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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최명관 옮김 / 서광사 / 1990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를 단일한 일자로 보았던 파르메니데스에 이어 현실세계를 부정적으로 보고 이데아의 세계를 끝도없이 추구해갔던 플라톤까지 허공 위에 집을 짓던 그리스 철학을 발 밑으로 끌어당긴 철학자,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이렇게 바라보았다. 언제나 시대적 흐름에 슬쩍 비껴나버린 철학자들에 나는 매력을 느끼고는 하는데, 그 배경만 알고 있는 스피노자가 그러하다. 내 인상 속의 그는 근대에 속하면서도 근대를 넘어선 철학자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서도 적잖이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 소크라테스-플라톤의 계보를 잇는 철학자이면서도 플라톤에 반하는 이론을 많이 내세웠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재하는 세계를 인정하려 했던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더욱 맘에 들었다.

그는 절제, 용기, 우애 등과 같은 중용의 덕을 추구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 자신에게 숨겨진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실천을 우리에게로 끌어당기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적인 행복은 이성적인 관조만을 통해 느낄 수 있지만 인간적인 행복은 현실에서 중용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궁극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려 했던 것은 신적인 행복이었으나, 인간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그는 상승기류를 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중용의 덕을 내세우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추구하려 했고, 인간 사회에 보편적 윤리를 뿌리내리려 한 그는 너무 뚱뚱하고 거대한 물체를 맞지 않는 틀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 한 인상을 풍긴다.

한 예로 쾌락과 고통에 대한 그의 사고를 잠시 엿보자. 그는 쾌락과 고통을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누고 고통은 덮어놓고 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쾌락은 추구해갈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육체적인 쾌락은 짐승과 어린아이들이 추구하는 것이며 절제있는 사람은 그런 쾌락은 피하며 자기 나름으로 쾌락을 추구해간다고 한다.* 또한 육체적인 쾌락은 흔히 고통을 피하기 위한 쾌락이며 고통을 잊기 위해서라도 그 정도는 강렬해진다. 때문에 지나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통과 관계없는 쾌락에는 지나침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신이 추구하는 단순하고 쾌적한 쾌락이며, 우리가 추구해가야 할 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육체적인 쾌락에 있어서도 쾌락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정도가 지나친 것이 나쁜 것이라고 한 것***에는 내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면서 공감이 갔지만, 다른 면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윤리학이라는 것이 세계를 설명해내려 하기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해도, 때문에 낱낱의 변수들과 특수한 상황들을 다 감지해내지 못한다 해도, 그의 생각은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고통만 해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천가지가 아닌가? 유토피아에서 상처의 문제를 다루었을 때에도, 그 관점은 가지가지였다. 고통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고통을 덮어놓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생의 목적이라고 해도 그 행복관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나오는 새도 매저키즘을 인정하는 것도, 근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집단 수용소 안에 갇힌 광기를 새로이 정의내리는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 안에서는 택도 없는 일일 게다.

그는 결국 에우리피데스가 '어떤 의미에서 변화는 달콤한 것'이라고 읊은 것을 정면으로 악덕이라 부정한다. 그가 변화하는 현실 세계를 끌어들이려 한 것은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실천 속에서의 가능성을 엿보자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행복추구라는 목적 속에 묶어두려 함은 아닌지. 그리하여 니코마코스의 아비가 써낸 윤리학은 오늘날에 있어 어쩌면 영원한 불시착!

*<니코마코스 윤리학> p223, 아리스토텔레스, 서광사, 2001
**p227~228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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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스틱스 - 또는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백영경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월러스틴은 <유토피스틱스>에서 유토피아의 부정적 기능을 지적하며, 그 대체언어로 '유토피스틱스'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그는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기능이 있으며 정치적인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하며 끔찍스러운 잘못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고, 실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도출된 '유토피스틱스는 역사적 대안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이며, 가능한 대안적 역사체제의 실질적인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행위이다.'**

책은 전체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꿈들의 실패, 또는 낙원의 상실?'을 통해서 실패한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 평가한다. '2부 어려운 이행기, 또는 지상의 생지옥?'을 통해서는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로 공고화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하여 어떤 체제든 자본주의를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분석한다.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전지구적인 혁명이 아닌 전지구적인 반동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3부 명실상부한 합리적 세계, 또는 낙원의 회복은 가능한가?'에서는 '합리적인 역사적 사회 체제'에 대한 몇 가지 모색을 꾀한다.

월러스틴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근대 세계의 혁명은 환멸을 낳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사람들이 국가 수준에서 기본적 변혁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찾으려 한다면, 윌러스틴은 국가에서 혁명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혁명이라는 말이 그 근저에 놓인 사회구조나 혁명을 겪었다는 국가의 작동양식을 뒤바꾸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혁명은 있을 수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모델이다. '국가는 체제의 제도, 따라서 그 특정한 형태에 관계없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추진력의 우선성에 어떤 방식으로건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며 '결국 체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체제들은 스스로를 평형상태로 돌려놓는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어서, 예상된 패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큰 진동(의도된 것이든, 우발적인 것이든) 대신 상대적으로 작은 중기적 변화만을 낳도록 한다.'****

국가, 체제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은 상당히 인상깊어서 다시 곱씹어보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큰 진동 대신 작은 중기적 변화만을 낳도록 한다는 부분들은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혁명이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 작은 중기적 변화들이 축적된 결과물로서 커다란 진동이 일어난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유토피스틱스는 유토피아의 재해석이며, 새로운 의미부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유토피스틱스라는 대체언어를 제시한 것에 비해서 월러스틴은 실제로 유토피아주의에 입각해서 글을 서술한 것 같지 않다. 앞서 분석한 지나온 역사들과 역사적인 대안들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분석한 반면 자신이 제시한 대안적 사회 체제를 위한 몇 가지 모색들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치밀하지 못한 듯하며, 결국 자신이 말했던 작은 중기적 변화들만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식이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이끌어내는 힘에 대해서 나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하는 쪽이지만.

인상깊었던 것은 민족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와 자유주의가 맺고 있는 공생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언뜻 보면 위 세 가지와 자유주의는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윌러스틴은 말한다. 이것은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차별과 배제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의견도 있을 수 있고, 결국은 자기와 같은 의견도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맺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 아집의 다른 이름이며 다른 생각들에 대한 배제의 다른 방식일 뿐이다. 다양성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생각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자리는 사라지고 만다. 나는 여기서 자유주의라는 이름이 이상하게 뒤틀린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변질된 모습인지, 그것의 실체인지?

*<유토피스틱스> 11~12p
**12p
***22p
****2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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