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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광범위하게 짚어보는 미신의 역사에서 발견한, 냉소적인 문체와 회의적인 태도가 주는 오묘한 위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읽고 혼자 많이 낄낄댔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신간도 무척 기대하며 펼쳤다. 역시나 피식거리면서 읽었다. 마약이든, 지금 책에서 다룬 미신이든 인류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발전해왔으나 그것들이 눈에 보이게 더 파닥대는 시기에, 적절하게 책을 출간하지 않았나 싶다. 신의 한 수다.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을 이 책을 읽은 직후에 쓰는 것이 좀 찔린다.)
대부분 어떤 역사나 흐름을 짚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설득하려고 하는데, 이 작가님은 그렇지가 않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네는 알아서 해.”라는 뉘앙스가 느껴져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다. 확실히 ‘설득’보다는 ‘설명’에 초점을 맞추며 글을 이어간다.
나는 설명을 좀 좋아하는 편이다. 설명 뒤에 충이 붙으면서 설명에도 어쩐지 제약이 많아졌지만 어쨌든 나는 설명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욕 안 들으면서 설명을 하고 듣는 가장 좋은 플랫폼은 ‘책’이고, 이렇게 비슷한 태도를 가진 저자를 발견하면 좀 기쁘다.
아무튼 오후 작가님의 책들은 어떤 큰 주제를 하나 잡아두고 사회나 학문의 다양한 파트에서 넓고 얕게 설명하는 것에 가까운 글이다. 설명이라는 단어의 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설명은 본질적으로 말의 영역에 가까운 단어다. 그래서 설명하는 글은 말과 글의 영역 모두를 담고 있는 것이기에 이를 유연하게 풀어내려면 구어체와 문어체를 모두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루하지도 않으면서 알기도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미신의 탄생부터 가부장 신화, 서양·동양의 미신, 종교, 정치, 사상, 현대, 심리로 나누어 미신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짚는다. 아마 종교 때문에 크고 작은 논란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카피 문구로 뽑은 ‘유쾌한’이라는 단어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근데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고, 저자가 말하듯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나처럼 유쾌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사상>이었다. ‘사상을 종교 이전의 상태 혹은 이후의 상태’라고 밝히며 시작하는 이 파트에서는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내셔널리즘, 민주주의, 인본주의에 대해 다룬다. 사상도 어쨌든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미신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충분하다. 사상이든 미신이든 공동체에 필요하지만, 어떻게 객관화해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맥을 짚어주는 느낌이라 집중해서 읽었다.
“운이 좋든 나쁘든 간에 대체 세상이 왜 나의 운에 맞춰 움직인단 말인가?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그것만 알아도 세상 많은 일에 마음이 편해진다.” (363쪽)
책의 끝에 위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읽기 위해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은 것 같다. 묵자의 일화와 함께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님’을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내 탓이 더 쉽고 불확실한 것에 불안을 자주 느끼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기꺼이 이 두꺼운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인생, 별 거 있냐?”라고 하찮지만 도움이 되는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다 읽고 나더라도 신년운세를 보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