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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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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해방의밤 #독서에세이 #창비 #새해독서


이 글은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받고 읽은 후 쓴 서평입니다.


해방의 밤이라니, 낮에 얼마나 치열하기에 밤에 누리는 해방인 것인가.

같은 된소리지만 뜨거운 것과 따듯한 것이 다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낮이 뜨거웠기에 밤은 시원한 게 당연지사일 테지만,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밤은 따듯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에세이기에 은유 작가님의 글이 너무나 기대되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겼다.


내 삶은 책 기둥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좋아하고 아끼고 탐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공감되었다. 내게도 휴식은 책이고, 선생님도 책이고, 친구도 책일 때가 잦다. 그래서 반가웠다. 책 기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결혼 후 느지막이 시작된 글쓰기에 대한 작가님의 소회들이었다. 조금 실망스럽다 여기던 순간 서서히 빠져드는 나를 느꼈다. 책을 읽다가 줄을 긋기 시작하고, 긋고 또 그었다. 그리고 형광펜 파티가 시작되었다.


은유 작가님은 모든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들은 것처럼 적어 내려갔다. 옛날이야기를 할머니에게서 신나게 듣고는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나의 상상력이라는 살을 붙여서 재미나게 전하는 재간둥이처럼 은유 작가님은 직접 만나고 겪었던 순간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열렬하게 그렇지만 따뜻함을 잃지 않고 풀어냈다. 작가님의 이름값을 톡톡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1부에서 4부에까지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는 언제나 은유 작가님의 선택을 받았던 책이 있었다. 마치 작가님의 책장을 훑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그 책을 통해서 생각하고 고뇌하고 또 다짐했던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보기도 했고,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읽으면서 '아 00이 언니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메모를 하기도 했다.


1부에서 관계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가부장제의 마지막 요새는 뜻밖에도 친정입니다.

라는 문장은 내 등이 뜨끔해지는 경험을 했다. 환경이 원인이라는 말을 어쩌면 이리도 콱!! 박히게 제대로 비유하시는지. 이 한 문장이 나를 설명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불편했다. 그냥 그러고 사는 게 어때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삶도 있는 거지. 왜 이리 비틀고 불편하게만 여기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은유 작가님은 작은 쓸모를 찾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스스로도 세상에서 혹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의 작은 쓸모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작가님의 현실 비판과 고민들이 왜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영역에 걸쳐서 확장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계속해서 줄을 긋고 끄덕이게 되기 때문에 형광펜은 너무 밝은색보다는 은은한 파스텔 빛깔을 선택하길 추천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이제부터 은유 작가님의 솔직하고도 담담한 고백과 생각에 매료되어서 책이 끝나는 순간에는 은유 작가님을 직접 만나고 싶은 생각이 무조건 들게 될 테니.


리베카 솔닛을 시작으로 한 편 한 편마다 작가님이 직접 읽었던 책들이 소개되는데 이것을 적어내고 목록을 만드는 일이 꽤나 쏠쏠했다. 적어두고 하나씩 탐해보려 한다. 내용이 어떠하다 보다 은유 라는 작가로서의 한 사람을 살필 수 있는 책이라 좋았다. 그리고 은유 작가님의 다른 책도 사서 내 곁에 두어야지 한다. 아름다운 표현보다는 솔직하고 담담한 표현이 가득하며 그 문장과 문장의 행간, 단어와 단어 사이의 그 호흡에서 느껴지는 은유 작가님의 감성과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마치 햇살 쨍쨍한 날에 밀려있던 빨래를 한 가득해서는 볕 잘 드는 곳에 건조대를 펼치고는 이렇게 저렇게 쌓이고 구겨져 있던 옷들을 탈탈 털어서 널어 말리고, 나른한 시간을 보낸 뒤에 빳빳해진 옷감을 걷어서 손 다림질 쓰윽 해가면서 꾹꾹 눌러가며 개어둔 옷들을 보는 느낌.

"빨래 끝~" 을 외치고 싶은 그런 조도와 바람이 이는 느낌이었다.



삶에서 무엇을 왜 추구하고 어떻게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 차근히 하나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주인공의 자리' 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온도'를 유지하는 게 행보이구나 깨닫습니다.

책과 친구의 도움 없이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가치에 대한 질문이 희박해지고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에 나와 놀아주는 유일한 두 존재가

바로 친구와 책입니다.


은유 작가님을 뵙게 된다면 꼭 전해 드리고 싶다. 은유 작가님이 삶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그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되어서 지금의 저에게도 와닿아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또 독자의 마음도 이야기가 되어 다시 작가님의 삶에 녹아들어서 와닿아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게 될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을 돌고 돌게 하는 작은 쓸모의 힘을 발휘하며 사는 것에 감사하기로 해요.라고.

낮의 소란이 지나고 밤의 해방을 맞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대 한 스푼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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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읽는 쇼펜하우어
예저우 지음, 이영주 옮김 / 오렌지연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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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관심 없던 이름이었다. 독서를 사랑하지만 철학은 전반적인 것을 훑는 형태를 좋아한다. 어쩌면 윤리나 사상을 수능을 위해 공부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데 딱히 좋아하거나 깊이 사고 하는 철학자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저 그때마다 와 닿는 것을 오래 간직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찾자면 다산 정약용 정도. 


 그런데 최근 들어 미디어를 통해 마흔이 되면 꼭 읽어봐야 한다는 쇼펜하우어가 등장하면서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던 때에 베스트셀러는 당장에 손을 대지 않는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했고, 무관심해졌다.


 그러다가 이 책을 우연히 인별에서 보게 되었다. 잠들기 전에 읽는다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지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산순한 추측으로 관심이 생겼다.


 작가가 칭화대 베이징대 강사였기 때문인지 비유나 예시가 중국의 문인들이 많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동양 철학을 접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어쩌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철학은 결국 인간의 삶을 연구하고 사고하고 체득하는 것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표현이나 상황이 조금 다를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를 비관주의라고 말한다는데, 읽으면서 느낀 것은 비관주의라기 보다 현실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지독한 이상을 이야기하거나 공감 못할 괴짜스럽고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와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 하기에 그랬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를 조금더 현실주의로 보여지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는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쇼펜하우어는 MBTI로 치면 T성향을 가진 I 같았다. 왜 T가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 관심있는 것이나 관계의 정도가 밀접하면 감성적이고 따뜻하듯이 쇼펜하우어도 애정이 가득한 인간이라는 대상에 대해 지극이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말로 훈계같은 위로를 건내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세월을 그대로 견디고 버티면서 인생을 고스란히 겪는 40대 50대의 현실 남자가장이 하는 이야기같다고나 할까.


 쇼펜하우어를 40세에 읽으라는 이유가 이 때문인듯하다.

20대, 30대의 치열한 희망고문과 도전의식으로는 받아들이거나 위로받기에는 조금 거칠고 덜 다듬어진 것 같기에, 40이라는 숫자의 마법같은 의미부여로 비관주의적인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다 '때' 라는 게 있다. 라는 말처럼...


 반면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의지를 의존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현실이 비관적이었기에 비관주의 철학이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지금이 비관적인 것 투성이인것이 현실이니까.  


  낙천과 낙관이라는 말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인 태도가 되려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고통과 고난 그 자체가 행복인 것 아닌가. 삶을 고통이라 말했지만 그 자체가 행복이라 여기면 고통도 행복이다. 행복을 얼마나 누렸나보다 액운을 얼마나 피해갔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고통 그 자체가 행복이 되면 액운의 횟수가 행복의 실체가 되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기독교적인 가치와도 크게 이질적이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나를 시작으로, 인생의 행복, 세상에서의 행복, 그리고 수양,고독, 시간을 활용하는법, 그럼에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살수 있는 삶에 대해서 글이 이어지는 이 책에서 비관적이면서도 적극적이어야 하고 비관적이지만 낙관을 가져야 함을 계속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쇼펜하우어는 현실점검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시작이다. 나의 주변환경이 어떠한지를 현실적으로 봐야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하고, 그에 따른 목표가 생겼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위한 계획이 나와서 행동양식이 도출되듯이. 막연함을 낙관이나 낙천, 희망으로 포장하지 말라고 한다. 


 구질구질, 염세, 투덜이가 아니라, 대책있는 현실감각을 기르라고 말한다. 비관 속에서 비관을 이용해서 낙관으로 실체화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간략한 챕터들의 구성이라 읽는것이 어렵거나 고뇌스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가들의 쇼펜하우어도 궁금해진다. 그들이 이해하고 깨달은 쇼펜하우어는 어떨까?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나의 장바구니가 쇼펜하우어로 채워지고 있다. 나에게 센언니나 센오빠가 필요하다면 애정어린 독설을 해주는 쇼펜하우러를 소장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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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지구력 - 삶의 경로를 재탐색하는 발칙한 끈기에 대한 이야기
윤홍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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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감히가 붙은 카피가 좀 씁쓸하다.
그럼에도 행복해진다니 기대하면서 읽어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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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 엄마 건전지 가족
강인숙.전승배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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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 엄마라니,  원더우먼의 또 다른 이름인가? 했다.

그래서 식상하다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


그런데 건전지 엄마는 워킹맘이다.  

여기저기 직업이 너무 많다. 비누방울을 내뿜는 버블머신 속 핵심 에너지를 제공하기도 하고, 즉석카메라에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바로 찍어 현상해주는 일도 하고, 요리하는 다른 엄마들의 조리도구로서, 낮잠자는 아이들을 체크하는 선생님의 체온계 속에서는 정확한 온도를 측정하는 전문직도 수행한다.


결정적으로 화재경보기를 작동하는 막중한 건전지 엄마의 일과는 용감하기도 하고, 건전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일이기도 하다.


그런 건전지 엄마가 퇴근 후에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은 어느 집과도 비슷하게 우당탕탕 엉망진창이다. 

고단하고 긴장되었던 하루에도 건전지 엄마는 아이들의 기다림에 그저 함께 놀이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그 사랑 표현에 방전된 자신이 완전 충전된다.


사랑으로 충전되는 엄마와 아빠라니.

아름답고 무겁지만, 한 편으로는 웃음이 나면서도,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소비하는 것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도 충전되면 안되는 걸까, 각자의 방식으로 충전이 되어도 좋으련만, 

사랑으로 충전되었다니 너무 감사하면서도 너무 뻔해서 서운하기도 했다. 역시 어른이 된 나는 순수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도 했지만, 건전지 엄마의 충전이 그런 것이니...

 

결국 나도 형태나 방법이 다를 뿐 사랑으로 충전되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덕질 하는 것으로, 책을 읽거나 사는 것, 한잔 하는 것, 잠자는 아이를 쓰다듬는 것 ,

반려 동물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등등. 


결국 그 모든 것이 사랑의 다른 형태인 거 아닐까 ..


그래서 이 책으로 딸과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딸 너는 어떻게 방전된 너를 충전하니? 주말에 이야기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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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어령 대화록 2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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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올림픽을 보지 못한 세대로서 이어령 선생님이 누구인지 몰랐다. 88년도에 굴렁쇠 소년보다도 어린아이였기에 모르는 게 당연하다. 작가의 약력을 보니 소위 일컫는 스펙이 어마무시함은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도직입적 질문이 너무나 설렘을 느끼게 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삶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사람을 향하고 죽음과 생명을 향하여 끝없이 고뇌하는 것은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고루한 상상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저자는 무신론자였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게 되었음을 가식이나 거짓없이 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통해서 최대한 솔직하게 담아 내려한 것 같았다.

 여전히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병패들을 문제 제기 하면서도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자세로 그 일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무신론 역시 신의 존재가 있어야 없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것임을 자신이 무신론자였던 그 때에도 그 말 자체가 이미 신의 존재를 인정 한 것임을 말한다. 


 애초에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는 사람의,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기에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죽음과 생명에 대하여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개념의 명확한 경계가 없다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과학의 한계, 지식의 한계임을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각 분야 별로 죽음과 생명에 대한 정의와 설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지식의 한계 인 것.


  그러나 하나님은 명확하다. 성경이 사실임을 믿으면 그것은 말 그대로 역사이고 그 자체로 생명과 죽음이요. 예수님이고, 하나님이다. 하나님에게 속해 있으면 생명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아주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크리스천 인 나에게도 교리 적인 느낌의 거부감보다는 성경을 많이 읽고 생각한 이어령 선생님의 고뇌와 깨달음의 깊이가 느껴졌다. 


 죽음이 없이는 그 너머를 이해 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영원한 생명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딸의 일이 큰 계기가 되었던 이벤트는 맞지만, 이미 아주 어린시절의 저자는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금붕어를 통하여 이야기해준 지독스러운 죽음과 생명의 경계,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감사함. 은혜. 모든 종교적인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80이 넘은 노인의 지혜가 전 세대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해결책이 묻어나서 놀랐다. 과거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세상이 가진 여러가지 이슈들과 문제에 대한 접근과 고찰은 그저 놀랍다. 이질감 없이 술술 풀어내는 글을 읽으면서 그 지식과 지혜에 통찰력에 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은 정말이지 악인도 뜻에 따라 사용하고, 의인이라 여기는 이도 쓰여질 사람이라면 혹독한 광야를 거치게 하시는 구나 느꼈다.

 

 성경을 읽어보지도 않고, 교회를 다녀보지도 않고, 기도를 해보지도 않고, 

혹은 읽어도 자신의 생각으로 기준으로 읽고, 교회를 다니고, 기도했다면, 그것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세상에서 공짜로 받은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것으로는 설명도 증명도 불가능하고,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지 않고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사고파는 요즘에는 특히나 교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글로 다 적을 수 없는 느낌과 생각들이 많은데,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책이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닌, 내 지적 판단과 이성적인 사고로 어찌 못하는 신의 세상이 있구나. 나를 넘는 어떤 힘이 있구나. 하고 자신을 그냥 포기했던 순간. 그냥 맡기자.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고 놓아버린 그 순간을 쓴 부분인데, 어쩌면 하나님은 이 순간을 기다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순간이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정확하게 이와 똑같이 말한 적이 있다. 작년 여름에 심한 심장 쇼크로 30대에 생을 마감할 뻔 했던 나는 정확히 죽음의 초 직전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주님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살려주셨다.

그때 깨달았다. 나 진짜 하나님을 만났구나. 


 그리고 이 책의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라는 질문이 당신, 진짜 크리스천 맞아? 로 들렸다.

분명히 눈으로 읽었는데 나에게 생생하게 들렸다. 대답을 보류한 채로 책을 읽었고, 읽으면서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크리스천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은 여전히 죄 많은, 그래서 회개를 반복하는 사람.

진짜 크리스천은 예수님 뿐이고, 나는 그런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의 성공과 신앙의 내려놓음 사이에서 줄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죽고 매일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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