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스틱스 - 또는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백영경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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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은 <유토피스틱스>에서 유토피아의 부정적 기능을 지적하며, 그 대체언어로 '유토피스틱스'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그는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기능이 있으며 정치적인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하며 끔찍스러운 잘못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고, 실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도출된 '유토피스틱스는 역사적 대안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이며, 가능한 대안적 역사체제의 실질적인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행위이다.'**

책은 전체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꿈들의 실패, 또는 낙원의 상실?'을 통해서 실패한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 평가한다. '2부 어려운 이행기, 또는 지상의 생지옥?'을 통해서는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로 공고화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하여 어떤 체제든 자본주의를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분석한다.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전지구적인 혁명이 아닌 전지구적인 반동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3부 명실상부한 합리적 세계, 또는 낙원의 회복은 가능한가?'에서는 '합리적인 역사적 사회 체제'에 대한 몇 가지 모색을 꾀한다.

월러스틴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근대 세계의 혁명은 환멸을 낳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사람들이 국가 수준에서 기본적 변혁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찾으려 한다면, 윌러스틴은 국가에서 혁명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혁명이라는 말이 그 근저에 놓인 사회구조나 혁명을 겪었다는 국가의 작동양식을 뒤바꾸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혁명은 있을 수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모델이다. '국가는 체제의 제도, 따라서 그 특정한 형태에 관계없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추진력의 우선성에 어떤 방식으로건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며 '결국 체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체제들은 스스로를 평형상태로 돌려놓는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어서, 예상된 패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큰 진동(의도된 것이든, 우발적인 것이든) 대신 상대적으로 작은 중기적 변화만을 낳도록 한다.'****

국가, 체제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은 상당히 인상깊어서 다시 곱씹어보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큰 진동 대신 작은 중기적 변화만을 낳도록 한다는 부분들은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혁명이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 작은 중기적 변화들이 축적된 결과물로서 커다란 진동이 일어난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유토피스틱스는 유토피아의 재해석이며, 새로운 의미부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유토피스틱스라는 대체언어를 제시한 것에 비해서 월러스틴은 실제로 유토피아주의에 입각해서 글을 서술한 것 같지 않다. 앞서 분석한 지나온 역사들과 역사적인 대안들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분석한 반면 자신이 제시한 대안적 사회 체제를 위한 몇 가지 모색들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치밀하지 못한 듯하며, 결국 자신이 말했던 작은 중기적 변화들만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식이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이끌어내는 힘에 대해서 나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하는 쪽이지만.

인상깊었던 것은 민족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와 자유주의가 맺고 있는 공생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언뜻 보면 위 세 가지와 자유주의는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윌러스틴은 말한다. 이것은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차별과 배제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의견도 있을 수 있고, 결국은 자기와 같은 의견도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맺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 아집의 다른 이름이며 다른 생각들에 대한 배제의 다른 방식일 뿐이다. 다양성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생각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자리는 사라지고 만다. 나는 여기서 자유주의라는 이름이 이상하게 뒤틀린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변질된 모습인지, 그것의 실체인지?

*<유토피스틱스> 11~12p
**12p
***22p
****2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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