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속 - 새로운 시대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들
김대식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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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창궐한 2020년 서점가에서는 전염병, 미래, 불안 등의 키워드로 쓴 책들이 쏟아지며 출간되고 있다. 이 비슷해 보이는 논의들의 홍수에 대해 신물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필요해서’일 것이다.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문제니까 그만큼의 수요가 생기는 것이고, 수요가 생기니까 계속 생산이 되는 것이다. 그저 많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싫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 책 또한 여섯 명의 학자가 정기적으로 모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부 모임에서 나눈 말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해서 큰 기대는 없었다. 내게 필요한 지식이니 넣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하거나 생각해볼 지점들이 많아서 기대 이상이었다. 역사학, 사회학, 금융학, 경영학, 뇌과학을 기반으로 코로나 시대에 대해 다각적으로 다룬 이 책의 기저가 되는 이야기는 팬데믹과 같은 상황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바뀌고 있던 세상의 흐름들을 가속시키는 ‘초가속’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가속되는 것들은 모두 현재와 관통되는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금 벌어지는 사회의 현상뿐만 아니라 나라는 개인에 대해서 설명하기에도 용이해져서 해소되는 지점들이 많았다.

‘감염’과 ‘전염’을 구별하여 말하는 것, 다양한 학문적 지식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토론 부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우선 하나는 “인류 역사에서 불평등은 오로지 세 가지 방법만을 통해 해소된다. 질병, 전쟁, 기후 변화가 그것이다.”라는 발터 샤이델의 말이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효율성이 커지면서 불평등도 커진다는 문장에서 나는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평등과 효율을 함께 추구하려다보니 자꾸 딜레마에 빠지고 마는 내 어리석음에 대해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19세기가 지나고 국가 중심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소속감과 같은 것은 사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모두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평소에 부담감을 느끼는 어떤 부분들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론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술술 읽히진 않았지만 그만큼 멈춰 서서 질문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었다. 책 읽으면서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겸손하게 배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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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산다는 것
전범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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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완독했다. 꾸역꾸역 읽는 것도 아니었고 집중이 안 돼서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것도 아니었다. 11월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에도 시큰둥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 서포터즈 자체가 부담스러워 한동안 쉬었는데, 이슬아 작가님의 추천사를 보고 마음이 일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전범선은 한국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특권의 울타리 바깥을 자꾸 본다. 타자의 자유를 곰곰이 모색한다. 본인의 자유만을 위해 살고 싶지는 않아서다. 전범선의 부지런한 사유에 동참하고 싶다. (…) 그리하여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함께하고 싶다. 사나이라는 말이 점점 우스꽝스러워지는 시대에 그 말에 담긴 좋은 가능성을 전범선에게서 본다.” - 이슬아 추천사 중에서

책 표지, 카피 문구, 작가의 이름까지 모두 각인이 쉬웠다. 작가의 자아나 문제의식도 그러했다. 자유를 좇는 사람이지만 자유로울수록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슬아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만이 자유롭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특히나 마지막 장에 “동물 해방”에 관한 생각들은 나의 많은 부분을 움직이게 했다.

“채식은 더 이상 시혜적 차원의 윤리 문제만이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기후 위기에 맞서 인간 종을 보전하기 위한 투쟁 방식이다. 한시가 급하다. 소고기 좀 더 먹겠다고 아마존을 불태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171쪽)

이 책은 “1부 휘뚜루마뚜루: 나의 뿌리를 찾아서”, “2부 성균관 두루미: 나의 자리를 찾아서”, “3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로 나뉜다.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언가를 ‘찾고’, ‘위하는’ 전범선이라는 사람의 목적들을 훑을 수 있다.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읽는 시간은 “전범선”이라는 사람이 살면서 해왔고, 하고 있는 고민들을 듣는 시간과 같았다. 그 시간들을 통해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지어졌다.
‘고민’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표준국어대사전)”이다. 그의 괴로움과 초조함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명료해서 좋았다. 민사고에 재학할 때, ‘민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친미파 양성을 하는 학교에 대한 의문, 학교 생활에서 본질적으로 던지는 질문들, 다트머스 대학에 유학할 시절 가보지 못한 세계에서의 경험과 문화의 차이를 독해하는 시간들을 텍스트로 보는 것들은 그동안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들에 대한 관념들을 깨트렸다. 또한, 카투사 복무 시절 한-미 관계의 평등에 대한 단상들이나 책방 풀무질을 인수하는 과정들을 보며 나의 안일함에 대한 반성이 들었다. 비건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록과 동물 해방을 주장하는 저자의 태도에서 또한 배울 점이 많았고, 앞으로의 나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 같다.

사랑이 많고 사랑을 잘 아는, 그래서 다정함을 나눠줄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와 동시에 내게 어떤 것이든 각성하게 해주는 사람들도 좋아한다. 두 가지 모두를 지니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서 그러한 가능성을 모색했다. 자기계발서로 기획된 이 책이 ‘부유(富裕)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유浮遊하는’ 사람의 이야기라 많은 부분 와닿았다. 작가가 준 선물 같은 깨달음들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지 당분간 공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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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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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 우리의 정류장을 읽고 내가 겪은 거의 모든 이별들이 떠올랐다. 10페이지만으로. 나는 그때부터 어떤 운명을 직감했던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쓸 수 있겠지만, 분석은 힘들 것이고 김이설 작가의 소설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이 책은 힘든 일상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게 했고, 이별과 몰두의 밤들을 가져다줬다. 시간을 내서 손으로 꾹꾹 눌러 적으며 필사해봐야겠다.

 

는 여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8년간의 연애를 끝낸다. ‘그 사람으로 불리는 의 애인은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는 정류장처럼 머물러 있다. 내가 이 애틋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동생의 두 아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기준에서 쓸모없는인간인 , 집안에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 즉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전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쟁 같은 매일을 보내면서도 꼭 가족들이 자는 밤에 짬을 내어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글자들을 필사한다. ‘필사라는 행위는 무엇이라도 써야 한다는 의 의지이며, 씀으로써 인식되는 라는 존재의 확인이다. ‘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 살아보겠다고 짐을 싸서 나가게 되고 그 이후 그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할 때에는 누리지 못한 당연한 일상들을 경험한다. 이후, ‘가 시인으로 등단했는지, ‘그 사람과 결국 결혼을 했는지, ‘의 동생은 남편과 이혼을 했는지 등이 모두 밝혀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열린 결말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괜찮았다. 시작인지 끝인지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없는 정류장이었던 이야기들……. 나는 의 이야기가 일상처럼 와닿았고, 관찰카메라처럼 뭉툭하게 잘린 단면만 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계속 살아갈 것 같고 소설 속 가 부서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기를 바란다. 평범한 삶의 전제조건인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응원한다. 앞서 말한 부분들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필사를 위해 등장하는 시들, 지극한 단어들로 밑바닥에 있던 감정들을 자극하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고 또 울컥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쓸 것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쓸 시간이 없었고, 머릿속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고, 나에게 집중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조용히, 고즈넉하게, 쓸쓸히, 오롯이, 동떨어져서,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들을 누릴 수 없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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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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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는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이안시’의 선도병원으로 내려온다. 병원에서 ‘이석’이라는 선배 덕분에 잘 적응하게 되지만, 이내 선배의 횡령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서술된다. 횡령을 고백할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석’의 아이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소설은 끊임없는 도덕적인 질문을 낳는다.

서사가 있는 콘텐츠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묻기 좋은 배경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병원인데, 대부분 메디컬 드라마에서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각자만의 사정이 있음을 서술하며 선택을 합리화한다. 앞선 이야기와는 다르게 『죽은 자로 하여금』에서는 하나의 선택 속에 담긴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다 드러낸다. 작가는 확실하게 어떤 선택의 결과를 드러내면서 독자에게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고민하게 만든다.

병원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지만,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이면을 은근히 드러낸다. ‘무주’의 심리를 더 자세히 서술하지만, ‘이석’의 상황과 묘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그리고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이안시’에 대한 서늘함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 정말 대단했다. 무엇 하나 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추가될 것도 없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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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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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혼란스러웠어. 너무 내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어떤 마음 때문에, 나는 너희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라면, 나는 이걸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72쪽)

강화길의 소설들은 ‘너무 내 것이라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내 것이라서’ 문장들을 꼭꼭 씹어 잘 소화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어느 운동의 슬로건처럼, 내가 과거에 경험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이 사회적인 이슈나 용어로 설명이 될 때 느끼는 두근거림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작가 노트에 배경과 구성 모두 ‘느슨한 연결’을 원했다고 밝힌 것과 같이 이 소설은 여러 이야기가 콜라주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구조적으로 촘촘하지는 않지만, 어지럽게 조화롭다.
관심 갖지 않으면 알기조차 어려운 해인마을에 사는 두 소녀 ‘민영’과 ‘진영’은 시골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 위해 내기를 한다. 둘은 같은 소재로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이때 창작하는 이야기들에서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 여자들은 하나같이 불안과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바라고 그것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야기 속에 비치는 여자들의 욕심이 좋았다.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삶을 응원하는 마음들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미워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사랑에 가닿으려는 마음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꼭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만 사랑이 힘든 관계도 분명히 있다. 또한,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조건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해와 사랑을 시도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이해하고 사랑해보려는 인물들의 시도가 내게 큰 세범이 되었다.

면면하진 않지만 헐겁게 이어져 있는 ‘마음’들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 무끈한 깨달음들이 곳곳에 담긴 이야기여서 한 번 필사해봐도 좋을 것 같다. 분량도 중편 정도라서 가볍게 읽기 좋다. 책에 담긴 고민들은 절대 가볍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를 처음 완독해보는데, 구입해놓고 읽기를 미뤘거나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다른 책들도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 강화길이 그리울 때, 오디오북으로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봐야겠다. 목소리가 주는, 친숙한 문장의 생경함은 어떨지 궁금하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 애정을 품고 아쉬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것이고, 겁을 먹을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슨하게 살게 될 것이다. - P38

그냥 나는 엄마를 먼저 이해하는 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영민한 딸 말이다. 사실은 그저 불편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만. - P42

친구는 괴로울 때마다 마음을 기록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만의 마음을 간직했다는 생각 덕분에 견딜 만해진다고 했다. 누구에게 맡겨놓은 마음이 아니니까.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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