대부분일 거라고 예상해서 현재성이 느껴지는 단어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어느새 국민들 입에 친숙한 용어가 되어버렸지만 ‘1급 발암물질’은 원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매우 잘못된 용어이다. 발암물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나 정부 정책 수립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오역이다. 기업이면 몰라도 환경학자와 환경단체만은 절대 ‘1급 발암물질’ 같은 반환경적이고 몰가치적인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1급’은 영어 ‘one’과 ‘first’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오역이기도 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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