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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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혼란스러웠어. 너무 내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어떤 마음 때문에, 나는 너희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라면, 나는 이걸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72쪽)

강화길의 소설들은 ‘너무 내 것이라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내 것이라서’ 문장들을 꼭꼭 씹어 잘 소화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어느 운동의 슬로건처럼, 내가 과거에 경험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이 사회적인 이슈나 용어로 설명이 될 때 느끼는 두근거림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작가 노트에 배경과 구성 모두 ‘느슨한 연결’을 원했다고 밝힌 것과 같이 이 소설은 여러 이야기가 콜라주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구조적으로 촘촘하지는 않지만, 어지럽게 조화롭다.
관심 갖지 않으면 알기조차 어려운 해인마을에 사는 두 소녀 ‘민영’과 ‘진영’은 시골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 위해 내기를 한다. 둘은 같은 소재로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이때 창작하는 이야기들에서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 여자들은 하나같이 불안과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바라고 그것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야기 속에 비치는 여자들의 욕심이 좋았다.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삶을 응원하는 마음들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미워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사랑에 가닿으려는 마음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꼭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만 사랑이 힘든 관계도 분명히 있다. 또한,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조건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해와 사랑을 시도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이해하고 사랑해보려는 인물들의 시도가 내게 큰 세범이 되었다.

면면하진 않지만 헐겁게 이어져 있는 ‘마음’들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 무끈한 깨달음들이 곳곳에 담긴 이야기여서 한 번 필사해봐도 좋을 것 같다. 분량도 중편 정도라서 가볍게 읽기 좋다. 책에 담긴 고민들은 절대 가볍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를 처음 완독해보는데, 구입해놓고 읽기를 미뤘거나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다른 책들도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 강화길이 그리울 때, 오디오북으로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봐야겠다. 목소리가 주는, 친숙한 문장의 생경함은 어떨지 궁금하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 애정을 품고 아쉬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것이고, 겁을 먹을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슨하게 살게 될 것이다. - P38

그냥 나는 엄마를 먼저 이해하는 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영민한 딸 말이다. 사실은 그저 불편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만. - P42

친구는 괴로울 때마다 마음을 기록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만의 마음을 간직했다는 생각 덕분에 견딜 만해진다고 했다. 누구에게 맡겨놓은 마음이 아니니까.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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