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장면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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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떨어지기 더 쉬운 계절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등으로 계속되는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의 간격이 멀어지기 더 쉽다. 또, 아래로, 깊이 아래로 추락하기도 쉽다. 단순히 겨울이 춥기 때문에 사람들끼리 온도를 찾으려고 가까워지기 쉽다는 말은 특정하다(?). 그 안에서도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겨울은 기온도, 기분도, 기억도, 그밖의 것들도 떨어지기 더 쉬운 계절이다.

 

 파편처럼 조각난 어느 겨울의 장면들이 시퀀스로 이루어진다. 기억을 잃어버린 R은 8개월 전에 추락 사고를 겪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 특유의 생각인 것마냥 흩어진 장면들로 소설은 진행된다. R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 애쓰지 않는데, 애쓰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은 줄거리를 정리하는 순간 덜 의미있어지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서포터즈로 받은 책이라는 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한다.)

 

 출판사 제공의 책 소개에서처럼,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포착됨을 거부”한다. 이러한 방식의 거부가 낯설었지만, 그 낯설음에서 오는 익숙함이 숨겨져 있었다. #26~#30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대화를 듣고 어쩌면 R의 이 무의미한 반복이 우리의 일상은 아닐까 생각했다. 익숙한 반복에게서 생경함을 느꼈다. 이 작품이 가장 소설 같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현실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소설이 너무 오랜만이라 새롭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복작복작했던 머릿속을 하나의 세계로 데려다놓는 데에 성공한 소설이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둘의 눈 맞춤은 집요하다.
서로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앉아.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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